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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마가복음 4:30-32)

 

예수님의 설교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 -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가 오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결됨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나라.

 

마가복음 4장 전체 4개의 비유

겨자씨 비유 - 4가지 비유 중 가장 마지막 비유

 

[막 4:30-32]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한국 사람들 - 매우 작은 것을 표현 할 때 - 눈꼽 만큼 작다.

유대인 - 겨자씨

겨자씨 한 알 - 작고 위태로운,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놓치면 잃어버리기 쉬운, 그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도무지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그것이 심기우고 자라면 ->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게 시작된다. 너무도 작고 연약하기 때문에 관심받지 못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존재가 주님을 만나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 예수님의 탄생 -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이라는 아무도 관심없는 작은 도시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마굿간에서, 천지의 하나님이 3킬로 정도의 아기예수로 태어나는 사건 - 작고 연약한 아기 -> 이 세상에 겨자씨와 같은 존재로 들어오셨다.

 

  • 제자들 - 누구도 관심같지 않고 인생의 소망도 없는 인생들 - 겨자씨 인생 ->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주인공

 

예수님이 만나고 공생애를 함께 했던 자들 -

예수님이 탄생을 목격한 목동들, 경배드린 동방박사, 시므온과 안나.

문등병자, 중풍병자, 38년된 병자, 혈루병 걸린 여자. 막달라 마리아., 삭개오, 소경 바디메오,....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 백부장, 사회적 지위가 뛰어났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사회적으로는 높은 지위에 있었을지라도 주님 앞에 나왔을 떄 자기 자신이 겨자씨와 같은 작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자.

 

겨자씨 같은 사람들...

 

마가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여명의 문도들 -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성령을 기다렸던 자들 -> 전 세계를 변화시킨 자들

전능자를 의지한 겨자씨 인생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늘을 소망한 자들

심령이 가난한 자들 -> 근심 중에서도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자들

질그릇에 보배를 가진 자들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작지만 넘어지지 않고 고난 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작고 신비한 씨앗이라는 긍지와 책임을 가지고 차가운 땅 깊숙히 깊숙히 뿌리를 내리는 생명의 신비를 가진 씨앗.

 

작고 신비한 씨앗으로 세워지는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는 다른 역설적인 나라

요 18, 19장

빌라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면

빌라도의 첫번째 질문-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 - 정치판에서 평생을 산 정치 9단, 예수가 죄가 없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잡혀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자.

그런데 그가 로마의 왕권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빌라도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너에게 한 말이냐?"

" 내가 유대인이냐?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장면"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37절)

예수가 스스로 왕이심을 고백하는 말, 그런데 그 말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비한 나라.

 

세상의 나라 - 영토의 개념, 국경이 있고 땅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 국경이 없다. 영적인 영토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아무나 볼 수 없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누릴 수 있는 나라.

거듭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나라.

심령이 가난한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나라.

조용히 끊임없이 성장하는 나라.

 

D-Day (결정적인 날) -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 으로 연합군이 전세를 완전히 역전한 날

V-day (승리의 날) - 히틀러의 죽음으로 독일이 패망한 날 (1945년) 1년여 간의 치열한 전투

 

D-day(예수님의 성탄과 생애,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이룬 결정적인 승리)

[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나 최후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

툼 라이트 -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가 승리한 D-day와 다시 오실 예수와 함께 맞이할 V-day의 사이를 살아가고 있는 상태다.

C.S 루이스 - 극작가가 무대 위로 올라오면 연극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필립 얀시 - 우리는 세상 나라에 은밀히 파송된 하늘나라의 비밀 요원이다.

 

겨자씨 - 심기우고 자라야 한다.

무엇이 심기우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성품이, 하늘나라의 가치관이

그리고 그것이 자라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세상의 가치관들을 이기고 자라 결국 새들이 깃드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교회 - 하나님 나라의 모델 하우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어야 한다. 세상은 힘있는 자, 부유한 자, 주장하는 자가 앞장 서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섬기는 자가, 겸손한 자가, 온유한 자가 함께 하는 나라.

