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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1-12장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두 사건을 뽑으라면? 

골리앗사건과 밧세바 사건 - 신앙의 적에 대한 사건들이면서 너무나 대조가 되는 사건이다. 


골리앗- 다윗이 어린 무명의 목동이었을 때에... 

          -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블레셋의 거인. 인생의 큰 장벽.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존재. 

          그런데 어린 다윗은 어쩌면 너무도 쉽고 어쩌면 너무도 황당하게 그 시험을 너끈히 통과한다. 

          왜? 그는 골리앗보다 하나님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너무도 순전하게 믿고 있었으며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이길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일상에 일이 닥치면 홍해를 건너게 하고 열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항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매일 같이 이백만 명을 굶기시지 않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삼일 마실 물이 없자 의심하게 만든다. 다윗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문제를 단순하게 볼 줄 알았다. 하나님은 골리앗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강하신 분이고, 골리앗이 지금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와 맞설 것이다! 

          

밧세바 - 누구도 그녀를 경계하지 않는다. 그는 이방인도 아니요, 강한 용사도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인이요, 아름다운 자였다. 밧세바를 대할 당시 다윗의 모습도 골리앗을 만날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목동이었던 다윗은 이제 왕이 되었다. 아버지에게서 조차 주목받지 못했던 그가 이젠 모든 민족의 주목을 받는 자가 되었다. 인생의 절정기에 만난 이스라엘의 힘없는 여인.... 누구도 다윗을 대적할 수 없다고 믿었던 그 순간.....다윗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마치 블레셋을 농락하던 삼손이 데릴라 앞에서  고통스럽게 자기의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시험은 전혀 뜻 밖의 곳에서 우리를 넘어뜨릴 때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던 골리앗과 밧세바는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도 똑같이 힘들고 무서운 적에 무너지기 보다 이렇게 뜻밖의 상황, 뜻밖의 상대에게 무너질 때가 훨씬 더 많다. 


다윗- 왕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변질되지 않은 신앙..

그런데 오늘은 그 여정 중에 가장 큰 시험의 사건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넘어지지 않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건은 그 만큼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이 사건은 사무엘하 11장과 12장을 통해 전개된다. 


11장의 시작은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영문성경의 번역은 좀 다르다.

"In the spring, at the time, when kings go off to war," 

봄이 왔다- 인생의 봄. 쨍 하고 해뜰 날....

왕권은 안정되고 인생의 따뜻한 날이 왔다. 그런데 그 때는 또한 왕들이 전쟁을 하러 떠나야 할 때다. 

이 땅에 살 동안 - 참된 안식은 그 날에 있다. 평안해도 곧 일어서야 한다. 영적인 전쟁터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여기가 좋사오니..하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1-6절까지 가장 많이 쓰인 동사- 보내다 (솨라흐" 

1절-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4절- 전령을 보내어 

5절- 사람을 보내 

6절-요압에게 기별하여 (보내어) 우리아를 내게로 보내라.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여태까지 다윗이 범죄하지 않았던 이유- 하나님이 주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랐기 때문,.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없고 그 자리에 다시 자기가 앉았다. 보내는 자가 되었다. 보내면 보낼 수록 그는 점점 더 죄인이 되었다. 그의 범죄는 깊어져 갔다. 

세상의 힘, 권력-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게 한다. 주장하고, 시키고, 보내는 자가 되게 한다. 

그것을 누릴 때는 그것이 쉽고 즐겁고 통쾌하다. 그런데 그 자리가 길어지면 길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보내심을 받은 자, 소명 받은 자. 부르심에 응답한 자 

그런데 죄악의 빠진 인간- 보내는 자, 자기가 가야 할 곳에 다른 사람을 보내고, 자기가 들키기 싫은 곳에 다른 사람을 보내고, 자기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또 보내고, 그리고 사람을 죽이게 하기 위해 그 또 보내고...


그 자리에 있는 동안 그는 그것이 죄인줄 모르고 지었다. 죄가 무서운 것은 죄악을 짓는 동안 그것이 죄인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편이 있는 여인을 범하고도 왕이라는 신분에가려 왕이 이정도도 못하냐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아를 불러 그 여인과 동침하게 해서 밧세바의 아이가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감추려고 했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 보다 왕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 했다. 

전쟁터에 부인과 잠자리를 하지 않는 충성스런 용사 우리아를 다시 가장 위험한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살인죄를 저지르면서도 이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난 내손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야 하면서...자신의 죄를 회피했을 것이다. 


