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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각목 교회, 조각목 성도 (출애굽기 25장 10-22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시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공급처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후에 한 일은 그들이 이전의 애굽의 풍습과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계명을 주시고 율례와 규례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시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먼저 택하시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신 것은 예배라는 것입니다. 여지껏 모든 것을 공급하신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을 때 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물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헌신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우리가 “?드리러”? 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말할 때, 일주일 동안 세상 속에서 힘들며 고생하다가 주일날 말씀으로 공급받는 날이라고 말을 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전제가 빠진 말입니다. 예배는 일주일 동안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공급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날이 먼저입니다.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계속적인 은혜를 주십니다. 사렙다 과부가 없는 중에서도 드리니까 하나님의 공급이 이어지는 것이고, 어린 소년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드리니까 5천명이 양식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먼저 드리고 (왜?그가 먼저 우리에게 공급하셨으니까…?) 예배 순서- 성도가 드리고, 주님께서 주시고가 반복되게끔 예배 순서가 짜여져 있습니다. 오늘 날 예배의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 받으러 오는 날이라는 잘못된 의식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받는다고 할 적에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이 됩니다. 내가 공급받으려는 곳을 찾으니까 화려한 곳, 큰 곳, 풍족한 곳을 찾습니다. 내가 드리려는 마음이 있을 때에 온전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출 25:3-9]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 왜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실까? 누구나가 헌신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헌신은 부한 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형편에 맞게 분명히 내가 할 수 있는 헌신의 모습이 있다. 

출애굽기 38장 24-31절을 근거로 보면 이 때에 모인 것이 금 29달란트 730세겔, 은 100달란트 1775세겔, 놋 70달란트 2400 세겔이었는데 이것을 오늘날의 단위로 환산하면 금 1.5톤, 은 5톤, 놋 3.5톤 이었다고 하는 엄청난 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과 은과 놋 외에는 그리 귀한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그리 귀해 보이지 않는 성막 재료들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깊은 뜻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6장에 보면 백성들이 아침마다 예물을 가져와서 너무 많아 지니까 모세가 명령을 내려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공포하게 됩니다.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 할 때도 스룹바벨에 의해 2차 성전을 재건 할 때도 힘든 중에 백성들이 예물을 가져왔는데 항상 넘쳐서 넉넉한 가운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헌신의 기적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헌신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우리는 넉넉함을 누립니다. 모든 인류가 살기에 넉넉한 자연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누구나 다 부족하다고 하는가? 관계가 바르지 못하고 탐심이 관계를 막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성막을 지을 모든 재료가 완비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성막의 설계를 맡은 사람이라면 무엇을 먼저 하겠습니까? 대개는 먼저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서 전체의 모양을 구상하고 세세한 부분으로 구상을 할텐데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제시하신 것은 지성소에 있을 언약궤와 속죄소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궤와 속죄소가 바로 성막의 기초고, 설계이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공의이고, 능력이다. 속죄소는 인간의 죄의 가리움이고, 하나님의 은총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긍휼이다. 이 두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시고 말씀하신다.  언약궤 안에는 무엇을 넣어둡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계명을 기록한 돌 판이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이고,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넣어두었습니다. 

  1. 돌판 – 말씀   만나- 육적 말씀- 그리스도   싹난 지팡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성령-> 삼위일체
  2. 돌판- 말씀   만나- 생명의 떡   싹난 지팡이 –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 그리스도를 상징 
  3. 백성의 죄- 돌판- 금송아지 사건으로 깨어진 돌판    만나 항아리- 그날 먹을 것을 다 먹고 안식일에는 거두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  싹난 지팡이 –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에 불망과 원망 
  • 우상숭배, 불순종, 원망과 불평에 대한 죄를 고백하고, 속죄소로 그 죄를 가리움으로 교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은혜. 

오늘 우리가 중점적으로 다룰 것은 언약궤의 주요 재료이자 성전 모든 기구에 있어서 목재의 재료로서 사용되었던 조각목입니다. 조각목이라 번역된 이 나무는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아카시아 나무'(acacia wood)로 번역하고 있으나 원어성경과 KJV만은 이를 '싯딤나무'(shittim wood)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카시아나무는 잎이 길고 넙적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흰 꽃이 피는데 중동지방의 광야나 사막에서 자라는 싯딤나무는 종은 같지만 수분 증발을 막을 수 있게 잎이 작고 꽃이 피지 않습니다. 

