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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의 기쁨의 전도자 (빌립보서 1장 12-21절)

 

새벽예배에 말씀을 나누고 있는 빌립보서.

27권 신약성서 중에서 사도바울의 저작이라고 여겨지는 성경이 13권인데 그중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 바로 빌립보서

 

빌립보는 이스라엘이 속한 아시아와 로마로 향하는 유럽의 다리 역할을 하는 지역인데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시작지가 바로 빌립보 지역이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빌립보 교회의 탄생에 대한 배경이 소개되는데 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복귀해서 1차 전도여행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 2차 여행을 출발하고자 채비를 갖추고 있다.

1차 전도여행을 함께 했던 바나바와 결별하고 이제 실라와 디모에와 함께 떠나는데 원래 그들의 목적지는 1 전도여행에서 방문하거나 개척했던 교회들을 방문하여 굳건히 하는 것이었다.

 

1. 무엇을 위해 힘쓰는가?

 

그런데 출발하고자 할 때 성령께서 그들의 길을 되돌이켰다.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7절)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절)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 바울과 그 일행에게 있어서 마게도냐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지역. 언어나, 거리, 거기에 대한 정보도 하나도 없었다.

성령의 두 번에 걸친 역사와 환상으로 인해 그들은 준비되지 않은 땅, 준비되지 않은 채로 미지의 땅 마게도냐, 유럽을 향하여 떠난다.

 

7절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10절-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니 곧 바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

 

무엇을 위해서 애쓰고 힘써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2. 감옥과 기쁨

빌립보서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

그런데 이 글의 쓰는 바울의 배경을 보면 기쁨이라는 주제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바울의 현상황

로마 감옥에 2차 투옥

1차 때는 단지 감금으로서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지만 그 곳으로 오는 사람들을 영접하며 마음껏 대화하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빌립보서를 쓸 당시의 상황은 더 악화 됨.

 

사정이 달라져서 악명높은 시위대 감옥 안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그는 틈틈히 복음도 전하고 만날 사람도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완전히 자유가 봉쇄당하는 본격적인 감옥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감옥 안의 삶 - 비인간적인 대우, 매를 맞음.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모습.

- 그가 한 것은 주를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것. 그런데 결과는 감옥 속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의 모습.

 

무엇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도 바울의 마음에 기쁨을 주었는가?

1) 감옥 안에서 사도바울의 깨달음.- 내 삶의 기준이 무엇인가?

- 12절: 나의 당한 일- 감옥에 갇히게 된 일.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시위대 안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됨.

그가 시위대 안에 있음으로 해서 다른 방식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몇 명의 사람들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가이사의 집 식구 중에서도 몇 사람이 예수를 믿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 그의 기쁨의 기준 - 내 개인적인 사정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일에 예수에게 도움이 되는가, 주의 일에 도움이 되는가?
  • 우리의 기준: 항상 '나'에게 맞추어져 있다. 내가 잘되면 좋은 것이고 내가 고통스러우면 불행한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생각은 내가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도 영광이요, 내가 잘못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생각. 하나님의 영광이 나를 통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가?
  • 다른 믿음의 형제들 가운데 나타난 반응.

사도 바울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지속적으로 말씀으로 양육하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시위대 감옥에 들어가면서 걱정되었던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혹시 이들 중에서 너무 낙심한 나머지 신앙을 버리는 자들은 없을까 혹은 제대로 채움을 받지 못해서 거짓 교사를 따라가는 자들은 없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타난 결과는 그의 염려와는 정반대였습니다.

 

14절,“형제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분명히 그들 중에는 그의 문제로 신앙에 흔들리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를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바울의 매임을 보고 더 주님을 신뢰함으로 겁없이 하나님을 담대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3.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자들

  • 15-17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로마 안에는 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데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우리라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은 그 동안 우리를 힘들게 하던 자가 제거되었다 이때야 말로 우리들의 세력을 넓힐 때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마도 지금까지 바울은 전도하면서 자기 세력을 키우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특히 선교를 하면서도 다른 교회가 이미 들어 간 지역은 들어가지 않도록 함으로 교회가 서로 경쟁하지 않고 보다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믿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게 해서 스스로 자립하게 했지 자기 세력을 확보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는 어떤 복음 전하는 자와 분명히 불편한 관계에 있었고 이것이 바울을 굉장히 괴롭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17절에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 생각하여’라고 말한 것은 실제로 그들의 활동이 바울 자신의 사역을 무너뜨렸으며 그의 원칙을 깨트려서 상당히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까?