  • 12장의 첫 절은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하여 끊임없이 사람들을 보내어 범죄하던 다윗에게 드디어 하나님은 자기의 주권을 드러내며 "보내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게 하신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끊임없이 교제하던 다윗이 그 자리를 잃어버릴 때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친히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단을 보내신다. 왜? 다윗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나단은 짧고 단순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 준다. 양과 소를 많이 가진 부자 하나가 있고 작은 암양 한 마리를 자식처럼 키우면서 가난하게 사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부자에게  손님이 와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자기 것은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가난한 자의 자식 같은 한 마리 양을 빼앗아 잡았다는 이야기이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그 사람을 죽일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나단이 이야기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오늘의 설교 제목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죄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나를 향한다.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홍해의 기적을 맛보고 삼일 만에 불평불만하는 자가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가나안의 약속을 받고서도 우리는 메뚜기 같아서 절대로 그 땅엔 못들어 간다고 우기는 것도 나라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쳐 놓고서 욕하고 저주까지 하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나 자신을 앉혀 두고서 마치 내가 하나님인양 판단하고 시키고 보내고 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죄가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듯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야!"하고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올 때에 그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히 4:12)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내 안에 회개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도 이것이 내 이야기가 아닌 양 읽고 넘어가는 사람, 다윗도 이런 범죄를 저질렀구나 하면서 안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무리 예배드리고, 회개를 해도 소용이 없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의 위대함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 앞에 고백했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깨달으면 은혜 받았다고 회개하고 감사하는데 누군가의 입술을 통해서 잘못을 들으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변명하고 화를 낸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은혜라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지적당하는 것은 못견뎌 한다. 왜? 사람들 앞에서 수치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언은 반복적으로 훈계를 잘 듣는 것이 지혜로운 자라고 강조한다. 


그가 인정하는 순간 나단의 말은 우리에게 은혜를 준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내가 내 죄를 진정 깨닫고 고백하는 순간 임한다. 


  • 사울과 다윗 

(삼상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다는 사무엘의 말을 듣고서 사울은 처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백성의 탓으로 돌리거나 당신이 오해했다고 말하다가 급기야 사무엘의 옷을 붙잡아 찢어지게 메달리면서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세워달라고, 나중에 버려질 지라도 지금 당장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해달라고 메달린다. 


[시 51:10-시 51:12]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런데 다윗이 범죄했을 때에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두어 지는 것이었다.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똑같이 실수하고 넘어 질 수 있다. 

인생의 봄에 나태해지고 죄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는 연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내 죄를 깨닫게 하실 때에 우리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 안근태와 서지현 

지난 한 주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발단 

한국의 대표적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온누리 교회에서 세례자 대표로 나와 울며 간증했던 전 검사의 동영상을 보고 7년전 그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고통스럽게 세월을 보내던 한 여검사의 고발로 시작된 사건.. 


목사로서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교회는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한 교회의 세례간증이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또 목회자로서 그 성도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이제 새로 신앙생활 하며 세례받은 성도를 세상의 지탄을 받고 교회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원망해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권면해야 하나! 

성도의 입장에서 예수믿고 은혜받은 것을 사람들 앞에 용기를 내어 간증했을 뿐인데 7년전의 술김에 한 일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수치를 주면 이 사람이 앞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여검사의 고통스러웠던 7년간의 세월이나 동영상을 보고 받았을 충격과 분노, 그리고 세상이 그 일을 알렸던 그 용기에는 똑같이 공감하며 함께 애통하며 위로하는 마음은 백번 가져야 되지만... 


몇번이고 간증을 들려보고 그 여검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 사람은 자기가 공직에 있을 때 성실하고 꺠끗하게 일했으며 억울하게 사임하게 되었다고, 교만한 자신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그 고백이 너무나 공허하게 들렸다. 그는 그가 공직에 있을 때에 이미 세상에 알려진 죄에 대해서도 한번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피해자인 서검사의 이야기도 현대 교회를 향한 따금함이 느껴진다.

"수년동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혹시나 조직에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망설이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교회의 어두운 모습들이 "교회를 위하여"라는 말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오늘의 설교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사건을 터뜨리게 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주인공을 그 검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임을, 나 자신임을 깨닫게 하신다. 

스쳐가듯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 앞에,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나에게, 내 말에 상처입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증언한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올바르게, 진실하게 회개하여 왔는가? 

남의 입을 통해 펼쳐진 우리의 연약함에 분노하며 감추려 애쓰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추상적으로 내 교만함을 용서해주시고 내 연약함을 용서해 달라고 뭉뚱거리면서 알아서 용서해 달라고 마치 영수증을 청구하듯 그렇게 회개하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죄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서부터 복음은 시작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세례요한의 외침, 예수 그리스도의 외침은 지금도 뉴스를 통해,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