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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제자들을 향한 오병이어 사건

"너희가 주어라"

제자들의 반응 - 우리에겐 저들을 먹일 돈이 없습니다. (자기 능력)

우리는 저들을 먹일 처지가 안됩니다. (상황)

주님의 말씀, 명령에 대해서 우리가 하게 되는 첫 번째 반응

마가복음 6장 7- 그들에게 말씀(명령)하시는 주님은 그들이 순종할 때 능력도 주시고 은혜(은사)도 주신다.

 

오병이어,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달라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순종할 때 상황에 의지하지 말고 말씀에 의지하라 하신다.

불순종하는 자들이 의지하는 것은 언제나 능력과 상황이다.

순종하는 자들은 비록 능력이 부족하고 상황이 안되도 하나님이 말씀을 붙잡는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 분이 말씀하시기에 순종한다.

믿음 생할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순종한 아브라함을 통해 시작되었다.

 

오늘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 예수의 제자들에게 일어난 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 1-2절)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1. 오병이어 때와 마찬가지로 무리가 몰려와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분명 예수가 말씀하시는데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표현한다.

우리가 누구에게로부터 듣던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 시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2. 바닷가에 수많은 무리가 몰려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또다른 자들 가운데 서 계신다.

그곳엔 주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가 있음과 동시에 그 자리에는 있지만 앉아있기는 한데 말씀과 상관없이 그물을 닦는 자들이 있다. 바로 어부들의 무리다.

어부는 고기낚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직업은, 우선순위는, 관심은 오직 고기낚는 데에 있다.

지금 예수님이 앞에 서서 말씀하시는 데도 그들은 그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관심이 그물에, 고기에, 먹고 사는 일에, 오늘 잡히지 않는 고기에, 내일 걱정에 꽂혀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관심은 무엇인가?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께 있는가? 아니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다른데 있는가?

 

  • 3절)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1. 시몬의 배에 올랐다.

배에 올랐다는 것은 내 인생에 그가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예수가 내 인생에 들어오셨다. 내 인생에 개입하셨다. 언제나 주님이 먼저 오신다.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날 찾아오신다. 그 분이 내 인생에 들어오신다.

 

2.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무리와 베드로 사이에 서 계시던 주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육지에서 멀어지셨다. 무리에서 멀어져 베드로에게 오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여전히 그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그 말씀은 여전히 무리들을 향한 말씀일 뿐이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허탕을 쳤다.

오늘 걱정도 걱정이지만 또 내일 고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심신이 피곤한데도 그물을 닦았다.

허탕치고 그물을 씻는 기분이 어떨까? 좋을리 없다. 짜증은 짜증대로 깊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위해 또 그물을 씻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의 모습은 팔자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세월좋은 모습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가 내 배에 올라오신다.

기분이 좋았을까? 아니다.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라 명령하신다.

그물 다 씻어놀고 내일 준비 다 해놓았는데, 계획도 다 세워놓고 이젠 쉴 일만 남았는데 또 배를 움직이라 하신다. 평소 베드로 성격이라면 벌컥 화를 낼 일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릴리 없다. 주님은 날 보며 말씀하시는데 아얘 귀를 닫고 외면한다.

그래서 주님은 더욱 베드로와 가까워 졌는데 말씀은 여전히 무리를 향한 말씀으로 표현된다.

 

  • 4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1. 더 이상 무리를 향한 말씀은 끝이 났다. 이젠 직접적으로 말씀이 베드로를 향한다. 핑계될 구석이 없다. 마치 불순종하는 요나의 귀에 대고 하나님이 소리치는 것처럼 애써 성질 참아가며 억눌르며 피하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주님이 말씀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2. 이 말씀은 오천명의 무리를 보며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하셨던 말씀처럼 불순종할 만한 여러 이유들이 있다. 시간적으로 이제는 피곤해서 쉬어야 할 시간이었고, 작은 고기배로 가기엔 말두 안돼는 깊은 데로 가라 하시고, 그리고 그물도 다 씻어 정비해 놓았는데 다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이백 데나리온의 돈을 어디서 구합니까?"말하고 있는 빌립처럼 얼마든지 항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기적이 베드로의 입술에서 일어났다.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던 예수님을 애써 외면하고 그물을 낚던 그가 말두 안되는, 정말 상식밖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도 불순종의 반응이 아닌 순종의 반응

 

  • 5절) 선생님 (Master, 주여!)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한 마디로 시몬의 인생은 한낱 물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낚는 어부, 그것도 사람낚는 어부 중에서도 예수의 수제자, 반석이라 불리는 자가 된다.

