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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향한 기적인가! (마가복음 6장 30-44절)

 

오병이어라고 불리는 예수의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기적 중에서도, 그리고 그 분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기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기적이다.

 

나도 2015년도 교회의 표어를 "너희가 먹이라!"라고 정하면서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 적이 있고 그 외에도 여러번 오병이어의 사건을 설교를 통해서 전했다.

 

이 사건의 내용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에수님이 기적을 보이시고 병자들을 고치자 예수의 소문이 예루살렘 곳곳에 퍼진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33절에 보면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예수님께로 모여든다.

 

  • 그리고 그들은 때가 저물때까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듣는다.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며 모여드는 자들을 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여 아침부터 날이 저물도록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매달려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예배시간 한 시간도 지겹게 힘들게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예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들었을까?

그들은 처음부터 오병이어의 기적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이 모여든 것은 예수를 보기 위해서고, 그리고 나서 그들은 예수가 하시는 말씀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들었다.

 

은혜는 갈급함에서 온다.

자리를 떠나지 않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는 자에게 베데스다 연못에서도, 성전 미문에서도 기적이 임한다.

 

  • 예수님은 영적인 은혜만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들이 날이 저물도록 말씀을 듣고 떠나지 않자 그들이 구하기 전에 주님께서 그들의 배고픔을 알아채셨다.

신앙은 영의 것을 구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육적인 문제도, 이 세상의 문제에도 결코 소흘함이 없다.

우리의 일상을 무시하지 않는다.

 

  • 마을로 가서 이들로 무엇을 사먹게 하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주님은 갈 것 없다 하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신다.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다. 그러자 요한복음에 의하면 한 아이가 가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축사하시고 그들 모두를 배부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열두 광주리를 채워 가신다.

 

이 사건은 여러가지 각도로 해석되고 설교되어져 왔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에 대한 대표적인 기사로도 소개되었고 어린아이의 헌신에 맞추어 우리의 작은 헌신이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을 강조하며 헌신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로도 소개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제자들의 역할은 극히 외면되었다.

그들은 이 사건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 아닌 작은 어린아이라고 표현된 자의 헌신을 통해 오천명을 이루신다.

 

성경에서 어린아이는 "순전함"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무력함" "존재없음"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이기도 하다.

 

  • 오늘은 제자들의 각도에서 이 사건을 좀 더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한다.

 

공관복음에서 오병이어의 사건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빈들"이지만 요한복음은 이 사건이 "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요 6:3)

 

산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곳이다. 이 땅의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는 장소,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면하고 오직 주님으로만 채우는 장소, 골방, 내면의 빛, 기도의 시간, 성경은 산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그 중심엔 주님과 대면하고 주님의 임재로 가득찬 장소이다.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의 본문에서는 특별히 이 곳에 있던 제자들을 제자라고 명하지 않고 사도라고 명한다.

사도라는 말은 사도행전 이전엔 쓰지 않던 표현이다. 유달리 이 사건에서만 성경은 제자들을 가리켜 사도라 명한다.

 

사도는 주님의 특별한 사명을 가진 자들이다.

 

  • 30절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히 고하니" (막 6:30)

이 구절은 앞선 7절부터 13절까지 예수께서 이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낸 사건과 연결되는 구절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명을 띠고 파송받아 지금 돌아와 있다. 주님은 그들을 그냥 보내시지 않는다. 임무를 주시는 예수는 그 임무를 이룰 능력을 미리 주신다.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병자들을 치료할 권능을 주시고 또한 선포할 말씀을 주신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도인 것이다.

 

사도로 파송된 그들이 돌아와서 의기 양양하게 자랑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도 예수처럼 능력이 나타남을 신기하게 여기면서 좀더 신령한 자가 된 듯 했을 것이다.

 

영적으로는 한 껏 들떠 있었지만 한껏 육신적으로 피곤해있던 그들에게 주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육적 피곤함을 아는 주님은 그들에게 쉼을 주신다. 안식하게 하신다.

