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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깎인 용사 (사사기 16장 22-31절) 


사사기 - 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실패했는가? 

왜 은혜의 땅에서 은혜롭게 살지 못하는가? 


지난 주 - 기드온: 소심하고 연약한 자를 큰 용사로 부르시는 하나님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숫자를 철저히 줄이고 빈항아리와 횃불 (자기 뜻, 자기 의를 버리고 오직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신) 을 가지고 미디안을 대적하게 함. 

큰 용사는 무엇인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를 수 있었던 이유- 골리앗이라는 외형을 보았더면 대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오직 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능멸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나서게 된다. 무모한 용기가 아니다.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사울이 그에게 사울의 검과 갑옷을 주었을 때에 "익숙하지 않은 고로..." 그는 자신의 삶에서 익숙한 방법을 가지고 나왔다. 양들을 돌볼때 그들을 지키는 수단이었던 돌팔매의 명수 

   그것을 통해 담력을 키웠다. 사자도 곰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적인 믿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적용되고 훈련된 믿음이 있엇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임상 경험이 있었다. 

                                                         

 기드온과 다윗과 정 반대의 편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용사 - 삼손 

 오히려 교회 바깥에서 많이 회자 되는 인물 - 

 머리 기른 남자를 보면 삼손...영화와 연극, 회화나 조각의 주요 주제.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사사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예하여 다룬다. (13장- 16장) 

  

 그의 출생- 영웅의 서사 

천사가 그의 출생을 알림 - 셰레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경에 나와 있는 가장 큰 능력을 부여 받은 인물 - 솔로몬 (지혜), 삼손 (힘)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사건으로 유명 

삼손은 혼자서 블레셋을 상대 - 나귀으 턱뼈를 가지고 천명의 블레셋 군사를 죽임. 

삼국지의 조자룡, 관우보다 더한 역사상 유래없는 용사. 


그러나 그의 끝은 시작처럼 훌륭하지 않다. 

비참하고 비장하고 초라하다. 

이스라엘을 20년간 이끌었던 그의 죽음 앞에 그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 

옹족인 유다인들에 의해서 블레셋에게 넘겨졌다. 


사사기의 전형이다.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행복하지 않고 은혜는 경험했는데 기쁨이 사라졌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가 아니라 시작은 좋았는데 끝은 비참하다. 

왜 그랬을까? 


13장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 또 짓는 죄, 다시 짓는 죄.... 회개 후에 또, 토한 것을 먹음...

왜? 자존감이 무너지고, 정체성이 사라지고 사탄의 참소의 빌미를 제공.. 한 번 습관들이면 벗어나기 힘들다. 


그 결과 -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다. (2절) -> 일을 해도 열매가 없다. 결과가 없다. 이것이 죄의 결과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을 이야기한다. 

12절) 마노아가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14절)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마노나- 나로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15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지 못함이니라 

-> 그럼 15절은 무엇을 위해 준비한 것인가?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그냥 자식 준다니까 신에게 바치는 우상제물...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17절) 

달리 말하면 그 말이 안 이루어지면 하찮게 여긴다는 소리? 그들의 복을 기원하는 우상에게 하는 소리 

이름을 왜 묻는가? 넌 어떤 존재이구나. 그 정체와 한계를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이름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 내 본질,

그리고 피조물에게 지어주라 하시는 것 - 이름을 통해서 지배하고 주인이 되는 것이다.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 기묘자 (Beyond Understanding)-> 네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이름, 

모세가 하나님께 백성이 물으면 누가 보냈다 하리이까? 

스스로 있는 자가 보냈다 하라. 

아니 내 이름을 알려고 하지 마라. 난 나다. 난 이름으로 제어받지 않는다. 


그래서 삼손이 태어난다. 삼손은 작은 태양이라는 의미 


그런데 삼손이 커서 제일 먼저 한 일 - 블레셋의 여인을 보고 결혼시켜 달라. 

삼손 - 여인들 이야기 

세명의 여인 - 첫 번째 아내, 블레셋 인

들릴라 

그리고 들릴라 만나기 전에 갸사의 기생(16절) . 

