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2020  이전 다음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 -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을 것입이요. (마 5: 9)

팔복 중 일곱번 째 복 - 일곱: 하나님의 완전 수

청결함 -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복

         - 손을 깨끗이 하듯 행동이, 삷으로 정결함이 나타나야 한다. 

         -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 하나님을 볼 것이라. - 야곱이 이스라엘 되듯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변화되리라. 

         ->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이, 변화받은 자들이 누리는 온전함의 복. 

         평화의 복은 온전함의 복, 우리가 맺는 가장 온전한 열매 -평화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평화 

이스라엘의 역사 - 고난의 역사 - 식민지의 역사

그들의 인사 - 샬롬 

우리나라 사람들- 안녕하세요? 밤새 안녕하셨지요? 왜? 그 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지 못했으니까.

  • 성경에 등장하는 평화, 평강, 평안, 화평 이라고 번역된 단어들 -> 샬롬의 의미 
  • 예수님 -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 

베들레헴에 나실 때 허다한 천군이 천사와 함께 찬송하여 가로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친히 제자들에게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부활하심으로 평화의 복음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일생은 화평케하는 자의 온전한 일생이었다.

예수는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 세상이 말하는 평화 

세계의 패권 - 로마 -> 로마의 국가 철학 -팍스 로마 -평화로운 로마 

무엇을 가지고 이 평화를 유지하는가? 힘과 법

그들의 식민지 - 종교의 자유 보장, 자치권 인정, 엄벌에 처하는 것 - 평화를 깨뜨리면, 소란케 하면...

 

예수님, 사도바울 -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란케 했다는 죄로....

 

- 트럼프의 전략 - 힉인들이, 멕시칸들이, 이민자들이...우리의 평화를 깨뜨렸다. 

- 영국: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여 우리까리 평화하자. 

 

  •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의 의미 

영어성경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를 Peacemaker,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럼 그 평화는 어디에서부터 만들어 지는가? 

외부에서 오는 평안? NO!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평안 

화평케 하는 자는 먼저 자기 마음 속에 화평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안 - 어떤 환경에서도 요동치 않고 주어지는 평안 

 

세상의 것들이 왜 참 복이 되지 못하는가? 물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명예가, 권력이 아무리 높아도 평화를 간직할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복들은 성공하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평화를 잃어버리고 깨뜨리고 사라지게 합니다.

 

코로나 19 -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공급되는 돈. 

육신은 쉬고, 물질도 어렵다고 하지만 캘리포니아 한인가정 - 대부분 국가적 혜책 

온 가족이 함께 머물며.... 

그런데 평안하신가?  왜? 불안하기 때문. 안심할 수 없기 때문.... 

 

인류의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와 원수 맺는 타락한 본성 때문이다.  이것은 교육으로 될 수 없다. 사상으로도 안된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성령은 평화의 왕이다. 평화의 왕이 임할 때에 우리가 평화의 사람이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어 평화의 사도로 임명했지만 그들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심령 속에 평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배웠지만 그들은 원수를 사랑할 수가 없었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없었다. 그들 안에 평화의 복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뒤를 따르면서도 그 마음 속에는 평화가 없었다. 제자들은 서로 시기하며 다투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자냐고 자리다툼을 하고 분을 내고 있었다. 그들의 심령 속에 평화의 복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도 언제나 마음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었다. 자기를 압제하는 로마를 정복하는 꿈... 자기 실현 자기 목적, 오직 성령이 임할 때에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

 

  • 자기 안에 평화가 이루어질 떄에 비로서 형제들과 평화가 이루어진다. 

남들과 평화하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늘 그 원인을 외부에서, ~ 떄문에라고 하지만 내 안에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까지 용서하시고 평화를 이루심..

님들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내 안에 평화로와야 하고 또한 내가 십자가 안에서 죽어야 한다. 

자신이 죽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평화를 누릴 수가 없다. 

 

우애하고 화목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한다. 자기 욕심을 다 채우고는 결코 화목하기가 힘들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을 부정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형제들과 화목하고 평화로운 사람은 행복하다. 서로 원수 맺고 싸우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 순교는 평화의 사도가 되는 신앙행위이다. 순교는 원수의 손에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으로 원수와 평화를 이루는 행위이다.

원수의 칼에 죽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자기 죽음을 자원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만약 원수의 손에 죽으면서 마음 속에 미움을 품고 죽어간다면 이것은 순교가 아니다. 자기를 적대하는 사람에게 평화를 이루고 자신이 먼저 죽어서 원수의 마음 속에 평화를 심어주어야 한다

자기를 죽여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은 평화의 산 증인이다. 순교의 제물은 어디나 있어야 한다. 자기를 죽이고 가정에 들어가면 가족들의 마음에 평화가 임한다. 직장에 순교자로 들어가면 동료 직장인의 마음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

 

  • 화목제물의 의미 

[레 7:15-18]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흠이 없어야 한다. 

가정 평현체 따라 제물의 종류는 다를 수 있다. (소, 양, 염소...) 

그 날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어떻게 해야 그것을 하루 동안에 먹을 수 있을까? 

나누어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셋쨰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 것이다. 왜? 상해서? 

다 나누지 못해서, 자기를 위해서 남겨서...

 

자기를 위한 화목제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돌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질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드린 제사 - 회목제

오직 회목제는 제사 후의 남은 음식을 제사장에게 주거나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어 먹게 했다. 

 

결국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탐욕을 버리고, 우리의 것을 희생하며 나누라는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