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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 밭이 되기 위하여 (막 4:1-20)

 

 

몇 주째 계속해서 예수의 열매맺는 삶 - 성령으로 충만한 삶에 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십자가의 의미

1. 날 위해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 - 구원의 십자가

주님께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행하신 일

왜 내 의지와 상관이 없는가?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에 아담이 하나님을 찾아 갔는가? No,

아담은 숨고 하나님이 아담을 찾았다. 왜? 죄인은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와서 가죽옷을 입히고 살 길을 열어 주신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것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이고 그것을 믿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우리에게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을 믿고 그 분을 내 삶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그 십자가에 나를 못박고 예수가 살게 하는 삶 - 십자가의 삶, 성령의 삶, 예수의 열매가 열리는 삶. 예수가 날 위해 달리신 십자가가 중생의 십자가라면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십자가는 성화의 십자가

 

그리고 동시에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 - 우리에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또 가르쳐 주시는 분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함께 있는 것보다 성령이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왜? 예수가 직접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데 성령은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주시는 분이기에...

 

그런데 성령이 임해도 우리가 그 은혜를 충만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

에스겔 47장 말씀을 통해서 성전을 통해서 은혜의 강이 흘러 처음에는 발목을 적시고, 그 다음에는 무릎까지 차고, 그 다음에는 허리까지....

발목까지 차고 무릎까지 차도 결국 그 길은 누가 원하는 길로 가는가?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릎까지 찼을 때 - 인간적으로는 자신의 삶과 말씀의 삶의 갈등이 고조에 이르러서 내가 원하는 길로도 잘 안가지고 그렇다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로도 여전히 나아가지 않는 인생.

- 그런데 그런 고통의 시간이 신앙적으로는 성령이 나를 점점 주장하는 시간. 나에게는 고통이지만 성령을 알아가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그런데 열매는 언제 맺히는가? 그 물이 나를 온전히 삼킬 때- 열매가 맺히고, 생명이 넘치고, 바다에 고기가 넘쳐나고, 잎사귀를 통해 치유가 나타나는.... 언제? 물이 나를 삼킬 때

 

지난 주 말씀 제목 두 번째 강을 건너자!

첫번째 강은 홍해 -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루신 기적

그러나 두 번때 강은 요단강 - 법궤를 앞세워 말씀따라 순종하는 삶. 바다에 발바닥을 내딪는 삶. 성결케 하는 강. 성령 충만, 성령세례, 성결.

그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

 

구원받았으면 되지 꼭 성령 충만해야 하나. 홍해를 건넜으면 되지 꼭 요단강을 건너야 하나?

가나안을 맛보지 않으면 광야가운데서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애굽.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만 입술을 통해 나오는 것은 언제나 불평, 원망, 다툼.

열매맺지 못하고, 그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요 16:21-22]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큰 아들 -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열심을 내었지만 무엇이 없었나? 기쁨이....

 

여기까지가 지난 삼 주 동안의 말씀 - 출애굽과 십자가와 성령에 관한 말씀이다.

 

  • 자, 오늘 말씀은 흔히들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예수의 비유.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한 중요한 비유의 말씀이다. .

이 비유의 말씀은 누가복음 8장에,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에도 나와 있다.

특별히 마가복음 4:13에는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비유들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왜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비유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비유는 흔히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밭에 대한 비유이다.

씨는 무엇인가? 14절에 보니까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고 말한다.

씨는 곧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성품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씨앗으로 온다. 약속으로 온다. 왜? 그 말씀이 열매맺을 때까지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도들에게 주는 말씀

설교자는 물론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전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분별하고 증거해야 하는 것이 설교자의 책임이다.

그런데 전하는 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을 듣는 자들도 바르게 들어야 되는 책임이 있다.

 

[막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 이 구절을 읽는데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자, 주님은 배에 올라 앉으시고 무리가 바닷가 육지에 있으면 과연 예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베드로의 배에 올라 그를 제자 삼으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그 분의 배에 올라타야 한다. 내가 거하고 있는 곳에 그대로 있으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이 본문은 3절부터 9절까지 네 종류의 밭에 대해서 말씀하신 다음에 15절부터 20절까지는 다시 그 밭에 대한 비유를 해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막 4: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막 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2, 15, 16, 18, 20 - 아쿠오라는 동사 반복 "듣다"

그리고 이 본문을 지나서 23-24절에도 보면

[막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뿌리는 자의 비유가 아니라 밭에 대한 비유이고 이는 곧 듣는 자에 대한 비유이다.