 

딤나 -  에돔의 후손이며 아멜렉의 본거지가 딤나이고 야곱의 아들 유다가 창녀로 둔갑한 다말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은 곳. 여러가지 죄악의 본산지가 이 곳 딤나인데 하필이면 삼손은 그곳으로 내려가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

딤나에서 한 일 - 젊은 사자를 찢어 죽인 일 - 8절_) 그 사자의 주검을 본 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끌이 있는지라. 

9절)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않았다. 

-> 사자의 주검에서 나온 꿀- 부정한 것. 죽은 것은 부정한 것 그런데 그것을 먹고 부모에게도.... 


자, 삼손은 그 출중한 능력에도 실패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자신의 삶을 허비했고, 방탕하여 스스로 온갖 고난을 자처했습니다. 우리는 삼손이 저지른 실수를 통해 우리 신앙인이 저지르기 쉬운 전형적인 방식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신앙적인 실패들을 진단할 수 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된 신앙습관으로 인해 다가올 문제들도 피할 수 있습니다. 

 

1.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아니라 감정의 사람.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고 빈번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는 복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를 꾀어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푼 블레셋 사람 30여명을 불같이 화를 내며 죽여 그들의 옷을 취하기도 했고 그렇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들판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15장 7절을 보면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11절에 보면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그러면서 또 다시 1000명을 죽여 버립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나 명령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감정대로 움직였고, 자기 맘에 안들면 다 쓸어버리는 자였습니다. 


2. 다른 그의 약점은 그는 정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강한 자였지만 도덕적으로는 자기를 통제할 수 없는, 아니 주위의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는 육체의 정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인 통찰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이면서도 늘 여인들과의 추문이 뒤따르는 자. 여자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세상적인 욕망을 쫓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은 눈이 빠져서 맷돌이나 돌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을 끊질기게 묻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 지혜, 능력, 사랑을 끊질기게 물어 못쓰게 해버리지요. 

어느 누구도 실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의 삶의 습관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실수를 통해 회개하지 않고 고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을 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점 죄에 무딘 자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가 신앙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완전히 소진시키고서야 비로서 자신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해구나 후회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는 “이건 내 삶 속에서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야. 난 그 부분엔 항상 넘어질 수 밖에 없어. 이건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부분이야. 이게 바로 내 모습이야”하고 포기하거나 합리화시킬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두운 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내어놓기를 바라십니다. 삼손이 잘못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지도 않고 단지 습관적으로 죄를 반복했던 그의 무감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의 악순환을 끊을 능력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솔직하게 그 분에게 내어 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실수, 허물을 내어놓고 정면으로 부딪치고자 할 때에 우리에게 그것을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3. 세 번째 그의 실수는 그가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두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특별한 임무를 위해 그를 선택하셨지만 그는 건전하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잘못된 길로만 인도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누구와 어울리는가? 그것은 우리의 전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에 방해가 되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를 살펴보아 신앙에 유익이 되는 사람을 즐겨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인간관계의 중심, 내가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고, 만족을 얻으며, 즐거음과 행복을 느끼는가? 그 사람들이 내 신앙의 유익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 신앙을 소진시키는 사람인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교제는 우리의 사고를 방해하고 삶을 망가뜨립니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삼손의 실수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영적인 일에 진지하고 하나님을 진지하게, 성실하게 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이면서도 항상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기 일에 매달렸습니다. 자기 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은 욕망에 이끌리며 행동했습니다. “해서 기분 좋으면 했고, 기분 나쁘면 죽이거나 불을 지르는 것”이 삼손의 행동양식이었습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삼손은 늘 하나님의 계획엔 무관심했고, 자기 육신의 욕구대로만 살았으며 그 결과 그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무가치한 사람으로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20년 동안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지 못하다가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것은 단 두 번 나오는데 한 번 죽기 전 자신이 묶여있던 집을 무너뜨릴 때를 제외하면 그가 목이 말라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육신적인 목마름이라 할지라도 그가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물을 내리셨고 그래서 그는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이름붙이기도 했지요. 인생의 대부분을 그는 충동적으로 성급하게 자기 능력대로 행동했지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 분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도움을 주십니다. 삼손은 자신이 목마를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목마름이 지나자 또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신앙이라는 것, 하나님을 진지하게 예배한다는 것은 날마다, 매 순간 마다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분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삼손의 생이 마감했으면 그는 정말 비참한 삶으로 끝을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였지만 그는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렇게 마음먹자 하나님은 잃어버린 그의 힘을 회복케 하셨고 그가 영웅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수많은 적들이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세운 다곤 신전에서 삼손은 가운데의두 기둥 사이에서 그 기둥을 밀어내어 모든 이방신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 3000명을 죽게 합니다. 애초에 삼손을 보내신 목적을 완성하고 죽게 합니다. 

