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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예배 (욥 23:10) 

 

(욥 23:10)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동안 설교 해 놓았던 원고들을 보니... 욥기에 대해 설교한 것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엔 피부병으로 한 참 고생을 해서 주위에서 욥과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왔던 욥이라는 인물이 어느덧 고난의 대명사로 피하고 싶은, 외면하고 싶은 성경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날마다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읽어왔기 때문에 웬지 욥기를 읽으면 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 같은...그래서 욥기를 피해왔습니다 . 


지난 주 월요일 교회에서 지방회목사님들이 모여서 성경이나 신앙에 관련된 세미나로 매주 모이는데, 구약을 전공한 학자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목회하시는 조은석 목사님이란 분이 장로교 분인데도 불구하고 세미나를 인도했다. 그러면서 욥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의 욥기에 대한 관심은 천천히 원어로 성경을 읽다가 부딪친 해석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욥기 23:10절의 말씀은 욥기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이고 욥기의 주제를 잘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많은 설교나 찬양의 가사도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욥이 여러 고난 가운데 연단을 받아서 정금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리라는 미래의 소망, 현재의 고난을 이김으로 미래의 희망을 고백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련"이라는 단어는 훈련이나 연단의 의미가 아닙니다. 시험, 확인, 영어로는 test 혹은 examine의 의미입니다.  훈련이나 연단은 미래를 기약하며 현재를 힘들게 하는 것이지만 test나 examine은 현재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이 구절은 

"내가 걸어온 길을 그가 아십니다. 그가 나를 시험해 보신다면, 혹은 주목하여 세심히 보신다면 내가 순금이라는 것을 아실것 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즉, 주님이 날 보신다면 내가 순금이라는 것을 잘 아실것이다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욥의 친구였던 엘리바스가 욥에 대해서 정죄하고 공격할 때에 욥의 대답으로 나온 말입니다. 

엘리바스는 무엇이라 욥에게 말합니까?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까닭없이 너를 치시겠느냐?
네가 말로는 의롭다고 하나 실상은 네가 악인의 길을 가고있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거야!
그 길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키시고 너를 환란에서 건지실거야!"


즉, 너의 죄를 이실직고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욥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뵈옵고 따져보면 
내가 얼마나 의인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텐데,
전후좌우에도 아니계시니 답답하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내 길이 주의 길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는데,
언약을 변개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왜 나를 낙심케 하시는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자기의 의를 내세울 수 있을까? 

그것도 축복받고 아무 걱정이 없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교만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생의 가장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의로움을 말하고 있다면 아마도 충격에 정신이 나갔거나 하나님께 대드는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 처럼 말입니다. 


욥의 이 탄식, 하나님이 나를 바라 보신다면 내가 정금이라는 것을 아실텐데...라는 이 구절의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해 봅시다. 


욥기 1장에 보면 욥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가 나옵니다. 

1절에 보면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합니다. 

5절에 보면 그는 자녀들이 잔치를 하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며 명수대로 번제를 드리면서 혹시라도 그들이 범죄할까 하나님께 항상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이 때 사탄이 욥을 침소합니다. 

9절에 보니까 "욥이 어찌 까닭없이 주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사탄은 욥의 예배는 다 까닭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가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을 좋아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 자녀, 축복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배하는 것이지 하나님 당신 자체를 좋아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이 주어집니다. 

난 어떤 이유로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예배하는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 받아온 축복을 지키기 위해서, 다가올 환난을 피하기 위해서 예배하는가? 아니면 정말로 하나님과 동행 자체가 행복이고 예배 자체가 행복인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이 지닌 복이 다 사라졌습니다. 하루 아침에 자녀들이 죽고 재산은 불타고 종들은 피를 흘립니다. 

그러나 욥은 그러한 고난 가운데 고백합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 

모든 축복이 거두어지고 난 후 욥은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욥의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온 몸을 긁게 되자 아내가 무엇이라 말하고 떠나가냐면

"당신이 그래도 자가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 말은 무엇입니까? 

이지경인데도 여전히 하나님께 예배하겠느냐? 하나님을 찬송하겠느냐? 차라리 욕하고 죽어라하는 것입니다. 