 

세미나 - 지식, 교양

하나님의 말씀 - 생명을 주는 책, 영생을 주는 책.

 

지식을 전하는 강의라면 듣는 자는 그 지식을 선택할 수 있다. 듣고 싶으면 듣고 안듣고 싶으면 안들으면 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성적으로 나오든가, 아니면 앉아 있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는 생명에 관한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느냐 안듣느냐에 따라서 복음서는 예수의 적이 되느냐 제자가 되느냐, 믿는 자가 되느냐 핍박자가 되느냐로 갈린다.

  • 내가 죽고 사는 문제임과 동시에 (영생, 생명)
  • 예수를 죽이는 자인가 따르는 자인가 (빛이냐 어둠이냐)의 문제요
  • 열매를 맺느냐 열매없이 버림받느냐에 대한 문제가 바로 듣는 자의 모습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들음

  • 길 가에 떨어지는 들음
    • [막 4: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 [막 4:14-15]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길 가 - 아까 1절에 예수는 지금 어디에서 말씀을 전하시는가? 배 위에 올라...우리가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그 분의 배 위로 올라. 산위에 올라 (산상수훈)

길 가는 어디인가? 혼인잔치에 기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길 가는 아무리 설교 해도 귓가로 흘려 보내는 것이다. 전혀 들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누가 그런 마음을 주나? 사탄이....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고 주위가 집중되지 않는다. 그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생명을 얻지 못한다. 빛에 거하지 못하고 어둠에 거한다. 열매가 없다.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전혀 말씀과 상관이 없다.

[막 4:11]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그들은 외인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한 명도 외인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 돌 밭과 같은 들음
    • [막 4:5-6]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 [막 4:16-17]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 밭 - 말씀을 받았다.
    • 돌짝 밭 - 뿌리가 없다. 깊이가 없다.

- 오해) 돌짝 밭 - 굳은 심령 아니다. 돌 짝 밭은 얕은 밭이다. 뿌리가 깊이 심기지 못한 밭이다.

- 처음에는 깊은 흙에 심은 밭보다 훨씬 빨리 싹이 튼다. 그러나 그게 다다. 자라지 못하고 바람에 날리던, 그냥 죽어버린다.

    •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 - 무엇때문에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나는가? 바로 말씀 때문에

왜? 우리를 훈련하기 때문에. 우리를 부인하고 주가 주인되게 하여야 하기 때문에, 마치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내 허리를 적시듯.

바위 위에 얇게 흙이 덮혀있는 것과 같은 상태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감정적 흥분과 피상적 열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감정의 상태를 넘어 말씀이 심령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예수께서는 뿌리 없는 믿음이라고 규정하는바 이들의 믿음은 일시적이며 잠정적입니다. 믿음의 진정성 여부는 시험에 견디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검증되어집니다.

    •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 - 언제 아는가?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치며 창수가 날 때

모래 위에 지은 집 - 자기 믿음, 자기 생각에 지은 집, 자기 상식 안에 갇힌 믿음 - 왜 우리는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니까... 먼지라는 것 -

반석 위에 -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뿌리가 깊다는 것은 무엇이냐? 말씀 위에 기초한 신앙이고 십자가 위에 기초한 신앙이다.

    •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마치 뿌리 없는 식물과 같이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하며 따라서 그 과실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시험을 견디어낸 믿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약 1:12).
    • 뿌리 있는 신앙인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다시 십자가 앞에 나와와 죄짐을 벗도 의의 길, 부활의 길로 들어갑니다.

 

  • 가시떨기에 떨어지는 들음
    • [막 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 [막 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 밭이 더럽다.

 

말씀을 들을 때에

- 길가, 돌짝 밭 - 아쿠 소스, 과거형 동사

- 가시 밭 - 말씀을 듣되(현재 완료 진행형) - 상당한 기간동안 들은 것을 의미.

 

상당히 오랫동안 들었을 때에도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못하면 열매맺지 못한다.