조각목은 가시가 많고 볼품이 없어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다윗 궁전을 지을 때 쓴 백향목에 비하면 조각목은 참으로 하찮은 건축 재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성막 목재 부분을 모두 조각목을 사용하라고 하셨고, 특히 성전을 떠받치는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언약궤를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솔로몬의 성전 때에도…? 어떤 목사님 한분이 성막을 연구하다가 그 중 이 조각목에 꽂혀서 여러가지를 살펴보다가 큰 은혜를 맏으셨습니다. 그가 밝힌 조각목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조각목은 서로 찔러댑니다: 조각목은 사막에서 자라기 때문에 결이 심하게 꼬여서 모질어진 악마디가 많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험난한 인생 중에 모나고 거친 성품, 쓴 쭈리가 많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각목은 가시가 많아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끼리 부딪히면서 서로 찔러대는 소리가 요란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각목은 모나고 찔러대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이 근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까지 말이나 행동으로 얼마나 모나게 찔러대며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남만 찌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찔러서 상처투성이를 만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필이면 왜 이런 부적합한 나무를 성막 재료로 쓰라고 하셨을까요? 볼품없는 조각목이지만 다듬어서 귀히 쓰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조각목처럼 남에게 계속 상처주고 시비하며 찔러대는 근성이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교회의 기둥으로, 하나님의 지성소 안의 언약궤를 담은 그릇으로 쓰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조각목이 성전 기둥으로 쓰임받는 것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입니다’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1. 바짝 마른 가지 

조각목이 가진 둘째 특징은 늘 비틀어질 정도로 바짝 말라 있다는 것입니다.         사막 식물 중에 가시가 많은 것도 잎을 통한 수분 방출을 최대한 막고 조금이라도 수분을 더 보존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입니다. 사막 땅 한가운데서 일 년에 한두 번 내리는 비로 수분을 공급하고자 몸부림치며 허덕이는 조각목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그렇게 광야 같은 세상에서 생명 없이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모습과 닮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영적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언제나 목마릅니다. 세상은 영적 갈증으로 목마른 곳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도, 권력을 가져도, 지식을 가져도, 건강을 가져도 그것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오히려 더 목이 마른 곳이 세상입니다. 영적인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목마름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만족함을 느끼는 이유도 영적 갈증을 해소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서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이유는 여전히 세상의 것에서 만족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라비틀어진 조각목을 성막 건축 목재로 선택하신 것은, 사막의 조각목과 다름없는 우리 인간이 영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1. 외로움과 고통의 연속

조각목은 사막에서 모래와 바람에 많이 얻어맞으며 자라는 나무라서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외로움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조각목은 아주 단단하고 억센 악마디가 많습니다. 이 악마디 때문에 뿌리에서 만들어진 진액을 원활하게 공급받는 일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는 일도 조각목처럼 외로움과 고통의 연속일 때가 잦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애매한 고난을 겪기도 하고, 은연 중에 고립 당하기도 합니다. 교인들 중에 뜻하지 않게 왕따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목사도 성도들로부터 왕따 당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봐도 기대고 의지할 곳이 없어 난감해질 때도 있습니다. 결국, 예수께 가는 것밖에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조각목처럼 악마디가 너무 많아 스스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서 고립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도 의심이 많은 성품 때문에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무슨 권면을 해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해주려 해도 세상에서 너무 많이 얻어맞고 속아서 그런지 교회에 와서도 ‘그것이 사실일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의심 때문에 생명의 말씀이라는 진액을 순수하게 공급받지 못합니다. 얼마나 완악한지 모릅니다. 내 속에 있는 완악함이 악마디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고립해 성장을 방해합니다. 

인간이 당하는 이런 상황은 죄로 말미암아 주어진 형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막의 조각목처럼 고립된 채 죽음의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주님을 내 안에 모신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 내가 조각목임을 인정해야 은혜가 입합니다. 

