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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 중에 부르는 노래 (합 3:16-19) 

 

[합 3:16-19]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한 달 전쯤만 해도 아침 묵상 녹화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공원에 들려 한 시간쯤 새벽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수도, 나무도, 호수 위에 오리들도 새벽녁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Day ligit Time이 끝나고 나서 한시간이 늦어지니 새벽이란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7기가 되어도 밖이 어두워서 산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랜간만에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차라리 시간을 옮겨 오후 5시쯤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새벽녁 걷던 공원에 나갔습니다. 걷기 시작한지 몇분이 채 되지 않아 공원이 칠흙같이 어두워졌습니다. 아이들이 무섭다고 빨리 들어가자고 보챕니다. 결국 핸드폰 후레쉬를 비추고 가장 짧은 코스를 서둘러 걷느니 마느니 하고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길도 어둠이 임하면 두렵고 어둡습니다. 

물리적인 길도 그러한데 인생길이야 두 말할 필요 없습니다. 눈 앞이 캄캄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인생길이 하루 아침에 감옥과도 같은 현실이 되고 맙니다. 

보이는 길을 걸어가는 길도 때로는 쉽지 않은데,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생의 어두운 밤 길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급습합니다. 코로나 19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지만 사람들이 희망을 갖기 보다는 앞으로 닥칠 큰 혼란과 갈등을 더 두려워합니다. 

 

왜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칠흙같은 어둠의 밤이 찾아오는 지 하나님은 그 때 그 때 답을 주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밤에도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일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나누고 있는 이사야 45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 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바벨론의 압제 하에서 흑암의 밤을 지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준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나눈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값진 진주를 장사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흑암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케 하시고 역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의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철저히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한동대학의 세워진 기록을 담은 [갈대상자]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길이었지만 그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나는 길목 길목마다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지켜보며 그 분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난 사람은 그 길이 아무리 캄캄하다 할지라도 가장 안전하다고 감히 외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되어 갔다." 

바로 흑암 중의 보화를 캐내는 사람이다. 

 

1. 하박국의 배경 

하박국은 예레미야와 동시대 사람으로 바벨론에 의해 유다나라가 파멸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흑암의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피 토하듯이 말씀을 전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귀 기울이지 않았고, 민족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형제국가였던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망했어도 남왕국 유다는 태연하게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바벨론이 갑자기 떠올라 앗수르와 애굽을 차례로 제치고 주변 지대를 장악해 갑니다. 그리고 급기야 유다를 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 옵니다. 

 

이 때의 상황을 하박국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얼마나 두렵고 절망했으면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렸겠습니까? 

지금도 어려운데 닥쳐올 환날 날은 더욱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내 뼈가 썪는 것 같다고 하고 온 몸이 집안 처소에서조차 떨린다는 것입니다. 

 

온 몸과 뼈가 다 떨리는 위기의 때에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은 어떻습니까?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이 한 절에 "없다"라는 표현이 다섯 번, 무성하지 못하며까지 합치면 여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위기는 닥쳐오는데, 온 몸은 절망하는데 내가 가진 것을 보니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그저 완전히 없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그런 인생의 캄캄한 밤을 보내는 하박국이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합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뿐만 아닙니다. 

모세도, 다윗도, 바울도 한참을 자신들의 처한 칠흙같은 밤을 하나님 앞에 아뢰다가도 그들의 끝은 언제나 찬양으로 마칩니다. 의례껏 하는 형식이 아닙니다. 흑암 중의 보화를 캐내는 것이고 은밀한 중에 재물을 주시듯 그들의 입술에 찬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찬양, 이 고백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안 그런데 입술로만 외치는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1장부터 흘러오는 하박국의 마음의 흐름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1장: 하박국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이 두 번 반복됩니다. 

첫 번째 기도 

[합 1:2-4]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 지금 그들이 처한 현실은 흑암처럼 어렵기만 한데 하박국의 눈에 비친 가장 큰 고통은 유다 백성이 그러한 현실에도 죄악으로, 패역으로, 갑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 정의가 없고, 말씀도 없는, 전혀 정신 못차릴 뿐만 아니라 악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 

[합 1: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  무슨 소리입니까? 유다 백성의 죄악이 극에 달했으므로 그들보다 더 악하고 강한 갈대아 사람, 바벨론 사람을 일으키어 그들을 삼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응답에 놀란 하박국이  기가막혀 더 크게 기도합니다. 