무엇으로 가득찬 마음 -

1. 염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2.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 에돔 자손, 아말렉 자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시인과 촌장 - 가시나무

지금은 목사가 된 하덕규 목사가 젊은 시절 영적, 세상적 방황의 중점에서 불렀던 노래. 이 가시떨기 마음 밭을 묵상하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외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 없네 ...

 

결국 가시는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누리고 싶은 것

사도바울의 고백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런데 내가 버린다고 다 잃어버리는가? 오히려 얻는다. 즐거움을 얻고 기쁨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내가 취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자기려고 하는 것은 나에게서 멀어진다.

 

  • 좋은 땅
    • [막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 [막 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떨어지매 자라 결실하는 밭

다른 밭 - 듣되

좋은 땅 - 듣고 받아 (파라 데코마티아) - 매우 기뻐하다. 영접하다. 환영하여 머물게 하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목사님은 이 본문을 연구하시면서 길가는 밭이 아닌 굳은 땅, 돌짝 밭은 얕은 땅, 가시떨기는 더러운 밭이기에

좋은 땅은 무엇이냐? 곧 부드럽고, 깊으며, 깨끗한 심령이라고 표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다 가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의 기물들은 다 조각목을 사용하여 만드셨는데 그 조각목은 결국 가시나무 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나무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이 가시나무를 가지고 언약궤를, 성전의 기구며 성막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를 불렀던 하덕규씨가 젊은 시절 방황을 끝내고 참 시인이 되고 목사가 되었듯이 하나님은 가시나무를 다듬어 주의 보혈로서 씻기시고 은혜의 금으로 덧입혀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왜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모든 비유를 안다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좋은 땅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어떤 좋은 말씀을 들어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한 해는 우리 교회가 열매 맺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우리 로고스 교회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아니라 출산하고 열매맺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빈센트 반고흐 씨뿌리는 사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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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을 건너자! (여호수아 3장)

 

구약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건 - 출애굽 사건


애굽에서 430년간의 종살이 -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죄인의 상태

출애굽 - 거듭남,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광야 - 훈련 (성화)

가나안 - 영화 (열매맺는 삶)

 

출애굽 할 때 건넜던 강 - 홍해 (세상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 세례

- 죄에 죽고 예수로 사는 삶

- 일회적 사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건너는 강 - 요단강

-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 광야: 성막과 십계명 (죄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훈련) 예배와 말씀

- 그 신앙생활을 거쳐 드디어 신앙의 열매를 맺고 추수하는 땅 - 가나안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땅)

- 성령세례, 성령 충만, 성결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반복될 수 있는 사건)

 

요단강 - 하나님의 약속을 얻기 위해, 취하기 위해, 열매맺기 위해, 추수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땅.

우리 힘으로 건널 수 없지만 동시에 반드시 힘을 써서 건너야 하는 땅

 

어떻게 이 강을 건널 것인가? (여호수아 3장을 통해 어떻게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요단강을 건널 것인가?)

 

  • [수 3:1]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수 6: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도

[수 8: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 아이성을 정복할 때도

여호수아 - 새벽을 깨우는 자

요단강을 건너기 전 그는 자신을 건넌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전 그는 자신을 먼저 깨뜨린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들을 것인가?

몽상을 하는 자는 밤을 새우고 비전을 품는 자는 새벽을 깨운다. 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이다.

신앙의 열매를 맺고 싶은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 싶은가? 새벽을 깨우라. 일어나서 가장 먼저 기도하라. 가장 먼저 찬양하라. 가장 먼저 말씀을 보라.

[시 57: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을 때에.....

 

  •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민 25장 -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여인들과 음행하던 곳 - 가장 기억하기 힘든 죄악의 땅, 실패의 땅, 그 싯딤을 떠나기 위해 새벽을 깨우고 새벽을 깨워 싯딤을 떠나는 것이다.

 

 

  • 2절: 사흘 후에- 신앙은 계속적으로 나를 죽이는 것이다. 사도바울 처럼 날마다 죽지 아니하면 또 넘어지고, 불평하고, 절망한다.

기도해서 응답이 없는가? 기도는 내가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기도의 생각, 말씀의 생각이 내 삶 전반을 지배하도록 두루 다니는 것이다.

