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2018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신앙과 감정 (잠언 4장 20-27절)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감정이란 것은 항상 이중적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감정에 얽메이지 말라. 감정대로 신앙생활 하지 마라. 감정에 의존하지 말고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등 감정을 위험한것, 혹은 부정적인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장 핵심 본질은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계명 역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감정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은혜 받았다고 할 때에 그것은 감정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입니까? 


18세기 때에 미국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두 명의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 분은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고 또 한 명은 조지 휫필드 목사님입니다. 두 분은 한 시대를 이끈 리더였지만 굉장히 그들의 사역이라던가 특징이 굉장히 대조되는 목회자였습니다. 에드워드 목사님은 예일대학 출신으로서 나중에는 프린스톤 대학의 총장이 되기도 하는 전형적인 학자스타일의 목회자였습니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끼고 말투도 변화없이 읽어내려가는 스타일이었지만 하지만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이라는 그의 대표적인 설교처럼 그 내용이나 영향력은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게 했고 또한 변화시켰습니다. 이에 반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호소하는 설교가가 바로 조지 휫필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연기자 수업을 받았던 사람으로 극적인 화법을 이용해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습니다. 사람들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 조지휫필드가 인도하는 집회에 모여들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라고 불릴만큼 이성이 강조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신학자들이나 일부 목회자들은 그러한 조지 휫필드의 설교를 위험하거나 혹은 이상한 집단으로 몰고가기도 했습니다. 이 두 명의 목회자들은 당시의 가장 영향력있는 설교가임에도 당시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선호도가 극명히 갈리는 그런 설교가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나단 애드워드가 조지 휫필드 목사를 변호하면서 신앙생활에서 감정의 역할을 강조하면 쓴 책 이름이 [신앙감정론: religious affection]이란 책입니다. 그는 감정주의와 교리주의로 나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지성과 감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마음의 두모습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에드워드에 의하면 감정이 없는 신앙이란 불가능합니다. 참된 신앙은 본질적으로 많은 부분에 있어서 거룩한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에드워드의 이러한 강조는 마치 감정은 신앙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면서 신앙과 감정을 분리시키고. 신앙을 지성적인 이해의 측면으로만 편협하게 고집해왔던 당시의 지성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고가 되었습니다.  


그 책의 핵심 사항은 이렇다. 

1. 성경은 열정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신6:5).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마음이 뜨거워졌다(눅24:32). 

세종류의 사람이 있다. 스스로 불타오르는 사람, 주위에서 불타오르면 같이 불타오르는 사람, 아무리 해도 불타오르지 않는 사람이다. 

2. 열정은 삶의 힘이다. 

하나님을 열정을 다해 사랑하지 못하면 그분을 위해 큰 일을 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사실만으로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절대 충분치 않다. 감정이 없는 교리에 관한 지식과 논쟁만 일삼는 수준의 신앙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수 없다. 

3. 열정은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된 자만이 세상과 죄를 버리고 주님께 나아갈수 있다. 마음이 감동되지 않으면 100원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아깝지 않지만, 마음이 감동되면 1000만원도 아깝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열정을 자극해야 한다. 

4. 성경은 참된 영성을 ‘열정을 갖춘 영성’이라고 말한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5. 신앙의 위인들은 열정을 갖춘 자들이다.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올때에 바지가 벗어지는줄도 모르고 춤추며 예배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솔로몬 성전을 회복하거나 모세의 성막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열정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6. 예수님은 열정을 갖춘 영성을 보여준 모델이시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며, 땀이 피가 될 정도로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을 가지셨고, 또한 완고한 율법주의자들을 향한 무서운 분노를 터트리셨다. 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향해 우셨다. 

7. 예배는 우리의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찬양은 우리의 열정을 자극하는 수단이다. 예배, 기도, 설교는 무슨 역할을 하나? 열정을 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8. 열정 없는 메마른 마음을 가진 것은 죄이다. 

강팍한 마음이란 감정이 메말랐고, 하나님의 음성에도 움직이지 않는 무감각하고 무감동스럽고, 무엇에도 감동을 받지 못하는 돌같은 마음을 말한다. 열정이 내는 부작용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부작용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열정이 식어버린 것이다. 

 

감정은 믿음의 인생에 있어 경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정이 우리의 열정을 불러 일으킬 때에는 신앙생활의 자극제요 촉매제가 되고 생명력을 불러일으키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 미움, 시기, 우울감, 낙망함, 실망감같은 감정이 몰려오면 우리를 무너뜨린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감정에 치우지지 말라는 것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신앙생활을 어렵게 할 때에 말씀으로 그것을 이기라는 소리이지요. 