 

(마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반석 위에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의 공통점 - 둘 다 모두에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딛친다.

고난이 없다는 말이 없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온다. 반석같은 믿음이 있어도 고난이 오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에게도 고난은 온다. 우리의 착각 - 이렇게 열심히 믿는데 왜 고난이 오나요?

열심이 믿으면 고난 안받는다고 어디 나와 있나요?

 

반석 위의 사람과 모래 위의 사람 - 둘 다 듣는다. 말씀을 외면하지 않는다.

말씀을 외면하면 아얘 집이 지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다고 은혜 받았다고, 깨달았다고, 반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석은 순종할 때 주어지는 은혜다.

 

설교 말씀 듣고 간증을 들으면 나도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준다. 그런데 그렇게 내 감정이 움직인다고 내 믿음이 세워진 것은 결코 아니다. 말씀을 들음이 믿음의 시작이라면 그 완성은 듣고 행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롬 10:17)

(약 1: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에 의해서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나에게 이루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애쓰고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날 때에도 넘어짐이 없다.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없고 끝까지 자신에게서 모자란 것을 찾고 더욱 말씀을 붙잡는다. 세상의 여건과 환경이 나쁠 때 더 실력발휘를 하고 더 뜨거운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 깊은 데로 가라

깊은 데로 가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얕은 신앙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살고 있다. 깊은 곳에는 조금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왜? 얕은 물이 안전하니까.. 깊은 물의 파도를 두려워 하고 단지 쉽게 피할 수 있는 얕은 물 가에서 산다."

빠지지 않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고난 없기 위해, 남들처럼 살기 위해...

 

찬송가 302장

2절)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 번 헤아려 안보나

3절) 많은 사람이 얕은 물 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 약하여 못보네

 

  • 믿음의 삶: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모험적인 삶, 위험한 삶.. 그래서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오길 주저한다.

-> "만일 내가 주님께 진심으로 헌신하면 그분은 나를 광신도로 만들어 버리실 거야. 그럼 내 가정도 내 삶도 엉망이 되겠지… 친구들도 다 떠날거야. 적당히 믿어야지…" -> 얕은 물 신앙. 너무도 많은 신앙의 비밀들을 놓치고 만다.

  • 하나님의 계획: 좋은 것, 완전한 것,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궁극적으로 나의 유익을 위한 것
  • 지금도 원하시는 예수님의 요청: 나를 네 배에 태우라. 네가 어디로 가든 너의 사업, 너의 가정, 너의 결혼을 비롯한 네 삶의 모든 영역에 내가 함께 하게 하라. 내가 널 온전케 하리라."

 

  • 오병이어와 배에 오르신 사건의 결말

나를 드렸더니 주님의 일을 성취했을 뿐만 아니라 12 광주리에 차고 넘치는 은혜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사람낚는 어부(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음.

자기가 최고의 노력을 해도 얻지 못하던 것을 순종하니 주님이 이루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말씀이지만 그건 내 상황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전 지금 너무 힘들다.
-> 그런 힘듦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 힘들기에 날 따르라는 것이다.

힘드니까 이젠 너의지 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는 것이다. 너의 집을, 너의 배를 나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안되는 길로 가면....

 

15주년 - 난 이제 우리 교회 성도들이 얕은 물에서 벗어나 깊은 물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않고 들을 수 있도록,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가 되기를,

고난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와도 그 집이 무너지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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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23 22:29

    아멘.^^
    말씀이 삶으로 증명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를 향한 기적인가! (마가복음 6장 30-44절)

 

오병이어라고 불리는 예수의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기적 중에서도, 그리고 그 분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기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기적이다.