위에부터 영이 임할 때까지 전혀 기도하라. - 500여명 -> 남은 자 120명 - 성령의 은혜를 맛본 자.

요단강 - 기다림. 여리고성 - 조용히 하라. 불평하지 말라.

 

  • 3-4절 : 거리를 두고 언약궤를 따르라.

홍해를 건넘 -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라.

요단을 건넘 - 제사장들을 언약궤를 메고 이천 규빗 거리를 두고 따르라.

거리를 두라 - 너무 가까이 하지마라.

성경이 말하게 하라. 내 중심으로 해석하지 말라. 완전히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보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라 -> 거리를 두고 말씀을 읽으면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하신다. 행할 길을 알게 하신다.

 

  •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5절)

성결은 무엇인가? 자기가 따르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 자신에게 말씀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자신을 맞추는 것 -> 성결

말씀이 내 삶에 이루어 지는 것 -> 성결

그러면->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언제? 새벽을 깨워 하나님 앞에 집중한 후에 말씀을 바라보며 따라가며 자신을 성결하게 하면 ->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그리고 언약궤가 앞서 건너고 백성이 따라 나아가니 어떤 응답이 주어지는가?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기적 - 우리를 성결케 하는 것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실재로 우리가 죽고 말씀 따라 살았더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자신이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게 되는 것

 

큰 집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지만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시는 그릇은 어떤 그릇? 깨끗한 그릇. 성결한 그릇

 

  • [수 3: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홍해를 건널 때 - 모세가 지팡이를 물에 대자 물이 갈라짐. 갈라진 물 사이로 모세와 백성들이 건넘

요단강 - 물은 그대로이다. 그런데 언약궤를 맨 제사장으로 하여금 발바닥으로 요단강의 물을 밟으라 한다. 살짝 가져다 데는 것이 아니다. 언약궤 - 네 명의 제사장이 함께 메야 한다.

네 명이 함께 물을 담구어야 한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두려울까?

그들에게 있어서 언약궤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임재

언약궤를 앞세워 전쟁을 하기만 해도 적군이 벌벌.... 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발을 담굴 수 있는 근거 - 믿음.

 

금요일날 신명기 -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서서 겁내지 말라. 두려워 말라. 떨지 말라. 놀라지 말라.

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함으로....

왜 물 위에 올라 설 수 있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런 확신이 있는가? 이런 믿음이 있는가?

 

[수 3:15-16]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가장 물의 양이 많고 셀 때

물가에 발을 잠그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치고 한 곳에 싸임.

 

(1) 구원받을 때를 기억해 보자. - 내안의 죄들과 정죄받을 것 같은 마음때문에 두려웠다. 쫒기는 듯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나만 바라보라"라고 하신다. 너의 능력과 업적, 행적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간섭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나만 바라보라". 바울은 이것을 "누구든지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였을 지도 모른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간섭으로 갈라진 홍해를 건너기만 하면된다. 그리고 미리암 모세처럼 그 기쁨에 겨워, 내 뒤에 쫒아오지 못하고 울고 있는 악한 것들을 보며 하나님을 찬송하면 된다.

 

(2) 구원 받은 후 삶은- 제사장의 법궤에 따라 이스라엘이 움직인것 처럼 구원 후 나의 삶은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 구원의 역사현장에 하나님은 나보다 앞서 행하시지만, 구원 후에는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통해 기적을, 하나님의 일을 하시길 원하신다. 구원받는 믿음이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이라면 요단강을 건너는 믿음, 열매맺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믿음이다. 물위에 발을 잠그게 하는 믿음이다.

 

이기고 싶은가? 열매맺고 싶은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싶은가?

하루의 시작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라. 세상의 것, 세상의 말들을 경험하기 전에, 세상을 향하여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그 분께 찬양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으라.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며 그 삶을 살라.

그리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으라.

 

히브리민족: 핫비르라는 말에서 유래 - 강을 건넌 사람들

그리스도인은 두 번의 강을 건넌 자들이다. 하나는 홍해의 강, 하나는 요단강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함으로서 이미 홍해를 건넌 자들이다. '

그러나 우리가 건너야 할 또 다른 강이 있다. 바로 요단강이다.

홍해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건너게 하셨지만 요단강을 건널때는 우리의 행함이 필요하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난 우리 로고스 성도들이 이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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