달리말하면 그 와중에도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욥때문에 욥의 아내는 질려서 떠나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욥이 예배 안드리고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했더라면 욥과 같이 머물렀을 수도 있겠지요. 

욥의 예배에 기가 질린 것입니다. 


이제 욥의 친구들이 멀리서부터 욥을 위로하러 옵니다.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도 처음에는 같이 재를 무릎쓰고 7일동안 욥에게 한 마디 말도 못하고 같이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욥에게 말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 너에게 잘못이 있으니 하나님이 벌하신 것이다. 너의 죄를 고백하면 지금의 고난은 물러가고 앞으로는 창대해 질 것이다. 


그들이 욥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빨리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라. 지난 예배나 너의 삶의 잘못된 부분을 생각하고 고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질문을 다 뒤로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내 예배를 다 열납하신 후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자기 예배가 의로왔다고 하니까 친구들은 말하지요. 네가 의롭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결국 친구들은 무엇 때문에 욥을 정죄합니까? 

극심한 고난 중에도 욥이 여전히 의로운 예배를 드리니까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런 고난이라면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데, 자기가 늘 해오던 대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욥을 보고 화가 난 것이지요. 


어떻게 욥은 그러한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자신을 의롭다고 여길 수 있을까? 친구들이 화날 만도 하지요?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의롭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의인을 없나니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예배하는 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간 자들은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비밀이지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26장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test me, try me, examine me..) 

-> 다윗의 시

어찌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완전하게 행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온전히 예배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예배하는 자들은 내가 의롭기 때문에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깨끗이 하시고 온전케 하심을 믿기에 온전하다고 인정함을 얻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끊임없이 욥의 상황을 살피면서 욥의 회개를 원했지만 한 번도 예배의 처소를 떠난 적이 없는 욥은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불의를 용서하시고 의롭다하심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서도 자신이 믿음을 정금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난 재산 때문에, 자녀들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하나님 만을 위하여 예배한 것입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온전함을 입는 것입니다. 

예배하기 전과 예배 드린 이후의 우리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어야 합니다. 

예배 드리러 올 때는 상한 심령으로, 죄를 짊어지고, 연약함 가운데 올지라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나갈 때에는 용서함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고, 이제는 죄와 상관없이, 순전한 정금이 되어서 세상의 등불이 되어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와 세상 앞에서 의롭게 해 줍니다. 

예배는 단지 위로가 아닙니다. 

예배는 단지 격려가 아닙니다. 

예배는 단지 봉사가 아닙니다. 

예배는 죄인인 우리가 의인이 되고, 불완전한 우리가 온전케 되고, 불구자 였던 우리가 정상인이 되는 하나님의 수술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 예배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앞에 우리의 모든 불의와 죄를 씻고 다시는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전의 옛사람은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 자는 온전한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예배자 욥은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으로 하나님 앞에 대면합니다. 

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예배 드렸는데 내 예배를 받으신 여호와께서 왜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그러니까 38장부터 41장까지 하나님이 욥의 질문대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할 때에 넌 어디 있었는가?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룬 경륜을 넌 다 이해하는가? 

이 모든 것을 넌 다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던지시는 질문에 욥은 자신의 질문을 포기해 버립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은 그 질문에 대답해 주실 때도 있지만 욥의 경우처럼 그 질문에는 대답치 않으시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지실 때가 있습니다. 

"너의 질문을 버리고 나의 질문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왔다고 내 질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질문이 하나님 앞에서 소용없음을, 무의미함을 알았기에 내 질문을 버리고 하나님의 질문을 품는 것입니다. 


(욥 42:2)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 42:3)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 42:4)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6)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예배는 바로 내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질문을 가지고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질문에 여전히 묶여 있으면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단지 자기를 위한 해결자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해결자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분은 주권자이고 전능자 입니다. 그분의 질문 앞에 우리가 설 때에 우리가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벗어나 그 분의 권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가 됩시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됩시다. 

예배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과의 동행을 이루시는 로고스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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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죄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1.06 19:35

    감사합니다.
    욥기에 대해 많이 깨닫고 갑니다.
    나를 위해서 예배하지 말고 영과 진리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2.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1.07 01:16 신고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누군가가 이 곳에 와서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비한 일인줄 모릅니다.
    부디 하나님 앞에 날마다 의롭게 거듭니는 예배 드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