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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주 안에서 발견한 나 (창 1:26-28, 엡 1:13절)

by 소리벼리 2022. 9. 25.

주 안에서 발견한 나 (창 1:26-28, 엡 1:13절) 

 

지난 시간부터 우리 신앙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 관계 

관계의 제 1 법칙 - 황금률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우선해야 될 것 : 남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자 하는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 나는 하나님께 어떤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가? 

(어미 품의 아기, 사랑받는 자녀, 사랑받는 아내,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종, 제자. 고아, 이방인, 병자..) 

 

타인과의 관계에서 - 인정받고 싶은가? 이해받고 싶은가? 사랑받고 싶은가? 그럼 그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대접해 주어라. 

 

나는 나를 어떻게 대접하는가? 나를 진정사랑하는가? 나를 대접하는가? 막굴리는가> 혹사하는가? 스스로 무시하지는 않는가?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 스스로 바라보는 나의 가치 - 자아상 

왜? 나 자신과의 관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열쇠이다. 

 

황금률 -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 이 말을 역으로 해석하면 내가 나 자신을 함부로 대접하면 그 모습으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 - 생각에 영향을 끼치고, 언어에 영향을 끼치고,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 결국 모든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잘못된 자아상 -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나, 경쟁과 비교 (세상의 기준)에 의해서 왜곡된 나 

"위로는 권위에 도전하고 아래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학대하고, 조정하고, 군림하는 자세, 위로는 하나님께 도전하고, 탓하고, 원망하는 모습)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것 만큼 이웃을 사랑하고 내 자녀 사랑하는 것만큼 타인의 자녀를 사랑하고....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요 15장 11-13, 17절) 

 

자기를 위하는 사랑을 넘어 친구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그 사랑하는 목숨을 내어 줄수 있는 것 - 가장 큰 사랑

 

자기 교만함이나 자아 도취가 아닌 나 자신을 성경적으로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나 

 

창 1: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  하나님의 형상대로 

2) 생육하고 번성하라 - 더 자랄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번성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존재 

3) 땅에 충만하라 - 온 땅에 충만하게 퍼져 나가라. <-> 공허하고 허전하다 

4)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 목적이 있다. 사명이 있다. 노예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라. 

 

죄로 말미암은 결과 

1) 버림받고 추방- 단절과 소외 

2) 종신토록 수고하여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 

3) 환경의 노예, 

4) 경쟁하고 시기-> 비교의식과 열등의식 (가인과 아벨), 탓하는 존재 (아담과 하와) 

 

2. 부정적인 자아상/ 깨어진 자아상의 예 

1) 모세 (물에서 건짐을 받은 자 - 구원받는 자 -어디서부터? 깨어진 인간의 모습으로부터) 

출 3장 -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다. 

3:10-11)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4:1)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 타인을 빌어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나 

지팡이를 통해 - 내가 너의 능력이 될 것이다. 

4:10)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내가 너의 능력이 될 것이라 하는데 여전히 난 못합니다. 

 

11-12절) 누가 사람의 잊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꼐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절)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 더 이상 이유를 대지 않고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설득하고 그를 가다듬어 가십니다. 그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시키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출 7:1)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열등의식 - 유대인을 위한 그의 선의가 40년간의 도망자가 되어 버린 실패로 말미암은 깊은 열등감, 자존감 

->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12명의 정탐꾼 - 메뚜기 자아상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민 13:33) 

 

-> 자기 자신을 그렇게 보니 하나님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도 자기들을 삼키는 땅이라 악평 - 부정적인 자아상이 부정적인 언어를 낳고 그 언어의 결과를 살아간다. 

 

여호수아와 갈렙 -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꼐 하신다면...믿음의 언어, 동행의식, 사명의식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꼐 하시느니라 " (민 14:9) 

 

똑같은 땅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그들의 언어 - 자아상의 치이, 메뚜기 자아상과 용사의 믿음의 자아상 

 

3. 성경적 자아상 

1) 소속감 

- 죄인의 자아상 - 소외감과 거절감 

- 믿음의 자아상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 가족이다. 일치감, 안정감, 소속감 - 천국의 시만권자 

 

2) 자부심 

세상 사람들의 자부심 

- 소유, 성취한 일들, 직책, 외모(건강), 인맥 - 세상적 자부심의 원천 

-> 언제나 변한다. 영원하지 않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 - 위험하다. 

 

변하지 않는 자부심 -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나의 존재를 깨닫는 것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가치는 소유, 성취, 직책, 외모, 인맥 등에서 결정 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상에서 결정된 것이다. 

 

그의 자녀이기에 우리의 가치가 결정된 것이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다. 상품 - 비교대상, 신제품이 나오면 쓸모없어진다. 세상은 인간을 상품화시킨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모품이나 상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만드셨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작품에는 만든이의 영혼이 스며있는 것이다. 모나리자라는 작품이 위대한 작품인 것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제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빈치가 만든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3) 자신감 

우리의 자신감은 내 능력에 있지 않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성령의 능력에서 나온다. 

우리 안에 성령이 함꼐 하시고 그 분이 나를 보호하시고, 가르치시고, 세워주신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 4:13) 

 

주 안에 있을 떄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다. 하나님의 지경을 산다. 

 

4) 확고함, 영원함 

  • 에베소서 1장 13절을 보면 

(엡 1: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인치심, 바로 하나님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이 서명이 새겨져 있습니까? 바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는 자'는 성령의 인치심, 하나님이 서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8:9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14장에 보면 짐승의 이름표와 하나님이 이름표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짐승의 이름표라는 말은 잘 아는데 하나님이 이름표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계 14:1)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계 14:11)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또한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3)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계 9:4)"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기다리시고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과 같은 만물을 보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치신 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요, 택한 자들이 다 인치심을 받기 까지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윤리적으로 완벽하게 살고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변경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도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파수꾼이 굳게 지키고 인을 처서 봉했습니다(마27:66).

‘인’은 내용을 안전하게 보장하는 것입니다. 

 

4. 적용 

나 자신이 무력하거나 무가치한 느낌이 들 때....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평가하면 한 없이 낮아지는 자존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후회하진 않으신가요? 다른 사람이라면 더 잘했을텐데...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 

 

자신에게 진실하다 ->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알고, 동시에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을 아는 것 -> 계속 온전함을 향하여 세워져 가는 것, 포기하지 않고, 더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 

미완성 교향곡이 아니라 완성형 교향곡이 되어 가는 것 - 그가 영원하시기에

 

나의 가치는 주 안에서 발견한 사람은 타인의 가치역시 주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한 사람, 한 영혼의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에 나를 위해 죽었던 예수의 모습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성경적인 자아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삶의 목표가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모든 성도의 공통된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 있다. 

긍정적 자아관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 이론들-> 떄로 절못된 자부심, 영적 교만함, 경쟁의식과 우월의식

 

그리스도를 닮고 따라가고자 할 때 - 세상이 알지 못하는 내 존재의 비밀, 그 영원한 가치,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철학의 끝 - 결국 허무주의

정치/이념 - 공산주의는 결국 독재로

                  민주주의 - 복지사회 (요람에서 무덤까지...) - 불가능-> 결국 이기주의로, 자국 우선주의, 나부터 살자 

과학의 끝 - 결국 파멸의 공포

신앙의 끝 - 영생이다. 영원한 생명, 그 충만함, 끝없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나님이 사랑하신 한 존재 - 나의 귀함, 내 가치의 귀함,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 그것을 통해 작지만 그 분의 꿈을 이루어 가는 우리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