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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의 성탄 (마태복음 2:1-12절) 


  •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은사님 중에 홍성철 교수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책 중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란 제목이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를 다루면서 그 분이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1년동안 설교한 내용을 정리한 글인데 제가 놀란 것은 그분이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 그것도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예수님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족보를 자그만치 1년 동안 설교를 해오시면서 쓴 내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 성경 1장을 가지고도 1년 동안 설교를 할 수 있구나... 

한 장을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며 설교하는 모습도 존경스럽지만 그것을 불평없이 1년 동안 참고 들으며 은혜를 나눈 성도님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마태복음을 전공하신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마태복음을 통해서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시각으로 접근 할 것인가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본 것 같습니다. 


  • 지난 시간 저는 누가복음의 마리아에 나타난 수내고지 사건을 다루면서 공관 복음이라는 것은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증언이기에 <공관복음>이라 말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은 마태라는 한 사람, 혹은 그가 중심이 되었던 한 교회 공동체의 시각으로 바라본 예수를 다룬 글입니다. 

구약도 마찬가지지만 성경을 정경으로 만들었을 때에 성경의 배열, 순서를 정하는 데에도 치밀하고 활발한 연구와 논쟁을 걸쳐서 경정이 됩니다. 정경에 속한 것을 정하는 것도 치열한 논쟁이었지만 정경으로 뽑혀진 성경의 순서를 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약성경의 첫권, 예수님의 복음의 시작이 되고 서론이 되는 책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매태복음이 신약성경의 첫 권으로 선택된 것은 정말 의외의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씌여진 순서를 보면 바울 서신이 먼저 씌여졌을 것이고, 복음서만 하더라도 마가복음이 씌여진 것이 마태복음보다 훨씬 전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생생히 증언함에 있어서는 차라리 사실을 중시했던 누가복음이 더 나았을 것이요

예수님과 가까운 관계를 권위로 내세웠을 것이라면 베드로의 성경이나 요한의 성경이 더 권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신학적 깊이나 성경의 전체 배열을 보더라도 성경의 끝이 요한 계시록 이니까 차라리 요한복음을 성경의 첫 권으로 놓아도 사람들이 이견을 제시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요한복음의 시작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해서 종말의 계시록으로 마친다면 문학적 구성도 훨씬 돋보였을 것입니다. 


  • 왜 마태복음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느냐? 바로 마태라는 개인적인 사람의 배경 때문입니다. 

마태의 직업이 무엇이었나요? 네 그는 세리였습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를 위해 고용된 세금 징수원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자기 민족도 배반하고 어떤 욕도 먹기를 작정한 돈에 환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리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탈무드에 보년 당시의 랍비에게 한 사람이 질문했습니다. "동물들 중에 가장 잔인한 동물이 무엇입니까?" 

"사막의 짐승들,  곰, 사자와 더불어서 도시의 흉악한 짐승들, 그리고 바로 동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과 같은 인생들, 그 중에서도 세리들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짐승이다." 

그래서 새리는 유대인들로부터 로마의 관리나 군인들 보다 더 나쁜 민족 반역자로 증오와 멸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자에게는 뇌물을 받고 세금을 감해 주었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추가해서 세금을 뜯어냄으로 더욱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세리는 회당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 당했고 법정의 증인이 될 자격도 상실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세리는 기생, 이방인, 죄수들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 속에서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을 당했고 늘 외면당했습니다. 


중요한 대목은 그들은 증인의 자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증언하는 것은 법정에서 그 어떤 것도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증언 자체가 거부되었습니다. 

그러데 가장 중요한 신약성경의 서문일 할 수 있는 그 첫 군을 새리였던 마태의 복음서로 정해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은 누구였지요? 막달라 마리아... 당시 여자들 역시 법정의 증인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부활하신 첫 모습을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그녀를 통해 부활의 소식을 알리도록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성한 사실을 증언하게 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태는 열두제자 들 중에서 별 두드러지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라고는 그를 부르시는 장면이 마태복음 중간에 살짝 등장하는 정도입니다. 