[합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 뭐라 기도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을 했다고 그래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배하지도 않는 이방인들을 통해 성전을 짓밟고, 허물어 낼 수 있습니까? 기도라기 보다는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 이런 항변의 기도를 통해서도 하박국에게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살아계시고, 그 분은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주님 살아계시기에, 그 붙의 통치하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묻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요구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2장의 주된 내용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재산이 늘어나고, 은행의 잔고가 늘어나고, 부동산이 늘어가고...좋은 직장, 좋은 대학..세상 일이 잘되는 재미로 살아가지만 하박국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재미로 살아가는 것이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단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장을 꽤뚫는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하박국은 더 이상 하나님께 따지지 않습니다. 항변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이 유다 백성을 어렵게 할지라도 하나님은 종국에 악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흑암과 어둔 밤같은 인생일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지만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모든 자의 능력이요, 구원이요, 생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고통의 현장과 아픔의 현장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뚝 서 계신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를 둘러싼 모든 "없음의 상황"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3장으로 가면 하박국은 지나온 자신의 삶과 이스라엘의 지나온 과거를 돌아봅니다. 

[합 3: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 데만과 바란- 바로 시내산과 동일한 지명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광야 땅에서 언제까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다가오셨던 곳,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주면서 약속해 주셨던 바로 그 곳입니다. 
  •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다. 내가 너희를 돌본다. 다스린다"는 말씀을 주시고 확인시켜 주신 장소가 데만이고 바란 산입니다. 

 

위기에 처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어려움이 없었던 자가 없습니다. 환란이 없었던 자가 없습ㄴ지다. 그러나 그들은 그 환란 중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신뢰하게 되었고 결국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예배는 과거에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여 현실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여 현실로 가져오도록 절기를 정하여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같은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만찬 사건을 통해서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념하라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끌어와서 오늘 여기에서 그것을 다시 맛보고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기억하고 기념하여 현실로 가져오는 시간입니다. 

 

그런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과거에 나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신 하나님을 오늘 여기에서 만나게 되고, 경험하게 되면, 미래에도, 장래에도 끝까지 나를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는 비전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과거의 것을 이끌어와서 현재에 경험하는 것임과 동시에 미래의 사건을 끌어당겨서 여기 내가 처한 현실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장래 하나님의 나라에서 맛보게 될 혼인잔치를 끌어당겨서 지금 칠흙과도 어두운 흑암의 현실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지나온 삶들을 돌아보십시오. 지금 보다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픔이 있었지만 동시에 은혜가 있었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문제들이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큰 지나가버리지 않았습니까? 

돌이켜 보면 은혜 아닌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날 들 중에서 인생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손 길이 없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고통은 과거도 잊게 만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다 끊어버리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다가올 미래를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서도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여전히 연약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장받았습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은혜의 과거와 은혜의 미래 속에서 지금을 이기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다 끊어진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지금이 제일 힘들다. 지금 처럼 힘든 날이 없었다." 

여러분 그런데 그 말 진짜입니까? 진짜 지금보다 더 힘든 때가 없었습니까? 

 

있었지요? 고통스러워 밤 잠 못누리고, 서럽고 외롭던 시간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시간들, 그 순간들 지금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나갔지요? 잘 기억도 안자지요? 그럼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은 어떨까요? 또 지나가고 기억도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은혜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과거의 구원과 미래의 하늘 나라 사이에서 각자가 선택한 배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객일 뿐입니다. 

 

  • 하박국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다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늘 옳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덜 가치있는 것을 가장 가치있다 말하고, 덜 좋은 것을 가장 좋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행복하고 좋은 것을 아시고 주십니다. 

농부의 고백: 한 낮의 더위가 너무 뜨거워 일하지 못할 때,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그 때조차 곡식은 익어갔습니다. 한겨울의 추위가 온 몸을 얼어붙게 해서 논밭을 들여다볼 수 조차 없을 때에 땅 속의 온갖 병충들이 다 죽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난 내 손길이 다 열매인 줄 알았는데, 정작 농작물은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그 때에 자연이, 자연의 주인이신 당신께서 모든 열매를 익게 하시고 열게 하시고 또 다음 해에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 이생진 시인이 하늘을 본다 - 개미에 관한 많은 시를 남겼는데 한 구절이 기억나는 시

 

가진 것이 없으면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 

가진 것이 많은 개미는 하늘을 보지 않는다. 

머리를 땅에 박고 땅만 뒤진다. 

 

물론 성실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늘을 잊고 땅만 뒤지면서 사는 개미들은 자기가 가는 길도, 본향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내 인생의 과거와 미래, 그 방향을 바라보며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입으로 유다가 멸망당하면서도 그저 악행을 그치지 않고 멸망당하는 자기 민족을 바라보며 부르짖었습니다. 자기들보다 더 악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노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시고, 현실을 넘어 흑암 너머의 소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래사 하나님의 백성은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하박국은 모든 없음의 상황에서도 난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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