 

나도 2015년도 교회의 표어를 "너희가 먹이라!"라고 정하면서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 적이 있고 그 외에도 여러번 오병이어의 사건을 설교를 통해서 전했다.

 

이 사건의 내용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에수님이 기적을 보이시고 병자들을 고치자 예수의 소문이 예루살렘 곳곳에 퍼진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33절에 보면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예수님께로 모여든다.

 

  • 그리고 그들은 때가 저물때까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듣는다.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며 모여드는 자들을 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여 아침부터 날이 저물도록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매달려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예배시간 한 시간도 지겹게 힘들게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예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들었을까?

그들은 처음부터 오병이어의 기적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이 모여든 것은 예수를 보기 위해서고, 그리고 나서 그들은 예수가 하시는 말씀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들었다.

 

은혜는 갈급함에서 온다.

자리를 떠나지 않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는 자에게 베데스다 연못에서도, 성전 미문에서도 기적이 임한다.

 

  • 예수님은 영적인 은혜만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들이 날이 저물도록 말씀을 듣고 떠나지 않자 그들이 구하기 전에 주님께서 그들의 배고픔을 알아채셨다.

신앙은 영의 것을 구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육적인 문제도, 이 세상의 문제에도 결코 소흘함이 없다.

우리의 일상을 무시하지 않는다.

 

  • 마을로 가서 이들로 무엇을 사먹게 하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주님은 갈 것 없다 하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신다.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다. 그러자 요한복음에 의하면 한 아이가 가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축사하시고 그들 모두를 배부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열두 광주리를 채워 가신다.

 

이 사건은 여러가지 각도로 해석되고 설교되어져 왔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에 대한 대표적인 기사로도 소개되었고 어린아이의 헌신에 맞추어 우리의 작은 헌신이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을 강조하며 헌신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로도 소개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제자들의 역할은 극히 외면되었다.

그들은 이 사건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 아닌 작은 어린아이라고 표현된 자의 헌신을 통해 오천명을 이루신다.

 

성경에서 어린아이는 "순전함"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무력함" "존재없음"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이기도 하다.

 

  • 오늘은 제자들의 각도에서 이 사건을 좀 더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한다.

 

공관복음에서 오병이어의 사건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빈들"이지만 요한복음은 이 사건이 "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요 6:3)

 

산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곳이다. 이 땅의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는 장소,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면하고 오직 주님으로만 채우는 장소, 골방, 내면의 빛, 기도의 시간, 성경은 산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그 중심엔 주님과 대면하고 주님의 임재로 가득찬 장소이다.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의 본문에서는 특별히 이 곳에 있던 제자들을 제자라고 명하지 않고 사도라고 명한다.

사도라는 말은 사도행전 이전엔 쓰지 않던 표현이다. 유달리 이 사건에서만 성경은 제자들을 가리켜 사도라 명한다.

 

사도는 주님의 특별한 사명을 가진 자들이다.

 

  • 30절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히 고하니" (막 6:30)

이 구절은 앞선 7절부터 13절까지 예수께서 이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낸 사건과 연결되는 구절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명을 띠고 파송받아 지금 돌아와 있다. 주님은 그들을 그냥 보내시지 않는다. 임무를 주시는 예수는 그 임무를 이룰 능력을 미리 주신다.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병자들을 치료할 권능을 주시고 또한 선포할 말씀을 주신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도인 것이다.

 

사도로 파송된 그들이 돌아와서 의기 양양하게 자랑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도 예수처럼 능력이 나타남을 신기하게 여기면서 좀더 신령한 자가 된 듯 했을 것이다.

 

영적으로는 한 껏 들떠 있었지만 한껏 육신적으로 피곤해있던 그들에게 주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육적 피곤함을 아는 주님은 그들에게 쉼을 주신다. 안식하게 하신다.

 

  •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물론 주님은 그들이 안식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허락하신다.

그런데 이것이 제자들에게는 "음식을 먹는 시간으로 표현되지만"

예수님께 적용하면 주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 다다를 때마다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기도하셨다.