 

그런 겨자씨 같은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Mustard Seed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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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세워져가는 교회로서의 성도 (에베소서 2장 20-22절)

 

에베소서

에베소 교회-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가장 오랜 기간 머물며 복음을 전한 교회- 아시아의 많은 유대인 헬라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들음

[행 19: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 두란노 서원

 

 

후에 로마의 감옥에 감금된 상태에서 에베소 교회에 대한 편지를 씀.

서신서의 왕관, 꽃이다.

시로 표현된 복음이다. (가장 어두운 감옥에서 가장 빛나는 성도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찬미)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존 칼빈이 그의 나이 49세 때 에베소서를 두고 48회의 강해설교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장이었던 존 맥케이(John Mackay)

14살때 에베소서를 읽고 회심하여 "내 인생과 삶의 가치관을 바꾼 책이다. 내 일생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이 책 덕택이다.”라고 술회

 

우리가 읽은 본문 - 20-22절 -> 11절 부터 이어온 구절의 결론 부분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1-12절 - 예수를 믿기 전의 상태- 이방인이라는 말로 표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

이방인들은 지옥불의 연료를 위해 지음 받았다.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인들의 부모는 자녀의 장례식을 치루었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 : 이방인의 뜰, 여인들의 뜰, 유대인의 뜰, 성소.

이방인의 뜰과 여인들의 뜰 사이에는 2미터 가까이 되는 큰 벽이 가로 막고 있었다.

그리고 기 벽을 넘어 여인들의 뜰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 - 건널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러한 이방인의 상태를 12절에서는

"그리스도 밖, 이스라엘 밖, 언약에 있어서 외인, 세상에서도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이러한 상태를 좀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2장 2-3절

[엡 2:2-3]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방인과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으로부터 소외된 상태

 

  • 까뮈의 이방인

뫼르소-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서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수근거리고... 장례식으로부터 돌아와 직장동료와 영화를 보고 잠자리를 같이 한다.

 

일반인의 상식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

 

자신의 여자에게 폭력을 쓴 남자에게 보복하러 온 남자를 아무런 상관도 없던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다섯발을 쏘아 살해.

 

감옥에 갇혀 심문을 당하면서 살해 이유가 무엇이내고 묻는 질문에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보통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하는 그러한 상태.

 

당시 전쟁 후 아노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상태를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해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지만 상를 받고 3년반이 교통사고로 사망에 이르는 까뮈....

 

사람의 삶이나 행동이나 생각이 도무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도 않음을 지적.... -> "부조리"

 

지금 사회에서 "싸이코 패스"

자기 만의 방에 갇혀 공감없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이방인과 소외 현상

 

  • "소외"라는 개념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사회를 뒤흔들었던 철학적 개념

인간이 만든 것들(상품·제도 등)이 오히려 자신들을 지배하는 힘으로 나타남으로써 인간은 자신들의 본질을 잃게 된다는 학설이다.

 

이방인이나 소외 개념 모두 인간의 참 모습을 잃어버리고 사는 신학적으로는 죄인의 실존을 표현한 용어들이다.

 

그러한 심리적 상태가 불안, 공포, 낙심, 우울......등으로 표현

 

  • 13-18절 (그리스도의 역할)

이러한 소외된 이방인의 모습을 누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13절)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4절) - 막힌 담 (무덤에 돌문이 닫혀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담.

-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5절) : 이방인과 유대인-> 진짜 자기와 거짓 자신, 자신이 꿈꾸는 자신과 실재의 자신을 그리스도로 인하여 한 새사람->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게 함. 자신과 화목하게 함.

-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 (16절) -> 자신과 화해하게 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함.

-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다. (17절) -> 이웃과 평안하게 함. 타인과 화해하게 함.

 

  •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신앙은 "그러므로"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의 신앙이 되면 어긋나는 것이다.

 

외인: 크세노이 - Strangers

손님: 포리노스 - forigners

 

교회 안에서는 누구도 외인처럼, 손님 처럼 행동하지 말라.

가족의 구성원으로, 주인으로 행동하라!

주인의식을 가지되 주인 행세하지는 말아라!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 Fellow citizens with God's people.

성도: 유대인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권속 (Oikos) - 가족 구성원

 

[엡 2:20-21]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주 안에서 성전 - 지성소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지어져 가고 있다. - 현재 진행형 - Under Construction - 쉽게 판단하지 말라.