 

  •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물론 주님은 그들이 안식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허락하신다.

그런데 이것이 제자들에게는 "음식을 먹는 시간으로 표현되지만"

예수님께 적용하면 주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 다다를 때마다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기도하셨다.

 

주님에게 안식은 단지 육신적인 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창조기사에서 안식은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구별되고 구별된 것에 인간이 거했을 때에 주어지는 결과이다.

 

그리스도인의 안식은 결코 육신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질 때에 우리는 안식한다.

 

그 분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다면 아무리 유람선을 타고 배 속 깊은 곳에서 잠을 잔다하더라도 그것은 고통의 시간이지 안식이 될 수없다.

 

  • 안식을 주신 주님이 이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바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것이다.

왜 주님은 그들에게 이 말을 하셨을까? 어린아이를 돋보이게 하시려고?

그들 아니어도 주님의 행하시는 것을 강조하시려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그 표현에 주님의 진심이 들어있진 않을까?

 

각자 물고기 잡으러 떠난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물고기와 떡으로 먹이시고 채우신 후에

"네가 날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사도로 세우신 후에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셨던 주님께서

 

사도로서의 사명을 맡기시고 경험하게 하신 후에 그들에게 무리를 맡기시고자 진심을 다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고 계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주님의 말씀이 임하면 우리의 삶은 흔들리게 되어 있다. 때론 지진으로 임하고 때론 불로도 임하고 때론 세미한 음성으로 주님의 음성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가오지만 공통적인 것은 우리 삶을 뒤흔든다는 것이다. 갈등을 주고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선택을 요구하고 때로는 이삭을 바치는 것 같은 포기를 원하시기도 한다.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에 대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불손종할 핑계를 찾기 위해 자신이 포기 할 수 없는 이유를 대는 것과

순종하기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전자를 택했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이백데나리온이라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없음을 이야기하고

자기들이 이미 일을 다해 피곤하다는 육신적인 이유를 대기도 한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정탐하라 (자신을 살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떤 이는 "그 땅은 정말 좋은 땅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능히 저 땅을 정복하자" 하는 자들이 있는가하면

그 땅에 사는 사람은 너무 강하고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다 라고 하면서 스스로 주저앉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성경은 그렇게 스스로 주저앉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곧 먹이는 것이다. 내 살과 내 피로 저들을 먹이는 것이 사랑이다.

 

부유한 자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이 없어서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움켜 쥐고 있는 것이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가난한 자가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된다. 천국을 소유한다.

예수로만 채울 수 있는 자가 근심하지 않고 자기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왜 우리가 나눌 수 없는가? 왜 먹이질 못하는가?

말씀대로라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결국 어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나바호 선교

우리에게 먹이라고 붙여준 사람들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작년에 우리가 처음 참석하면서도 앞장서서 리더의 역할을 했었는데 올해엔 갈 사람이 없다.

첫날 모임에 고민 고민 하다가 "올해 우리 교회 여건이 갈 수 없는 형편입니다."말하려고 참석했는데

예배 가운데 주신 감동

계속 생각나는 부담과 그들의 소리.

 

사도들이 외면하면 어떤 어린아이, 아니 돌맹이라도 사용해서 일하실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다가서서 "너희가 주어라. 난 너희가 그들을 먹이기를 원한다"하고 말씀하시는 소리 .

 

올해 제가 라이드 팀장

큰 차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12인승을 빌려가야 하는데 타고가는 사람은 고작 네 명.

 

각자가 힘들고 어려운 사정이지만 난 이 차에 적어도 우리 교인 열 두 명을 채우고 떠나고 싶다.

 

오병이어 현장 

Posted by 소리벼리

여행과 입국수속 (빌립보서 3장 20-21절)

 

여러 성도님들의 기도와 관심 속에서 십 일 년 만에 고국을 다녀왔습니다.

눈도 고치고, 이도, 피부도, 건강검진도 받고 왔습니다.