 

18절,“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례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겉치례로 하나 참으로 하나 (whether from false motives or true)- 거짓 동기로 하든지 혹은 참된 동기로 하든지

비록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다 옳지는 않고 또 어떤 부분은 사실 욕심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그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다면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 까지 붙들고 있던 자존심과 자기 생각을 벗어버렸을 때 그는 감옥 안에도 하나님의 찬란한 빛이 비취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변화입니다.

 

  • (빌 1: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내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일이...
  •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그가 신앙 안에서 이룬 결론. 성령께서 주신 생각...
  • 너희의 간구와: 사도바울의 외로움이 들리는가?

- 유대인중의 유대인으로서 가장 높은 학식과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학문과 가문이 뛰어난 자가 반역자라는 이름을 무릎쓰고 유대교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를 쫓음. Why? 예수를 만났으니까... 주님의 은혜로 강권적으로...

-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의심한다. 그는 죽일 때까지 그의 사도권, 그가 참 그리스도인임을 변호하며 다녔어야 했다. 그 자신도 과거의 일 때문에 괴로워했다. 안식처가 없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나 그의 불행을 기뻐한다.

- 다른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상처받은 이야기, 배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오직 가룟 유다 이외에는...왜? 그들도 떳떳치 못하니까... 그들 자신도 다 배신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바울은 누구는 세상을 사랑해서 떠나갔으며... 그리스도를 떠났으며..그런 구절이 많다. 서운함도 느낀다. 어디 하나 의지할 때가 없다. 결혼을 안 했으므로 가족도 없다. 그래서 서운함도 느낀다. 외롭다. 성도들의 기도는 그가 세상에서 위안을 받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랑과 능력이 있음을 안다.

-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믿음이 좋으니까 사람들의 반응이나 행동에 상처를 안 입었을까? 아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순간 그는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자기의 것을 다 내려놓았다. 배설물로 여겼다. 자기 자신 안에 기댈 수 있는 것들을 버렸다. 그래서 그에겐 성도가, 믿음의 동료가 귀했다. 때로 의지했다. 그들의 헌금에도 의지하고 그들의 기도에 의지했다.

 

  •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내가 풀려나게 될 줄을 내가 안다.

- 로마의 감옥에서 잠시 풀려 났다가 다시 감금되고 지하 감옥에서 사형당함.

- 곧 풀려 나지만 또다시 감금...

- 그러나 영원한 구원에 확신을 가짐.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 그의 인생의 기준점, 목적: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되려 함. 그것이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 이 말씀을 보는데 너무 부끄럽다. 내 소망과 기대... 말로는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인데...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가 잘 되고 싶어하는 생각... 내가 성공하고 싶어하는 생각... 사도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않게 살고자 했는데...난, 나 자신을 살펴보면 너무 부끄러운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니라 아직도 내어 드리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다. 내가 서고자 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살고자 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나 스스로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치 않으려 하다 보니까... 주님 앞에 설 때엔 언제나 부끄럽다.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내게는 유익합니다”라고 했습니다. NKJV에 이 말씀이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죽는 것은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Good News Translation에는 “For what is life? To me, it is Christ. Death, then, will bring more (삶이란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더 많은 것을 가져 올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 난 내 인생에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 예수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들이 여전히 있다. 일부분만 헌신하고 나머지는 아무런 간섭받지 않고 쉬고 싶고 즐기고 싶고 때론 망가지고 싶다. 그런데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것은 일부분만 헌신하고 나머지를 뜻대로 쓰다보면 결국은 그 시간이 일부분의 헌신 마저 집어 삼킨 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 하신 이유는 그 분이 욕심장이라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조금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군열, 구멍에서부터 큰 댐이 무너지듯이 우리 마음은 조그마한 틈에서부터 무너진다.

사도바울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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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7.10 03:24

    부끄럽습니다.
    은혜많이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