대개의 경우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파했던 다른 일반적인 사사와는 달리 삼손은 영웅으로 태어납니다. 날 때부터 천사가 그의 탄생을 예비했고 그는 블레셋 사람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삼손과 같은 능력을 모두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세상에서 눈멀고 머리 잘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있음을 알고 교만하여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 합니다. 내 뜻, 내 정욕, 내 욕심, 내 성질대로만 살아가다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엉망이 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이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날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삼손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꿇고 부르짖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택하신 어떤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누구에게나 창조의 목적이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뜻의 중심을 발견할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고 발휘활 수 있습니다. 

큰 격려가 되는 부분은 실패의 연속을 살다 간 삼손이지만 하나님의 명예의 전당, 믿음의 선진들을 기록한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 해 줍니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들어 쓰시고 그를 사용하여 선하고 위대한 일, 그가 맡기신 사명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삼손과 같은 능력,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이상 허비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여생. 하나님께 진지하게 우리의 삶의 목적과 사명을 물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너를 넘어지게 하고, 네게 장애가 되며, 내가 네 삶 가운데 역사하게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을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잘못된 성질, 정욕대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주님을 찾을 때에 주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가치를 아시고 우리 안에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아십니다. 우리 혼자 사용하면 그것은 사라지고 결국 눈먼 삼손처럼 맷돌만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만이 그 분의 능력대로 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이상한 사사, 삼손 (본문: 사사기 16장 23-31절) 


삼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고 영화나 연극으로는 많이 소개되었지만 희한하게도 설교를 통해서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 사사입니다. 영웅이야기처럼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본받을 만한 것들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십년이나 다스린 사사였습니다. 그는 탄생 때부터 범상치 않게 태어났습니다. 사사기 13장에는 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블레셋의 통치를 받고 있을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지파 사람 마노아에게 직접 나타나 ‘네가 아이를 가질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터이니 너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처럼 나기 전부터 구별된 자였습니다. 태어나서도 삼손은 이스라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자연적인 힘, 훌륭한 외모 등 여러가지 장점을 지닌 유력한 사사였습니다. 그의 활동 기간 중 감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침범치 못할 정도로 그는 능력이 뛰어난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장점들 중에서도 그의 가장 흉악한 대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허비했고, 방탕하여 스스로 온갖 고난을 자처했습니다. 우리는 삼손이 저지른 실수를 통해 우리 신앙인이 저지르기 쉬운 전형적인 방식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신앙적인 실패들을 진단할 수 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된 신앙습관으로 인해 다가올 문제들도 피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살펴볼 삼손의 약점은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고 빈번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는 복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를 꾀어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푼 블레셋 사람 30여명을 불같이 화를 내며 죽여 그들의 옷을 취하기도 했고 그렇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들판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15장 7절을 보면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11절에 보면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그러면서 또 다시 1000명을 죽여 버립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나 명령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감정대로 움직였고, 자기 맘에 안들면 다 쓸어버리는 자였습니다. 

또 다른 그의 약점은 그는 정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강한 자였지만 도덕적으로는 자기를 통제할 수 없는, 아니 주위의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는 육체의 정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인 통찰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이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원칙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당시 블레셋이 다스리고 있던 딤나로 가서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습니다. 딤나가 어디입니까? 에돔의 후손이며 아멜렉의 본거지가 딤나이고 야곱의 아들 유다가 창녀로 둔갑한 다말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은 곳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죄악의 본산지가 이 곳 딤나인데 하필이면 삼손은 그곳으로 내려가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지요. 그는 아내가 죽은 후에도 또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여 결국은 그녀를 통해 그의 힘의 근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쫓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은 눈이 빠져서 맷돌이나 돌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을 끊질기게 묻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 지혜, 능력, 사랑을 끊질기게 물어 못쓰게 해버리지요. 들릴라와 함께 삼손은 어떻게 불에 데지 않은 채 불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까?하는 놀이를 하며 놉니다. 