[마 9:9-마 9:13]

(마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와 함께 밥먹는 것 조차도 사람들의 큰 공격의 대상이었을 정도였던 새리 마태를 예수님은 제자로 삼으시고 함께 그 집에 유하면서 밥을 잡수시고 또한 그에게 신약성경의 서언을 맡긴 것입니다. 


  • 마태의 또 다른 이름 - 레위 

본문은 막2장, 눅5장에서도 똑같이 다루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마태라는 이름 대신에 레위라고 명명합니다. 그러니까 시몬을 베드로라고 개명해 주신 것처럼 레위에게 마태라는 이름을 주면서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삼은 것입니다.

레위는 제사장 지파 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는 그가 지금은 로마 식민지라는 상황 안에서 레위인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돈에 자기의 사명과 정체성을 다 내어놓은 새리가 된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의 마음 한 편에는 늘 자기 인생에 대한 죄의식과 갈등이 다른 새리들 보다도 더 심하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날 그렇게 살아가면 마태의 직장까지 찾아가 나를 따라 오라 하시면서 마태라는 이름으로 그의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정말로 마태의 인생에 예수님이 산타처럼 나타나 그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  열두 제자들과 마태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그것도 사도라 부르는 12제자의 무리에 속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무리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또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제외한 열 한 명의 제자 대부분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냐면 민족주의자, 열심당원의 정치적 색체를 띄고 있습니다. 

그 중 가나나인 시몬은 열성당원 중에서도 으뜸인 자였습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가나나인 시몬이라고 하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셀롯인 시몬이라고 기록 

가나나인이라는 것은 가나안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열광적”을 의미하는 카나나이오스(Kananaios)에서 나온 정치적인 명칭입니다. 셀롯이라는 말도 개역성경 각주를 보면 "열심당원"이라는 주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나나인이라는 말도, 셀롯이라는 말도 결국 시몬이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열심당이라는 그룹에 속해 있는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극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로마에 대해서 친근한 경향을 보이는 유대인들이 눈에 띠면 자기 민족임에도 과감하게 죽여 버리는 잔인성도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극렬 민족주의 집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사카'라고 부르는 단도를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이러한 로마의 앞잡이를 죽이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표적으로 가나나인 시몬 뿐만 아니라 예수니믈 잡으로 왔던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던 베드로도, 그의 형제 안드레, 가룟 듀다등도 모둔 열심당원이거나 같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까 예수의 제자가 되어서 그 공동체에 들어왔는데 그곳에 와보니 자기와 같은 새리들과 로마의 협력하는 자들을 죽일 칼들을 늘 가지고 다녔던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공동체 생활을 했던 마태의 삶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12제자 무리 중의 가룟 유다가 홀로 유다 출신으로 지리적 이유로의 왕따였다면 어찌 보변 마태는 정치적인 이유로의 제자들 사이에서의 왕따었을 것입니다. 


열심당원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입니다. 민족을 위해, 동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자들이지요. 이들에게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무기는 곧 힘입니다. 칼로서, 힘으로써, 무력으로서 자유를 쟁취하고자 합니다. 

이와 반대로 세리는 자기를 위해서라면 민족마저도 배반할 수 있는 자입니다. 남이 아무리 욕을 하건 말건, 침을 뱉던 말던, 자기를 위해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라면 세상에서 아무리 욕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서슴치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무기는 곧 돈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둘을 함께 제자로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데리고 세리의 집으로 가십니다. 세리였던 삭개오를 불러 내려오라 하시고, 그의 집에 머물겠다 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 조차 저가 어찌 세리의 집에 유하느냐하며 비아냥 거립니다. 그런데....제자들은 모두, 열심당원 시몬을 비롯하여 그러한 성향을 띤 유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모우 함께 그 세리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을 쓰려던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반드시 칼로 망할 것이다라고 경계하십니다. 


  •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 NO!,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한다. 