조각목과 같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예수를 간절히 찾게 됩니다. 나 자신이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못나고 어리석어 스스로 살 수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 죽음의 위협과 공포를 느껴본 사람만이 살려는 본능으로 주님을 찾아옵니다. 탕자가 아비 집을 떠나서 온갖 무시, 멸시, 천대 다 받고 인간으로서는 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아버지를 기억하고 돌아온 것처럼, 자신이 조각목의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은 자만이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내가 조각목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주님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이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하던 버릇대로 자기가 정한 행동의 기준, 믿음의 기준을 갖고 그 이상은 절대 행동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믿음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막12:30) 이 주님이 정하신? 믿음입니다. 스스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신앙생활을 자기 수준에 맞추어 적당히 하려고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적당히 해도 신앙생활은 ‘적당히’가 아니라 ‘죽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정한 믿음을 따르지 않고 임의대로 내가 정한 것만 믿는다면 그것이 타락입니다. 내가 얼마나 쓸모 없는 조각목 같은 인생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쓰임 받을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신이 조각목과 같은 존재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 껍질을 벗겨내야 합니다. 

싯딤나무는 커다란 가시가 많고 심하게 뒤틀렸으며, 악마디도 많은 나무이기 때문에 그대로는 무엇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조각목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쓰임새에 맞도록 잘 잘라야 합니다. 조각목을 성전 기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여섯 자로 잘라야 하는데 나무가 “?나는 일곱 자니까 일곱 자 그대로 있겠소”?라고 자기주장을 한다면 그 나무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쓰시자고 할 때 자기의 모습을 꺾고 순종할 때에 비로서 올바르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지식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하나님의 수준에 맞도록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내 믿음을 끌고 가면 망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믿음을 끌고 가는 기준이 되게 해야 합니다. 

 

또 반대로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저는 부족해서 못 해요”?라고 합니다.  사양하는 것을 겸손으로 잘못 알고 너무 자신을 잘라내서 쓰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만 하면 하라고 명령하신 주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목사인 저도 기도하다가 본문을 받고 설교를 준비하면 언제나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 말씀을 하다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면 어떡하나? 그러다가 이 말씀 빼고 저 말씀 빼면 하나님의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쓰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내가 왜 이렇게 걱정하나?’ 설교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그분만 배경 삼고 담대하게 나가면 내가 했던 모든 두려움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가를 볼 수 있게 하십니다. 못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온 발상입니다. 

 

조각목을 성전 짓는 재목(材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용도에 맞게 잘 자른 후에 껍질을 다 벗겨 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나’라는 껍질을 벗겨 내야 합니다.  외식과 위선, 주제를 모르고 잘난 척하는 것, 되지 못하고 된 체하는 것,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것, 가지지 못했으면서 가진 체하는 것 등 모든 껍질을 다 벗겨 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자신을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성령의 지식과 지혜와 성령의 권능으로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조각목을 소용에 맞게 치수대로 잘라 쓰듯, 우리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쓰임 받을 때 감사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이 발가벗은 자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 주제에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가진 것처럼 껍질로 싸고 위선을 떨고 있으니 그 껍질을 속히 벗겨 내야 합니다. 

 

껍질을 벗긴 조각목은 재빨리 금으로 싸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비가 오면 썩고 뙤약볕이 내리쬐면 비틀어져 갈라지고, 무엇에 부딪히면 금세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믿음도 껍질을 벗긴 조각목처럼 연약하기만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조그마한 일을 당해도 금세 교회에 안 간다고 버팁니다. 제일 속상할 때 제가 욕먹는 것도 괜찮고, 헌금이 안나와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지만 무슨 일이던지 성도가 안나오면 죽을 만큼 속상합니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은 인간의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죽을 인생입니다. 예배에 나오셔서 그 관계의 끈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이 죽습니다. 인간과의 관계는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껍질 벗긴 조각목처럼 금세 부서지기 쉽습니다. 근심과 염려가 오면 쉽게 썩어버립니다. 그리고 외부 환경에 의해 비틀어지고 갈라집니다. 이런 나약한 근성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근성 그대로 놔두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싸라는 것입니다. 조각목을 금으로 싼 것처럼 우리도 금 같은 믿음으로 우리의 조각목 같은 심령을 싸서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입니다. 여전히 내 안에서 나만 보인다면 내 안에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육신의 생각에 머무르는 나만 보이면 썩은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늘 비틀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안에 쏙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 되시는 주님만 밖으로 나타나시면 달라집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 때문에 누구를 만나도 그를 부드럽게 만들고, 기쁘게 만들고, 만족하게 만들고, 다시 보고 싶게 만듭니다. 금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뿐더러 언제 어디서나 제값을 지닙니다. 