이게 무슨 놀이입니까? 잘못된 쾌락을 허락받기 위해 이번 한 번만 했다가 괜찮으면 조금 더 심한 죄의 깊이로 빠져 들어갑니다. 딱 한번만 더하자. 지난 번에도 괜찮았으니까 이번도 괜찮겠지…” 하며 점점 더 사망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지요.  어느 누구도 실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의 삶의 습관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지요. 마치 불구덩이에 가까이 가는 놀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실패도 우리를 점점 사망의 실패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실수를 통해 회개하지 않고 고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을 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점 죄에 무딘 자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가 신앙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완전히 소진시키고서야 비로서 자신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해구나 후회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는 이건 내 삶 속에서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야. 난 그 부분엔 항상 넘어질 수 밖에 없어. 이건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부분이야. 이게 바로 내 모습이야하고 포기하거나 합리화시킬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두운 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내어놓기를 바라십니다. 삼손이 잘못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지도 않고 단지 습관적으로 죄를 반복했던 그의 무감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의 악순환을 끊을 능력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솔직하게 그 분에게 내어 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실수, 허물을 내어놓고 정면으로 부딪치고자 할 때에 우리에게 그것을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세 번째 그의 실수는 그가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두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특별한 임무를 위해 그를 선택하셨지만 그는 건전하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잘못된 길로만 인도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누구와 어울리는가? 그것은 우리의 전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에 방해가 되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를 살펴보아 신앙에 유익이 되는 사람을 즐겨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인간관계의 중심, 내가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고, 만족을 얻으며, 즐거음과 행복을 느끼는가? 그 사람들이 내 신앙의 유익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 신앙을 소진시키는 사람인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교제는 우리의 사고를 방해하고 삶을 망가뜨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삼손의 실수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영적인 일에 진지하고 하나님을 진지하게, 성실하게 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이면서도 항상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기 일에 매달렸습니다. 자기 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은 욕망에 이끌리며 행동했습니다. 해서 기분 좋으면 했고, 기분 나쁘면 죽이거나 불을 지르는 것이 삼손의 행동양식이었습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삼손은 늘 하나님의 계획엔 무관심했고, 자기 육신의 욕구대로만 살았으며 그 결과 그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무가치한 사람으로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20년 동안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지 못하다가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것은 단 두 번 나오는데 한 번 죽기 전 자신이 묶여있던 집을 무너뜨릴 때를 제외하면 그가 목이 말라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육신적인 목마름이라 할지라도 그가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물을 내리셨고 그래서 그는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이름붙이기도 했지요. 인생의 대부분을 그는 충동적으로 성급하게 자기 능력대로 행동했지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 분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도움을 주십니다. 삼손은 자신이 목마를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목마름이 지나자 또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신앙이라는 것, 하나님을 진지하게 예배한다는 것은 날마다, 매 순간 마다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분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기름부으심의 상징인 머리를 자르고 볼 수 있는 눈을 빼어버리고 오직 그들 만을 위해 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세상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빼어버리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잘라 버립니다. 오직 그들이 시키는대로, 그들을 위해서만 일을 시킵니다. 여기서 삼손의 생이 마감했으면 그는 정말 비참한 삶으로 끝을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였지만 그는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렇게 마음먹자 하나님은 잃어버린 그의 힘을 회복케 하셨고 그가 영웅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수많은 적들이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세운 다곤 신전에서 삼손은 가운데의두 기둥 사이에서 그 기둥을 밀어내어 모든 이방신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 3000명을 죽게 합니다. 애초에 삼손을 보내신 목적을 완성하고 죽게 합니다. 

저는 이상한 사사, 삼손이라는 제목으로 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파했던 다른 일반적인 사사와는 달리 삼손은 영웅으로 태어납니다. 날 때부터 천사가 그의 탄생을 예비했고 그는 블레셋 사람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삼손과 같은 능력을 모두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세상에서 눈멀고 머리 잘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있음을 알고 교만하여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 합니다. 내 뜻, 내 정욕, 내 욕심, 내 성질대로만 살아가다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엉망이 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이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날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삼손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꿇고 부르짖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택하신 어떤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누구에게나 창조의 목적이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뜻의 중심을 발견할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고 발휘활 수 있습니다. 