 

그러한 예수 안에서

건물-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건물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부품이 아니다. 하나 하나의 건물, 즉 교회이다.

그런데 그 교회는 연결되어 성전이 되는 것이다. 더 큰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합이 없는 교회는 성전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의 구실을 해야 한다.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말씀과 기도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교회가 개인의 경건을 대신 해 줄 수 없다.

 

또 거기에서 멈추어서도 안된다.

각기 교회된 성도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성전이 되어져 가는 것이다.

 

2020년 로고스교회 표어: 그리스도와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에베소서 2장 21-22절)

 

복음에 터 박고 지어져 가는 교회

서로 연결되어 퍼져가는 교회

성령 안에서 열매맺는 교회 4

 

2020로고스교회 표어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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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편 간절한 기다림

 

시편 제 2 권 (42-72권) -

저자, 수집자 - 다윗과 고라, 아삽의 시, 솔로몬의 시는 각각 한 편씩

 

시편 42편이 찬양의 시로 읽혀지는가, 감사의 시로 여겨지는가, 탄식의 시로 읽혀지는가? 깊은 영적 침체 속에서의 탄식의 시, 논리적이지 못하고 깊은 바다 속과 하늘 꼭대기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시.

 

고라자손의 마스길

고라자손 - 성전에서 찬양을 하는 레위자손

마스길, 교훈

교훈(지적인 성찰)

찬양(감성적 고백) - 깊은 신앙의 침체 속에서 지적으로 자신을 성찷하고 깊은 가슴으로 하나님을 고백하는 시.

 

42장, 43장 - 같은 한 편의 시

42편 5절, 11절- 43편 5절 - 후렴구처럼 반복

 

  • 시편 기자의 배경

[시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 43: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 43: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하나님의 전에서 기쁘게 예배하던 자가 피난 혹은 포로로서 잡혀가서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고, 찬양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혹은 중한 병에 걸려서 성전에 걸려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사무쳐 갈망하는 예배자

 

  • 내용

11절의 짧은 내용 안에

질문, 비탄, 옛날 회상, 독백, 자기 영혼을 꾸짖고, 부치기고 부르짖는 모습 등 너무도 소용돌이 치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예배를 향한 몸부림.

 

1. 질문하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질문

 

[렘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욥 -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찬양하는 가운데서도 질문하는 욥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에서의 질문

시편 - 도대체 어느 때까지니이까? 탄식과 질문 - 20여회 이상 나타나는 시편에서의 질문

 

회의하고 불신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질문이 아니라 신뢰하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 속에 그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말씀으로 정리되지 않을 때에 일어나는 믿기 위한 몸부림.

 

[시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아는데 그 살아계심이 내 삶에서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 누구에게? 하나님께....

 

1-5절, 6-11절 - 두 단락 시작때마다 부름의 대상 - 하나님

 

물을 찾는 사슴 - 건기 때에 물을 갈망하는 사슴 - 생명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헐떡이는 모습. 가뭄 때에 바짝 마른 물의 흔적을 찾아나와 몇방울의 물이라도 있을까 헐떡이며 갈급해하는 모습.

 

(새번역 성경)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갈급함 - 헐떡이며, 타도록....

요한복음 4장 -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것 - 예수가 주시는 물, 성령

 

  • 가상 칠언 - 내가 목마르다.

내가 목마른 것을 아시는 주님. 우리와 똑같이 목마름을 아시고 그것을 십자가를 통하여 감당하시고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분.

 

모든 물의 근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의 근원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시길 위해 그 목마름을 가지고 십자가를 견디신 주님. 왜?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그리고 그 목마름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이 목마름은 세상 것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다. 의는 관계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가 바로된 상태가 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목마른 것이요

믿음의 형제들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는 것이요

나 자신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갈망하는 것이다.

 

[시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 42: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Where is God?

질문이 칼이다.

나를 포로 잡은 자들이 조롱하며 내 뱉는 말. (외부인)

내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내 주위 사람들이 내뱉는 말 (같은 신앙인)

내가 당하고 있는 침체를 통해 나 자신이 내 영혼에 이르는 말 (나 자신)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는냐?"