 

주님에게 안식은 단지 육신적인 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창조기사에서 안식은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구별되고 구별된 것에 인간이 거했을 때에 주어지는 결과이다.

 

그리스도인의 안식은 결코 육신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질 때에 우리는 안식한다.

 

그 분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다면 아무리 유람선을 타고 배 속 깊은 곳에서 잠을 잔다하더라도 그것은 고통의 시간이지 안식이 될 수없다.

 

  • 안식을 주신 주님이 이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바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것이다.

왜 주님은 그들에게 이 말을 하셨을까? 어린아이를 돋보이게 하시려고?

그들 아니어도 주님의 행하시는 것을 강조하시려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그 표현에 주님의 진심이 들어있진 않을까?

 

각자 물고기 잡으러 떠난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물고기와 떡으로 먹이시고 채우신 후에

"네가 날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사도로 세우신 후에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셨던 주님께서

 

사도로서의 사명을 맡기시고 경험하게 하신 후에 그들에게 무리를 맡기시고자 진심을 다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고 계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주님의 말씀이 임하면 우리의 삶은 흔들리게 되어 있다. 때론 지진으로 임하고 때론 불로도 임하고 때론 세미한 음성으로 주님의 음성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가오지만 공통적인 것은 우리 삶을 뒤흔든다는 것이다. 갈등을 주고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선택을 요구하고 때로는 이삭을 바치는 것 같은 포기를 원하시기도 한다.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에 대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불손종할 핑계를 찾기 위해 자신이 포기 할 수 없는 이유를 대는 것과

순종하기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전자를 택했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이백데나리온이라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없음을 이야기하고

자기들이 이미 일을 다해 피곤하다는 육신적인 이유를 대기도 한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정탐하라 (자신을 살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떤 이는 "그 땅은 정말 좋은 땅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능히 저 땅을 정복하자" 하는 자들이 있는가하면

그 땅에 사는 사람은 너무 강하고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다 라고 하면서 스스로 주저앉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성경은 그렇게 스스로 주저앉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곧 먹이는 것이다. 내 살과 내 피로 저들을 먹이는 것이 사랑이다.

 

부유한 자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이 없어서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움켜 쥐고 있는 것이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가난한 자가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된다. 천국을 소유한다.

예수로만 채울 수 있는 자가 근심하지 않고 자기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왜 우리가 나눌 수 없는가? 왜 먹이질 못하는가?

말씀대로라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결국 어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나바호 선교

우리에게 먹이라고 붙여준 사람들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작년에 우리가 처음 참석하면서도 앞장서서 리더의 역할을 했었는데 올해엔 갈 사람이 없다.

첫날 모임에 고민 고민 하다가 "올해 우리 교회 여건이 갈 수 없는 형편입니다."말하려고 참석했는데

예배 가운데 주신 감동

계속 생각나는 부담과 그들의 소리.

 

사도들이 외면하면 어떤 어린아이, 아니 돌맹이라도 사용해서 일하실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다가서서 "너희가 주어라. 난 너희가 그들을 먹이기를 원한다"하고 말씀하시는 소리 .

 

올해 제가 라이드 팀장

큰 차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12인승을 빌려가야 하는데 타고가는 사람은 고작 네 명.

 

각자가 힘들고 어려운 사정이지만 난 이 차에 적어도 우리 교인 열 두 명을 채우고 떠나고 싶다.

 

오병이어 현장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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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16 04:35

    샬롬^^
    바쁜 한주를 보냈습니다.
    12인승 차량에 동승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여행과 입국수속 (빌립보서 3장 20-21절)

 

여러 성도님들의 기도와 관심 속에서 십 일 년 만에 고국을 다녀왔습니다.

눈도 고치고, 이도, 피부도, 건강검진도 받고 왔습니다.

그리운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동생의 제수씨도, 동생의 아이들도 보고 왔습니다.

같이 이 곳에서 공부하고 고국에 귀국해서 자리를 잡고 있는 여러 목사님도 만나보고, 한국 총회에도 참석하고 왔습니다.

