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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힘써야 할 것 (베드로후서 1:1-11)

 

베드로전서 : 외부적 환란, 곧 오실 줄 알았던 주가 오시지 않고 외부의 핍박은 더해지고 있다.

베드로후서: 내부적 혼란, 외부적 환란이 더해지면 자연스레 내부에서도 혼란이 일어난다. 거짓교사와 이단들이 나오고 예수에 대한 온갖 설들이 난무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를 믿는 모든 교회와 헝제들에게 이 글을 남긴다. 베드로가 남긴 유일한 편지. 그는 핍박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형제들을 향해 어떤 글을 남겼을까?

 

종이며 사도

종: 노예 (Slave)

사도: 보냄을 받은 자, 파송된 자.

 

그는 늘 행동이 앞선던 자. 앞장 서서 일했지만 자기의 뜻과 예수의 뜻이 달랐을 때, 예수께 항변했던 자.

 

[벧후 1:1] 예수 그리스도의 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라 칭한다.

그는 자기 주관이 강한 자였다. 다혈질이고 행동파였고, 칼을 지니고 다니다가 예수를 잡고자 했던 병사 마고의 귀를 베기도 했던 열심당원이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의 제자에서 종이 되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 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종이라는 단어는 금지어와 같은 단어다. 치욕적인 과거를 연상하는 단어다.

그런데 바울도 베드로도 자기를 칭할 때 스스로 예수의 종이라 칭한다.

사도는 파송받은 자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파송한 자의 명을 따르는 것이다. 그는 예수의 심부름꾼으로 동일한 믿음을 지닌 형제들에게 편지한다.

 

그 형제는 누구인가?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이다.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넘어가보자

 

 

[벧후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은혜는 무엇인가? 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이다. 성도에게 주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를 체험하는 것이다.
  • 평강은 언제 오는가? 환경이 변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파도가 치는 중에도 예수를 알면 평강이 온다. 그것이 은혜다.
  • 내 마음에 파도가 일 때,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예수를 경험하면 그 때 평강이 임한다.

 

[벧후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 그의 신기한 능력은 무엇인가? 첫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만나는 자에게 평강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혼돈 속에서 그를 경험하면 질서가 임하고 안식이 임한다. 파도가 잠잠해진다. 또한 그의 신기한 능력은 무엇인가? 그를 경험하는 자에게 단지 예수를 경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생명(살아있는 삶, 사랑하는 삶, 불타오르는 삶-살다, 사르다. 사랑하다)과 경건 (예수를 경험하고 닮아가는 것) 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
  • 예수를 경험하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삶은 생명이 넘친다. 변한다. 움직인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를 경험한 사람은 더 예수를 알고자 한다.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게 된다.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는 것- 바로 경건이다.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보배롭고 큰 약속은 무엇인가? 보배롭고 큰 약속 (Very Great and precious promise) 아주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 - 정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썪어질 것을 피하여 (escape the corruption in the world caused by evil desire)

정욕 (evil desire) - 자기만 위하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하나님 없이 살려는....하나님과 떨어지고자 하는 그 욕망에서 기인된 세상의 부패

고유정: 자기 삶을 위해서 전남편도 살해, 아들도 살해했다고 유력히....완전히 부패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했던 사회자가 자기가 다룬 사건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라는 그런 사건.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릇된 세태의 결과물

  • 그런데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 - 신성한 성품,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게 할 것이다. 그 분을 닮을 것이다. 누가? 주님께서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는 그 분의 성품을 닮는 것에 관심이 없고, 때론 포기하고 싶고, 난 안된다고 절망할 그 때에라도 주님은 우리를 완성시키신다.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

 

[벧후 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

에베소서 2:8-9 -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선물로 주셨으니. 주님이 주신 것

[히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덕 - 믿음에 근거한 행동, 선한 행동, 영향력 있는 행동
  • 지식 - 그 행동은 어디서 나오는가?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나온다.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나온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행동은 우리의 의를 드러내지만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오는 행동은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낸다.
  • 절제 - 지식을 절제하라는 것이 아니다. 바른 지식을 통해 우리 자신을 절제하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말씀으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자기를 죽여 그리스도의 행동이 나오도록 하라는 것이다.
  • 인내 -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할만할만하면 또 내 성격이 나오고 내 성질이 나온다. 한 번 순종은 쉽지만 계속적인 순종은 십자가에 온전히 죽은 것이다. 십자가에 온전히 죽는 것은 죽음을 인내하는 것이다. 고통을 참는 것이다.
  • 경건 - 무엇으로 인내하는가? 다시 말씀과 기도다. 경건은 무엇인가?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오도록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 삶에 그리스도가 일하시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 그런데 그 경건의 끝이 왜 형제우애와 사랑으로 끝나는가? 예수님의 새계명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경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경주하는 것이다. 믿음의 길은 내가 높아지기 위한 경주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경주이다.

 

금요일 신명기 말씀을 통해 나누었지만 광야 생활 40년동안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다름아닌 모세다. 그는 백성을 짐처럼 여기고 부담스러워했지만 결국 그들을 위해 가나안을 포기한다. 그들을 멸하시려면 자신부터 처단하라고 한다. 단지 통솔자에서 영적 부모가 된다. 진정 사랑하는 자가 된다.

 

사랑을 열매로 할 적에 그 사랑의 원천은 그리스도가 완성시키리라는 약속에 근거한 믿음이요, 그 믿음을 이루어가는 것은 지식과 경건, 즉 말씀이고 기도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절제와 인내이다.

같은 내용을 다룬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서는 그렇기에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로 시작해서 끝까지 견디는 것으로 마친다.

 

내적 외적으로 피곤함과 핍박에 시달리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베드로는 너희들이 예수를 알고 경험하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힘쓸 것, 우리가 열매 맺어야 할 것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 없는 자, 이런 열심과 이런 열매가 없는 자를 무엇이라 말하는가? 맹인이라 말한다.

예수를 보면서도 예수를 보지 못하고 예수를 경험하면서도 예수를 닮지 못하는 자 -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 맹인이라는 것이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경험하면서 이렇게 예수를 닮아가고자 하는 자는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확언한다. 왜 실족하는가? 우리의 관심이 예수를 알고 예수를 닮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부르심과 택하심

내가 주께 나온 것이 아니라 주가 날 불렀다. 주가 날 택했다. 왜?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고.... 그 안에서 온전케 하려고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다. 예수를 알고자, 예수를 경험하고자, 예수를 닮고자 하는 자들이 넉넉히 누리게 되는 은혜이다. 보배롭게 지극히 중요한 은혜이고 약속이다.

 

왜 기도하는가? 왜 열심내는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내 뜻, 내 소원 이루려고 열심 내는 것 아니다. 생명과 경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열심내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베드로의 눈물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