너 하나님 믿는 거 맞냐? 제대로 믿는 거 맞냐? 그런데 왜 그모양이냐?

-> 칼 처럼 나를 아프게 하는 말 - Where is Your God?

남들은 다 경험하는 하나님을 너는 왜 경험하지 못하느냐?

 

[시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현재의 상한 마음 - 과거의 좋은 때를 기억하며 살아가고자, 이겨보고자...

그런데 그 기억이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을 더 아프게 한다.

그 기억이 오히려 내 마음을 상하게 한다.

 

  • [시 42: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자기를 꾸짖고, 자기를 객관화. 하나님을 바라라 (Hope in God)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오히려 찬송하라. - 나는 여전히 찬송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송하리라.

문제가 해결되어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여전히,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송하는 것.

I am Nothing, You are Everthing

찬송은 주를 높여 드림과 동시에 자신을 낮추는 것

주를 높이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찬양이라는 것에는 기우뚱.,

 

소원: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며 ...

 

[시 42: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 찬양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또 낙심하는 인생

- 인생의 실존

- 요단, 헤르몬, 미살 상 - 자신이 은혜 받았던 그 기억

 

[시 42: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 그 기억이 나를 살리지 못하고 여전히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쓴다.

- 그런데 그 모든 파도와 물결이 누구의 것인가? 주의 폭포소리, 주의 깊은 바다- 이 모든 고난이라 할 지라도 주가 다스리시고, 주께서 주관하시는 허락하시는 그 고난. 파도.

 

[시 42: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낮- 주와 함께 하는 시간, 형통한 시간, 은혜가 넘치는 시간 - 주의 자비하심을 만끽하는 시간

밤- 주가 느껴지지 않는 시간, 고통의 시간, 침체의 시간 - 신앙인은 무엇으로 그 시간을 이기는가?

찬송- 그의 찬송,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나오는 찬송이 아니라 주가 내 입술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시는 나를 살리는 은혜

그 찬송의 소리를 듣고 내 영혼이 그 의미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나를 살리는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찬송가의 얼마나 많은 찬양들이 고통의 극한 상황에서 지어진 찬양인가?

그 찬양이 과연 우리 마음 속의 진실함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내 입술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

나를 살리는 말씀.

 

  • 성서의 인물 사이에서 드러나는 깊은 영적 침체의 흔적들

 

[민 11:11-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엘리야: [왕상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예수 그리스도: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시 43: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누구도 탄식할 수 있고 절망할 수 있고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모세- 제일가는 지도자.

엘리야 - 선지자 중의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 - 극한의 목마름. 침체, 절망

 

자기 성찰하는 자와 자기 집착하는 자

- 자기를 성찰하는 자는 이런 침체에 자기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이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부르짖는다. 헐떡이며 주님을 찾는다. 그것이 갈망이다.

- 그러나 자기에 집착하는 자는 이런 침에에 더 깊이 몰입한다. 벗어나오려 하지 않고 남이 꺼내어 주기까지 자신의 굴 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엘리야의 초기 증상- 굴 속에 들어가 죽고자 했다. 정말 죽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신 이후에 다시 호렙산으로 그를 데려가신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말씀을 통해 힘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다.

 

자기 집착은 겸손이 아니라 지나친 자기애요, 자기 교만이요, 사망으로 가는 길이다.

그것은 죄악이다.

신앙인 누구나가 낙심할 수 있지만 그 낙심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낙심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고자 하는 것은 죄악이요, 사탄의 역사다.

 

키에르케로르 - 세계 대전으로 인해 모든 지성인들이 회의에 빠지고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그리스도적 실존철학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잃으켜 세웠던 철학자

그의 철학적 관심사 - 그것을 위해서라면 삶의 모든 에너지와 죽음 까지도 바칠 수 있는 실존적 의미를 가지는 것 - 그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로 그 의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

그의 철학에서 유명한 키워드 "죽음에 이르는 병" - 절망

사망, 질병, 전쟁,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실존적 의미를 방해할 수 없지만 절망에 빠진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요 곧 죄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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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시편 8편 4-9절)

 