흔히들 하면 마태복음을 마태가 레위인임을 중시하여 유다인의 복음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족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족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1:1-마 1:6]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마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마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마 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유대인들은 왕의 족보를 이런 식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족보에 흠이 있어도 흠될 것은 가리고 성스럽고 거룩하게 포장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는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의 면면이 생생하게 증언되고 있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며느리- 근친상간 

살몬은 라합에게서: 이방여인 (여리고성) 

보아스는 룻에게서 : 모압여인 (모압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그냥 밧세바라고 하면 되는데 밧세바라는 이름 대신에 우리아의 아내라고 표현) - 다윗의 죄 

-> 죄인, 여인, 연약한 자...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 


창세기의 족보와 비교해서 또 두드러진 특징은 구약의 족보는 누가 누구를 낳고 몇세에 죽었더라로 표현되지만 마태복음의 족보는 낳았다는 표현만 있지 죽었다는 표현이 없다. 왜? 그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에...산 자들이기 때문에... 


  • 마태의 성탄 

마태가 경험한 예수의 나심..마태에게 예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 

하나님 나라와 비교되는 나라-> 헤롯의 나라 

헤롯은 한 명이 아니라 예수의 탄생 때부터, 예수의 죽음때까지 3-4대까지 이어지는 한 가문의 왕조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헤롯은 그 헤롯 왕조의 시조인 헤롯 1세로 그는 에서의 후예인 에돔 족속이면서 유다의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로마의 치하에서라도 유다 족속이 아닌 에돔 족속이 왕이 된 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자기의 왕권을 강화하고 유댜인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했던 두가지 정책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 스룹바벨 성전 -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이 세웠던 성전- 학개서 2장에도 나오지만 이 성전에 대한 열등감 - 솔로롬 성전보다 못하다. 초라하다. 

헤롯은 로마의 지원을 받아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재건하며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 동시에 종교 제사장과 서기관들,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 정통 유다 계열의 후손- 다윗의 후손에 대한 경계 - 유아학살로 이어집니다. 

왜>? 자기 출신의 대한 열등의식이 결국 유아 살해라는 잔학한 일로 이어지지요. 


  • 그는 이런 정치적 극한 혼란기에 유다인 아닌 동방박사들에 의해 증거되고 경배되고 찬양되는 예수님의 탄생을 증거합니다. 이스라엘도 아닌, 로마도 아닌 애굽도 아닌, 하나님 나라의 탄생을 알립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칼, 세상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돈, 자기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명도 잃어버리고 돈 앞에 자존심도, 정체성도 팔아 넘겼던 새리머져 맞아 주시고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처럼 오는 나라. 

마태복음 5장에 가서 산상 수훈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새로운 계명들을 알려 주시고 결국 원수도 사랑하며 새리와 열심당원이 하나로 살아 갈 수 있는

모든 갈등과 분열이 예수의 사랑 앞에 녹아지는...

나는 섬기러 왔다.하면 우리의 발을 씻기면서 내가 하늘과 권세를 네게 주었으니 가서 이 나라를 선포하라. 

화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광야에서 울려퍼지는 그 나라

그것이 마태가 보았던 성탄이고 예수님의 성육신이고 우리가 가야할, 우리가 증거해야할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몇 주 전 느혜미야 말씀을 증거하며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하며 범했던 두 가지 실패 

- 사마리아인들은 피가 더러운 민족이므로 성전에 끼이지 못하게 하자. 

-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힘없고 무력한 사람이므로 상종하지 말자 하면서 성전은 건축했어도 여전히 그 도시와 성벽은 폐허로 남겨두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으로 성전을 재건하는가? 오직 고레스를 통해 주신 것으로, 은혜로, 값없이,. 

그런데도 자기들의 기득권을 앞세워 사마리아를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 밖에 살면서... 갈등과 분열을 일삼는 그들에게 

마태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예수의 새 복음 "서로 사랑하라. 이것을 통하여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일라리:는 요한의 메시지와 더불어 교회의 참된 모습,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주의 사랑 앞에 하나로 품어지는 성탄의 평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