 

조각목의 변형을 막고 성전 기둥으로 값지게 사용하기 위해서 금으로 싸는 것처럼, 나를 보호하고 나를 통해 예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예수가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근성과 나의 자아가 드러나거든 ?‘내가 예수 안에 들어가지 못했구나. 주님과 떨어져 나 홀로 있구나’라고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깨닫고, 부러지기 전에, 비틀어지기 전에, 썩기 전에, 쓸모 없는 나무가 되기 전에 빨리 주님 안에 들어가서 금으로 조각목을 둘러싸는 것처럼 예수로 나를 둘러싸야 합니다. 

 

예수의 피 속에는 예수의 특성이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받아 마시라는 것은 예수의 특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지 않았을 때는 별의별 특성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능력도 나타나고 이적도 나타나고 악한 영도 몰아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도 합니다.

 

우리는 조각목이 금으로 싸여 쓰임 받는 것처럼 예수의 특성만 나타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노라 하는 사람 중에도 자기가 가진 못난 근성과 기질을 끝내 버리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크리스천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안디옥 교회에서        제일 먼저 생긴 말인데, 안디옥 교인들은 그 당시 예수의 특성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성령이 충만해서 가는 곳마다 예수의 특성을 나타냈습니다. 예수에게 미친 사람,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진 사람이라는 뜻의 ‘예수쟁이’라는 말로 불린 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원래 의미입니다.

 

조각목은 정금으로 싸일 때 비로소 성전, 법궤, 기둥, 제단 등을 만드는 재료로 훌륭히 사용됐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날마다 예수의 피 공로로 씻음받고 예수의 특성을 나타낼 때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체인 모든 성도도 똑같이 주님의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인 ‘나’를 조금이라도 나타내려?하면 주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굉장한 능력과 이적을 나타내다가 10년, 20년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 능력이 싹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하신 일을 전부 자기가 가로채서 자기가 했다고 자랑하고 영광 받으니까 주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교회 일도, 전도도 자기가 했다고 하면 안됩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난 순종만 한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만 앞세우고 나는 주님 뒤에 가려서 주님만 보이게 하는 자는 죽을 때까지 능력을 나타내며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성경 읽다가 가장 포기하기 쉬운 장; 성막, 계명

그 곳에서 발견한 조각목의 진실-> 2012년 목회를 한지 1년이 지나서 직장있는 성도도 없고 서로 찌르는 말

표현은 못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 배운 사람, 직장 좋은 사람, 보내주세요. 부끄러웠던 기도

그렇게 기도할 때에 응답처럼 주신 말씀 – 조각목 

예수님께서도 오셔서 하필이면 그 많은 좋은 곳, 예루삶렘을 놔두고 가장 멀리 떨어진 북쪽 갈릴리 지방의 어부들을 제자 삼아, 세리, 창기, 문등병자, 사마리아여인, 그런사람들을 만나면서 교회를 이루신 분. 

구약의 교회- 제사장, 레위인, 구별돈 자들을 통한 예배 

신약의 교히- 성령 받은 자, 직업과 출신에 상관없이 그래서 탈도 많고 분쟁도 많고, 그런데 그렇게 성막의 뜰이 무너지면서 구원의 문이 이스라엘에게서 열방으로, 전 세계로, 그리고 한국으로. 그렇게 밀려오는 압도적인 은혜 

그래 난 조각목이다. 난 조각목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목사요, 조각목 성도들의 목사이다. 

그런데 이 모습을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예수 께서는 금테를 입혀 주실 것이다.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언약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부어주실 것이다. 

정말 나같은, 조각목과 같은 쓸모없는 인생을 택하사 하나님의 금테를 입혀서 성전의 법궤로, 기둥으로 삼으신 주님. 우리 성도와 함께 그 은혜를 나누고 싶다. 우리 모두 조각목인생이 아닙니까? 서로 잘났다고 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조각목인 것을 인정하면서 가시에 찔려도 우린 원래 그랬잖아, 나도 누군가를 찌르며 살아왔잖아 하며 감싸 안아주고 나 자신을 주님 앞에 고백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금테를 입혀서 정말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쓰임받는 우리 로고스 교회, 로고스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