 

낯설것 같았던 고국에 한 3주 가까이 있다보니 점점 친숙해지고 역시 고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돌아오긴 전 날 미국에 부칠 책이 좀 많아 우체국에 가서 배 편으로 몇 권의 책을 부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미국 집 주소와 제 미국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무척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열 시 간 조금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한국에서의 짧은 방문기간이 여러가지 감정을 가지고 다가왔습니다.

 

역시 고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남겨온 가족들이 벌써 그리워지기도 하고 동시에 미국에 두고온 성도들과 가족들에 대한 보고싶은 마음도 더해졌습니다.

 

저와 같이 여기 모인 이민교회 성도님들의 삶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고 밖에는 한나와 네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데 간단하게 지나갈 것 같던 입국수속이 지연되기 시작했습니다.

라인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별로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한 사람 당 10분은 걸리는 것 같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얼굴을 붉히는 승객도 입국수속을 하는 관료의 소리도 들렸습니다.

 

시간이 지연되고 몇 몇 고성도 나니까 덩컹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못들어 가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아내과 딸이 더 보고싶어 졌습니다.

어떻게든 집에 가고 싶고 교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해 졌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이 말씀이 생가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집에 가야 합니다. 집에 보내 주세요. 교회에서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검사관이 제 지문과 여권을 조회하면서 무언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면서 제 서류가 부족하다고 더 내어 놓을 것 없냐고 이게 다 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가 물었지만 검사관은 그저 더 필요한 서류를 내라고 말을 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진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아 영주권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여주니 왜 이것을 이제야 보여 주냐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다가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드디어 두 시간 넘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딸을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전도 폭발 때 했던 질문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당신이 만일 오늘죽어 천국문 앞에 섰다면 그 곳에서 그 분을 지키고 있는 천사가 내가 널 천국에 들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답변하겠냐는 질문입니다.

 

그렇고 보니 천국에도 입국수속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수속 전까지는 이 땅이 고향인지, 천국이 본향인지 헤깔리고 불분명하기도 하지만 그 앞에 설 때 마치 집에 두고온 가족과 성도가 생각나듯이 내 집이 어디인지가 명확해질 것입니다.

 

때로 여행은 우리의 삶에 활력소를 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고 재 충전의 시간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여행하다 보면 집보다 여행지가 더 좋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가장 좋은 것은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입니다.

 

때로 야외예배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도 물론 우리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에 호흡을 주는 그런 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짧은 여행과도 같은 그런 특별한 시간이지만

돌아갈 집이 있고 또한 모이는 성전이 있기에 이러한 야외예배도 즐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긴 외국인의 입국수속 줄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시민권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짧고 빠른 줄이었습니다.

저 시민권이 있으면 공항에서 기다리자 않고 바로 갈 수 있구나!

 

우리는 어쩌면 긴 광야같은 긴 여행길을 가는 순례자입니다.

긴 여행길에서 우리는 두 세계 사이를 늘 방황합니다.

한 세계는 우리가 읽은 본문 바로 앞 구절에 있는 이 땅에 소속을 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그들의 신은 늘 자기를 채우는 자기 만족, 자기 배요, 그러한 자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국 부끄러움을 가져다 줄 그런 나라이요

우리의 나라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하게 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나라입니다.

 

함께 이 땅의 여행길을 가고 있는 사랑하는 로고스 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천국의 시만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소속은 하늘나라입니까?

그럼 여행자의 마음으로, 순례자의 마음으로 이 땅의 삶을 때로는 즐기고, 때로는 견디고, 때로는 누리면서, 하늘나라의 입국수속에서 당황하지 말로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과 그것을 믿는 믿음이라는

천국의 영주권, 천국의 시만권이 나에게 있음을 늘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입국수속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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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08 05:05

    샬롬^^
    말씀이 안올라와서 걱정?했는데 고국방문을 하셨네요.
    한번 뵙고 싶었는데요..ㅎ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꼭 뵈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야하는데 이땅에일에
    집착하는 제모습을 볼때면 기도가 심히 필요한 제
    자신을 봅니다.
    천국의 시민권자로 살아가야하는데 말입니다.
    항상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