큰 격려가 되는 부분은 실패의 연속을 살다 간 삼손이지만 하나님의 명예의 전당, 믿음의 선진들을 기록한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 해 줍니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들어 쓰시고 그를 사용하여 선하고 위대한 일, 그가 맡기신 사명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삼손과 같은 능력,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이상 허비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여생. 하나님께 진지하게 우리의 삶의 목적과 사명을 물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너를 넘어지게 하고, 네게 장애가 되며, 내가 네 삶 가운데 역사하게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을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잘못된 성질, 정욕대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주님을 찾을 때에 주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가치를 아시고 우리 안에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아십니다. 우리 혼자 사용하면 그것은 사라지고 결국 눈먼 삼손처럼 맷돌만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만이 그 분의 능력대로 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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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이상한 사사, 삼손

본문: 사사기 16 23-31

삼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설교를 통해서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 사사입니다. 영웅이야기처럼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본받을 만한 것들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20년이나 다스린 사사였습니다. 그 때의 사사는 백성의 지도자였고,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탄생 때부터 범상치 않게 태어났습니다. 사사기 13장에는 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블레셋의 통치를 받고 있을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지파 사람 마노아에게 직접 나타나 네가 아이를 가질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터이니 너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지요. 마치 예수님이 태어날 때 처럼 삼손의 출생은 화려했습니다. 태어나서도 삼손은 이스라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자연적인 힘, 훌륭한 외모 등 여러가지 장점을 지닌 유력한 사사였습니다. 그의 활동 기간 중 감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침범치 못할 정도로 그는 능력이 뛰어난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장점들 중에서도 그의 가장 흉악한 대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허비했고, 방탕하여 스스로 온갖 고난을 자처했습니다. 우리는 삼손이 저지른 실수를 통해 우리 신앙인이 저지르기 쉬운 전형적인 방식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신앙적인 실패들을 진단할 수 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된 신앙습관으로 인해 다가올 문제들도 피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살펴볼 삼손의 약점은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고 빈번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는 복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를 꾀어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푼 블레셋 사람 30여명을 불같이 화를 내며 죽여 그들의 옷을 취하기도 했고 그렇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들판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15 7절을 보면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11절에 보면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그러면서 또 다시 1000명을 죽여 버립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나 명령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감정대로 움직였고, 자기 맘에 안들면 다 쓸어버리는 자였습니다.

또 다른 그의 약점은 그는 정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강한 자였지만 도덕적으로는 자기를 통제할 수 없는, 아니 주위의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는 육체의 정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인 통찰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이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원칙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당시 블레셋이 다스리고 있던 딤나로 가서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습니다. 딤나가 어디입니까? 에돔의 후손이며 아멜렉의 본거지가 딤나이고 야곱의 아들 유다가 창녀로 둔갑한 다말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을 곳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죄악의 본산지가 이 곳 다말인데 하필이면 삼손은 그곳으로 내려가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지요. 그는 아내가 죽은 후에도 또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여 결국은 그녀를 통해 그의 힘의 근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쫓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은 눈이 빠져서 맷돌이나 돌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을 끊질기게 묻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 지혜, 능력, 사랑을 끊질기게 물어 못쓰게 해버리지요. 들릴라와 함께 삼손은 어떻게 불에 데지 않은 채 불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까?”하는 놀이를 하며 놉니다.