그리운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동생의 제수씨도, 동생의 아이들도 보고 왔습니다.

같이 이 곳에서 공부하고 고국에 귀국해서 자리를 잡고 있는 여러 목사님도 만나보고, 한국 총회에도 참석하고 왔습니다.

 

낯설것 같았던 고국에 한 3주 가까이 있다보니 점점 친숙해지고 역시 고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돌아오긴 전 날 미국에 부칠 책이 좀 많아 우체국에 가서 배 편으로 몇 권의 책을 부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미국 집 주소와 제 미국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무척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열 시 간 조금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한국에서의 짧은 방문기간이 여러가지 감정을 가지고 다가왔습니다.

 

역시 고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남겨온 가족들이 벌써 그리워지기도 하고 동시에 미국에 두고온 성도들과 가족들에 대한 보고싶은 마음도 더해졌습니다.

 

저와 같이 여기 모인 이민교회 성도님들의 삶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고 밖에는 한나와 네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데 간단하게 지나갈 것 같던 입국수속이 지연되기 시작했습니다.

라인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별로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한 사람 당 10분은 걸리는 것 같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얼굴을 붉히는 승객도 입국수속을 하는 관료의 소리도 들렸습니다.

 

시간이 지연되고 몇 몇 고성도 나니까 덩컹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못들어 가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아내과 딸이 더 보고싶어 졌습니다.

어떻게든 집에 가고 싶고 교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해 졌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이 말씀이 생가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집에 가야 합니다. 집에 보내 주세요. 교회에서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검사관이 제 지문과 여권을 조회하면서 무언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면서 제 서류가 부족하다고 더 내어 놓을 것 없냐고 이게 다 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가 물었지만 검사관은 그저 더 필요한 서류를 내라고 말을 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진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아 영주권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여주니 왜 이것을 이제야 보여 주냐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다가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드디어 두 시간 넘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딸을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전도 폭발 때 했던 질문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당신이 만일 오늘죽어 천국문 앞에 섰다면 그 곳에서 그 분을 지키고 있는 천사가 내가 널 천국에 들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답변하겠냐는 질문입니다.

 

그렇고 보니 천국에도 입국수속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수속 전까지는 이 땅이 고향인지, 천국이 본향인지 헤깔리고 불분명하기도 하지만 그 앞에 설 때 마치 집에 두고온 가족과 성도가 생각나듯이 내 집이 어디인지가 명확해질 것입니다.

 

때로 여행은 우리의 삶에 활력소를 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고 재 충전의 시간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여행하다 보면 집보다 여행지가 더 좋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가장 좋은 것은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입니다.

 

때로 야외예배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도 물론 우리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에 호흡을 주는 그런 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짧은 여행과도 같은 그런 특별한 시간이지만

돌아갈 집이 있고 또한 모이는 성전이 있기에 이러한 야외예배도 즐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긴 외국인의 입국수속 줄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시민권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짧고 빠른 줄이었습니다.

저 시민권이 있으면 공항에서 기다리자 않고 바로 갈 수 있구나!

 

우리는 어쩌면 긴 광야같은 긴 여행길을 가는 순례자입니다.

긴 여행길에서 우리는 두 세계 사이를 늘 방황합니다.

한 세계는 우리가 읽은 본문 바로 앞 구절에 있는 이 땅에 소속을 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그들의 신은 늘 자기를 채우는 자기 만족, 자기 배요, 그러한 자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국 부끄러움을 가져다 줄 그런 나라이요

우리의 나라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하게 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나라입니다.

 

함께 이 땅의 여행길을 가고 있는 사랑하는 로고스 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천국의 시만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소속은 하늘나라입니까?

그럼 여행자의 마음으로, 순례자의 마음으로 이 땅의 삶을 때로는 즐기고, 때로는 견디고, 때로는 누리면서, 하늘나라의 입국수속에서 당황하지 말로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과 그것을 믿는 믿음이라는

천국의 영주권, 천국의 시만권이 나에게 있음을 늘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입국수속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