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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9:1-7]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경고가 반복적으로 등장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등장 

그 사이에는 어떤 논리가 없다. 그들이 돌아와서 구원하신다. 그들이 회개하여 회복하신다. 그렇지 않다. 

 

8장의 끝 - 

[사 8:21-22]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그런데 9장의 시작 

[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왜 그런지 그 이유가 없다.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이 9장에는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이리로다 

 

설명이 없다. 단지 3절 -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6절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으니....이미 난 아이- 하나님이 하신 역사의 증거, 징조, 싸인

 

7장에 나온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때 나을 아이 -> 9장에 이미 태어난 아이 ->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히 성취되고 구체화 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사야가 외친 이 아기는 그 당시 도대체 어떤 의미로 이해되었는가? 

아주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고 구체화 된 - 모든 것의 정답 

그런데 그 사이에 이루어진 그 역사적인 체험을 잊는다면 우리 삶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임마누엘, 기묘자, 모사의 징조를 통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기다리면, 그분을 바라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시작된다. 그 분은 새 창조의 역사를 발한다. 

 

 당시 - 아기, 임마누엘 - 아기에게 관심이 없다. 단지 기다림의 기간이 중요할 뿐이다. 

 

 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기로 표현하는가? 

[사 8:16-18]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봉함하라. -> 타임캡슐 (시간이 지나서 그 일이 일어났는지 안잃어났는지...) 

 

이사야 - 백성들에게 깨달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그러나 그들이 깨닫건 말건 이사야의 이름은 "하나님이 너의 구원이시라" 

 

스알야숩 - 결국은 이스라엘이 남겨질 것이다.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마할살렐하스바스 - 너희들을 친 그들이 망할 것이다. 

 

아기를 통해 주어지는 징표 -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미래를 기다리게끔 하는 소망 

 

아기 안에 녹아있는 전혀 새로운 세계 - 지금 이 세대에 기대할 수 없는 새 소망, 그 분의 약속과 성취, 신실하심. 기묘하고 알 수 없는...

 

[롬 8:30-31]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럼 우리가 해야 할 것 - 잘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그 분을 바라보는 것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은혜 - 옳음이 아니다. 옳음은 1+ 1= 2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는 값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도무지 계산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복받는 자의 원인을 찾아내 공식을 만들려고 한다. 은혜를 공식으로 바꾼다. 은혜가 공식이 되면 그것은 율법이 되는 것이다. 

 

사탄의 참소 - 자꾸만 공식을 대고 우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벌받고 저주받아 마땅한 자로 자멸하게 한다. 

아니면 그 공식이 깨어지는 불합리를 통해 시기하고, 미워하고, 사랑을 잃어버리게 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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