은혜 있을 때는 감정이 우리를 이끌고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일로든지 내 감정이 상해있다면 더 이상 감정이 내 신앙을 이끌고 가지 못한다. 이때는 말씀으로 상한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 

내 심령이 상했을 때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일은 그 상한 감정을 사람에게 풀려고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세상적인 수단으로 그 감정을 식히려 한다는 것이다. 은혜 있는 동안 감정이 내 신앙을 움직이는 열정이었기에 그 열정이 식으면서 신앙생활도 식는 경우가 많다. 예배에 소흘하게 되고, 기도하지 않으며 대신 사람들을 만나 수다떨고, 술마시며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한다. 그러나 그 수단들이 내 상한 마음을 진정시키느냐?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내 상한 마음을 부채질 할 때가 많고 다른 부작용을 낳을 때가 많다. 우리가 마음이 상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시 51: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 상한 심령을 가지고 주께 예배드리라는 것이다. 은혜 받고 열정있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내 상한 심령, 상한 감정을 가지고 주께 찾아오는 자를 주께서는 멸시치 낳고 일으켜 주신다. 


(시 42: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11)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상한 심령으로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주셔서 일으켜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음이 상해있을 때 하나님은 어떤 경로들을 통해서든 반드시 말씀해 주신다. 문제는 내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아니면 내 상한 감정에 묻혀서 그 말씀을 외면하는가 하는 것이다. 

Ex) 가인(창 4장):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것은 받지 않으니까 그로 인해서 마음이 상했다. 그 상한 마음은 그 동생 아벨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발전했다. 그 상한 마음을 가지고 혼자 끙끙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 

[창 4:6-창 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은 전적인 위로로 오지는 않는다. 나 자신을 살피게 하고 때로는 지적하기도 하고 강권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내 잘못을 지적할 때 그것을 듣고 나 자신을 고치는 사람과 더 나아가 끝까지 반항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결과는 항상 죄악으로 끝난다. 이 말씀을 듣자 마자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아벨을 쳐 죽이고 만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는데 그 말씀을 들은 가인은 아벨을 죽인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할 때도, 가룟유다가 예수를 배반할 때도,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할 때도 그들은 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행한다. 그것이 인간의 상한 감정의 무서움이고 인간의 연약함과 아둔함이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내 마음이 상했을 때, 지혜있는 자는 하나님께 찾아오고 말씀에 귀 기울인다. 열정이 식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마지막 힘을 내어서 하나님을 찾는 것, 그 분이 하시는 말씀에 억지로 억지로라도 순종하며 따르는 것, 신앙의 힘, 성숙은 이 때 발휘 된다. 은혜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면 한다. 그러나 내 감정이 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으로 그 감정을 이기는 것은 정말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행하는 모습이다. 


[잠언 4:20-27]

내 아들아 (하나님의 사랑표현) 내 말에 주의(집중-다른 것에 눈돌리지 말라)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호소와 권면)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영혼의 건강이 몸의 건강까지 보장-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마음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는 터전입니다. 이 마음은 때로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기도 하고 때론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하는 광야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퍼지는 장소이기도 했다고 죄악이 일어나는 근거지가 되기도 합니다. . 

그런데 철학에서나 심리학에서는 이 마음이 주로 <지, 정, 의>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삶의 모습은 이 지, 정, 의 중에서 "감정-> 지식-> 의지"의 순서로 작동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냐면 하나님의 말씀, 즉, 지식을 먼저 주시고, 우리가 의지적으로 순종하면 감정이 따라오게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때로 감정적으로 불가능한 말씀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이 따르질 않으니 그런 말씀을 외면하거나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데 성숙한 신앙인은 이런 말씀을 주시면 갈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순종하려고 애씁니다. 기도하게 합니다. 그것이 의지적인 순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적으로 순종하면 어느샌가 모르게 그 영혼이 불쌍해지고 이해가 가며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감정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 


나는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무미건조하고 어렵고 부담스럽고, 습관적인 것이 아니라 재미가 넘치고 생명력있고, 열정있고, 적극적인 그런 것을 느끼고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고 하면서 책망받은 라오디게아 교회같은 교회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의 감정이 상해서 낙심되고, 견디기 힘들고, 어려워질 때에 주저앉지 말고 그 때에도 우리 영혼에 들리는 말씀으로 인해 상한 감정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힙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