이게 무슨 놀이입니까? 잘못된 쾌락을 허락받기 위해 이번 한 번만했다가 괜찮으면 조금 더 심한 죄의 깊이로 빠져 들어갑니다. “딱 한번만 더하자. 지난 번에도 괜찮았으니까 이번도 괜찮겠지…” 하며 점점 더 사망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지요.  어느 누구도 실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의 삶의 습관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지요. 마치 불구덩이에 가까이 가는 놀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실패도 우리를 점점 사망의 실패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실수를 통해 회개하지 않고 고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을 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점 죄에 무딘 자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가 신앙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완전히 소진시키고서야 비로서 자신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해구나 후회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는 이건 내 삶 속에서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야. 난 그 부분엔 항상 넘어질 수 밖에 없어. 이건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부분이야. 이게 바로 내 모습이야하고 포기하거나 합리화시킬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두운 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내어놓기를 바라십니다. 삼손이 잘못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지도 않고 단지 습관적으로 죄를 반복했던 그의 무감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의 악순환을 끊을 능력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솔직하게 그 분에게 내어 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실수, 허물을 내어놓고 정면으로 부딪치고자 할 때에 우리에게 그것을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세 번째 그의 실수는 그가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두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특별한 임무를 위해 그를 선택하셨지만 그는 건전하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잘못된 길로만 인도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누구와 어울리는가? 그것은 우리의 전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에 방해가 되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를 살펴보아 신앙에 유익이 되는 사람을 즐겨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인간관계의 중심, 내가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고, 만족을 얻으며, 즐거음과 행복을 느끼는가? 그 사람들이 내 신앙의 유익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 신앙을 소진시키는 사람인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교제는 우리의 사고를 방해하고 삶을 망가뜨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삼손의 실수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영적인 일에 진지하고 하나님을 진지하게, 성실하게 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이면서도 항상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기 일에 매달렸습니다. 자기 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은 욕망에 이끌리며 행동했습니다. “해서 기분 좋으면 했고, 기분 나쁘면 죽이거나 불을 지르는 것이 삼손의 행동양식이었습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삼손은 늘 하나님의 계획엔 무관심했고, 자기 육신의 욕구대로만 살았으며 그 결과 그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무가치한 사람으로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20년 동안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지 못하다가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것은 단 두 번 나오는데 한 번 죽기 전 자신이 묶여있던 집을 무너뜨릴 때를 제외하면 그가 목이 말라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육신적인 목마름이라 할지라도 그가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물을 내리셨고 그래서 그는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이름붙이기도 했지요. 인생의 대부분을 그는 충동적으로 성급하게 자기 능력대로 행동했지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 분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도움을 주십니다. 삼손은 자신이 목마를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목마름이 지나자 또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신앙이라는 것, 하나님을 진지하게 예배한다는 것은 날마다, 매 순간 마다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분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기름부으심의 상징인 머리를 자르고 볼 수 있는 눈을 빼어버리고 오직 그들 만을 위해 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세상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빼어버리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잘라 버립니다. 오직 그들이 시키는대로, 그들을 위해서만 일을 시킵니다. 여기서 삼손의 생이 마감했으면 그는 정말 비참한 삶으로 끝을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였지만 그는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
(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렇게 마음먹자 하나님은 잃어버린 그의 힘을 회복케 하셨고 그가 영웅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수많은 적들이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세운 다곤 신전에서 삼손은 가운데의두 기둥 사이에서 그 기둥을 밀어내어 모든 이방신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 3000명을 죽게 합니다. 애초에 삼손을 보내신 목적을 완성하고 죽게 합니다.

저는 이상한 사사, 삼손이라는 제목으로 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파했던 다른 일반적인 사사와는 달리 삼손은 영웅으로 태어납니다. 날 때부터 천사가 그의 탄생을 예비했고 그는 블레셋 사람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삼손과 같은 능력을 모두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세상에서 눈멀고 머리 잘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있음을 알고 교만하여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 합니다. 내 뜻, 내 정욕, 내 욕심, 내 성질대로만 살아가다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엉망이 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이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날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삼손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꿇고 부르짖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택하신 어떤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누구에게나 창조의 목적이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뜻의 중심을 발견할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고 발휘활 수 있습니다.

큰 격려가 되는 부분은 실패의 연속을 살다 간 삼손이지만 하나님의 명예의 전당, 믿음의 선진들을 기록한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 해 줍니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들어 쓰시고 그를 사용하여 선하고 위대한 일, 그가 맡기신 사명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삼손과 같은 능력,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이상 허비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여생. 하나님께 진지하게 우리의 삶의 목적과 사명을 물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너를 넘어지게 하고, 네게 장애가 되며, 내가 네 삶 가운데 역사하게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을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잘못된 성질, 정욕대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주님을 찾을 때에 주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가치를 아시고 우리 안에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아십니다. 우리 혼자 사용하면 그것은 사라지고 결국 눈먼 삼손처럼 맷돌만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만이 그 분의 능력대로 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