지난 주 이세돌이라는 바국기사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인터뷰를 들어보니 물론 다른 몇 가지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자신은 절대로 인공지능 바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시다시피 구글에서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결해서 한 번 이기고 네 번을 졌습니다. 그런데 그 한 번 이긴 것이 알파고의 전적에서 유일하게 진 한 판 이었습니다. 이후 인공지능 알파고 바둑기사는 중국의 세계랭킹 1위 기사를 한 번도 안지고 다 이기고 알파고 다음 버전인 알파고 마스터가 나왔는데 그 알파고 마스터는 또한 알파고와의 대전에서 수 백번을 싸워 한 번도 안지고 모두 이겼다고 하니 이미 인공지능 바둑은 인간의 한계를 훨씬 능가한 것입니다.

 

한국 중국의 바둑기사들은 대개 4-5세때 부터 유명한 스승으로부터 바둑을 사사 받아 학교도 안다니고 바둑을 연구합니다.

프로기사가 되면 바둑 한 점을 두기 위해서 머리 속으로 수천가지 가지수를 놓고 계산합니다. 프로기사들은 자기가 둔 바둑을 한 수도 잊어버리지 않고 순서 하나 하나까지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런 프로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둔다고 하는 기사들이 인공지능 바둑기사에게 단 한 번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세돌 기사가 은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스승에게서 바둑을 배우면서 바둑은 곧 예술이고 인생이라고 배웠다. 누군가와 바둑을 두면 그 사람 성격까지도, 살아 온 인생의 흐름까지도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바둑이 나오면서 프로기사들이 더 이상 스승을 찾지도 않고, 바둑을 두며 인생을, 삶을 그리지도 않는다. 내가 더 이상 바둑을 둘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본 동영상은 영국 BBC 방송에서 2017년도부터 방영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의 삶에 깊이 들어온 세상을 그린 작품이다. 학자들은 드라마에서 그려진 세상이 짧게는 20년, 길게보아도 30-40년 되기 전에 우리에게 들어닥칠 것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로봇의 인지 시스템을 말하는데 Weak AI는 미리 입력된 데이터를 이용하는 것만을 작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고 Strong AI는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또한 조합, 종합,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을 가리킵니다. 터미네이터 같은 SF 영화에서 나오는 인류와의 전쟁을 치루는 인공지능은 Strong AI로서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이 명령하더라도 자기의 판단에 맞지 않으면 거절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조심스러우면서도 인류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개발하고 있고 또한 복잡하기에 아직 언제 실용화될 지는 알 수 없지만 Weak AI의 경우는 이미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시험하거나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Weak AI의 경우는 지금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단순 반복적인 작업만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기존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고, 화가들의 화풍을 입력하여 새로운 미술작품을 그리기도 하며, 정확함을 요구하는 수술이나, 주식 거래까지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소개한 대로 가정일을 전담하는 인공지능, 병간호를 담당하는 인공로봇, 마사지나 가정교사까지도 담당하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보면 성인 모드로 변환되면 사람의 성적, 성격적 취향에 따라 애인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세상을 그려보면 과연 많은 인간관계에 변화가 있게 될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왜? 인공지능은 결코 화도 내지 않고, 항상 침착하며, 한 번 저장되면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실수도 그만큼 적고, 인간보다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기다려지십니까? 아니면 두려워지십니까? 그런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미 이런 시대가 시작되었고 점점 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한 일에서부터 나중에서는 정서적이고 예술적인 분야에까지 인공지능이 활동을 하면 앞에 동영상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사는 시대...그것이 낙원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얼마전 제가 공부하던 학교에서 이런 양자 물리학과 신학을 전공한 분이 논문발표를 했는데 주제가 "AI와 자유의지, 그리고 구원론"이었습니다.

 

아까 말한 인공지능 중에 스스로 판단하고, 조합, 종합,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이라면 이것을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만약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특징이 자유의지라고 한다면 자유의지를 지닌 인공지능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주제가 너무 나간 것 같은데도 신학이 시대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고 워낙 현 시대에 중요한 이슈를 다루다 보니 그 발표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관심을 가지고 듣고 질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학을 공부하고 또한 신학을 공부한 학자들은 이런 시대가 오면 "인간에 대한 정의가 바뀔 것이다." 지금 보다 훨씬 가치있는 인간과 무가치한 인간들에 대한 구분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영성을 전공한 신학자이고 또한 목회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좀 나누어 볼까 합니다.

 

  •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서만큼은 땅의 흙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대로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이것이 이성이냐, 지성이냐, 사랑이냐, 여러 논란들이 있지만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왜? 성경에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정해 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 자유의지를 말한다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 자유의지가 곧 인간이다라고 정의하는 과학을 바탕으로 한 신학자들의 견해는 좁고 편협하다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한 특징일 뿐이지 인간의 본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지능이 뛰어나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고 한다면 지능이 낮은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만이 가지시는 본성, 자비하심, 긍휼하심, 희생, 사랑,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폭넓은 의미입니다.

또한 그 코에 생기를 넣어 생령이 된 우리는 곧 그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영적 존재인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한 일-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를 다시 세우신 것

[시 8:4-6]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잃어버린 사람의 가치-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운 자

 

ex)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사람들이 돌로 치라 했을 때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아무도 만지지 않는 나병환자를 어루만지시고, 38년이나 된 병자를 일으키시고, 죽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보며 눈물 흘리시며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 압권- 십자가 상의 강도

이전에도, 이후에도 효용성 면에 있어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그런데 그에게 천국을 보장하신다.

 

그 분은 우리가 그저 사람이기에 사랑하신다. 외모를 중시하지도, 성과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

그저 주님 앞에 나오는 자라면 대환영이고 주님께 나오는 자에게 천국을 허락하신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인공지능이 나와서 어떤 사람들은 아내보다, 남편보다 인공지능을 더 좋아할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싸울 일 없고, 상처 입을 일 없고, 원하는 대로 해주고,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고.....그렇다 할지라도 그러한 존재를 위해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

 

예수는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인간, 그 형상대로 지음받았지만 죄로 인해 그 영광에서 멀어진 인간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가 구원할 대상은 오직 인간이고 사람을 통해 그가 창조한 세상이다.

 

왜? 그 회복된 인간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 인생을 오래 살아온 대부분 사람들이 살면서 제일 힘든 것은 역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더 깊이 만나는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은 더 이 말에 공감한다. 때로는 그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어서 숨기도 하고, 정죄하기도 하고, 상처입어 소리치기도 한다. 실망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를 보고, 또한 영상을 보면서 우리가 힘들다고 여겼던 바로 그 모습이 우리가 사람이기에 겪는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 세상이 효용성에 얽매여서 불필요한 인간, 무가치한 인간에 대해 꼬집고 정죄할 적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과감히 하늘 보좌를 버리고 그 연약한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신 그 사람이었다고, 그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담당하시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왜?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속 썩으면서도 여전히 도망치지 않고 살아가는가? 왜 주님은 그런 자들을 모아 교회라고 부르시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고 하나님의 영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 사람의 가치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싶었던 한 청년이 현자에게 찾아가 물었다.
"사람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청년의 물음에 현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보석을 주며 말했다.
"이 보석을 갖고 시장에 가서 값을 물어 보시오. 단 팔지는 말고 이곳 저곳을 들러 값만 물어보시오."
청년은 그의 말대로 시장에 나가 보석값을 물어 보았다.

과일 가게 주인은 5천원이라고 했다. 가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채소 가게 주인은 만원, 철물 가게 3만원.... 이들 역시 보석의 진정한 가치를 몰라 보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석 가게에 들렀다. 그 보석상은 놀라며,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소. 이 보석은 참으로 귀한 것으로 금액을 말하기조차 어렵소. 요구하는 돈을 다 줄테니 내게 파시오."

물론 청년은 팔지 않았다. 돌아와 그동안의 일들을 현자에게 얘기했다.

"이 보석은 정말 귀한 보석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그것을 5천원이나 만원의 가치로 보고, 누구는 무한대의 가치로 보는 것이오. 사람의 가치도 이와 다를 게 없소.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가치가 생겨 날 수 있는 것이오. 그것은 곧,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지녔다 해도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가치가 생겨난다는 얘기인 것이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이 열심히 갈고 다듬어 진짜 보석 같은 사람이 되는 일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저마다 열심히 갈고 닦으면, 누구나 다 보석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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