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092018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  

'로고스 교회 /여호수아서 강해'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7.03.17 여호수아 24장  (세겜언약)
  2. 2017.02.25 여호수아 23장 - 고별설교
  3. 2017.02.17 여호수아 21장 레위지파에게 주신 땅
  4. 2017.02.17 여호수아 20장 도피성

여호수아 24장  (세겜언약)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에게 본투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셨던 주님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 칠십오세였더라 


말씀을 따라 간 곳 - 5절에 보면 가나안 땅-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그곳에 들어가자 마자 6절)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 12:6)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세겜땅: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약속한 곳 

동시에 야곱의 딸 딤나가 비극을 당한 곳. 

에발과 그리심 산 - 축복과 저주이 땅이 함께 있던 곳 - 선택의 땅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후에 에발산에 올라 모세의 율법을 돌판에 기록하며 백성들과 함께 읽었다 (8장) 

가나안의 명과 암. -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면서 바로 이곳 세겜에서 언약을 맺으신다. 


역사적 진술 

아브라함 시대(2-4)-출애굽 시대 (5-7)-가나안 정복 시대 (8-13) 


1) 아브라함 시대: 우상숭배하던 너희를 내가 택하고 불렀다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2-3절) 강건너 - 세상에서 살아 갈 때에...

(요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2) 출애굽 시대: 애굽이 우상 (5-7) - 다시 세상으로...탕자처럼 세상의 노예가 되어.....

모세와 아론을 보냈다 (지도자 파송) - 재앙을 내렸다(심판) - 인도하여 내었다 .(구원)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 (노예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다) 


3) 가나안 정복시대 :가나안 우상 

가나안 동편이 아모리 사람과 모압의 아들 발락으로부터 구원 

12절 : 너희의 칼이나 활로써 이룬 것이 아니다 

13절: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나니...


이 모든 것을 내가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함. 

왜? 깨닫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전적인 하나님이 은혜임을 알게 한다. 은혜가 떨어지면 내가 한 것으로 기억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애써 기도하지만 이미 이루어지면 끝이다. 은혜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14절) - 모두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한다면.... 

그를 섬기라. 그만 섬기라.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두 신을 섬기지 말고, 세상신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말고,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 


너희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을 때에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를 기억하라!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몰아내셨는가를 기억하라. 


신앙은 끝없는 선택이다. 

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통하여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 권리는 하나님이 손대지 않으신다. 

좋은 것을 보여주시되 그것의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신앙인의 삶, 불신자의 삶...한 쪽을 택하라는 것이다. 

결코 두 삶을 섞지 말라는 것이다. 


->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리.. (16절)

자기 입술의 고백, 시인, 결단. (17-18절)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반전: 19절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다. (You are not able to serve the Lord) 

너희에게는 그를 온전히 섬길 능력이 없다. 

너희는 여호와를 온전히 섬길 수 없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거룩과 질투가 함께 할 수 있는가? 

거룩은 순전한 것, 순결한 것, 질투도 순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그가 누릴 영광과 사랑을...

(롬 1: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스스로 증인이 되어라. -> 되겠습니다. 


23절: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라. 

그들이 여전히 이 와중에 각각 이방 신들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다. 


이 돌이 증거가 될 것이다. (옛언약) 돌로서 주신 언약 


마치 베드로가 자기가 배반하지 않음을 단언해도 그 날 새벽 세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함을 알고 있었던 것 처럼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심했어도 그들이 곧 돌아설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들이 돌아서도록 내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을 부으셔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인도하실 것임을 예언하셨다. 



새언약 

예레미야 31장 31-34절 

[렘 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겔서 36장 16절부터---38절) 


여호수아, 요셉, 엘르아살(아론의 아들) 의 안장 

- 각각 이방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받고 죽은 자 


하나님은 약속의 성취자. 


안식은 언제 가능한가? 참 하나님 안에서....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이제 이 은혜를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그 분과 관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겜은 선택이다. 

하나님을 선택하는가? 정욕, 세상, 사탄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해야할 영역에 도움은 주실지언정 그 선택 자체는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옳은 선택을 위해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하여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게 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 바로 경건의 삶이고 영성적 삶이다.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보면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성화되어 가는가를 다룬 말씀이다. 

그 길은 성령의 세례 (요단강)을 건너 자기의 성(여리고성, 아이성)을 무너뜨리는 자기와의 싸움, 정욕과의 싸움이다. 

언약궤(말씀)을 앞에 두고 걸어가야 하는 영적 전쟁터이다. 

믿음 안에서 소명과 비전을 발견하며 가나안 땅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싸움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순간 하나님과 멀어진 내 정욕, 지름길, 편한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성화는 곧 말씀 안에서 자신을 세워가는 길고 지루한 영적 여정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여호수아 23장 - 고별설교 


  • 쉬게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의 나이 많아 늙은지라 


모세와 함께 광야 생활,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요단강을 건너면서 정복전쟁 시작 . 

13장 - 

(수 13:1)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정복전쟁을 마친 후에 이미 나이가 늙었지만 각 지파마다 땅을 분배하기까지 또한 오랜 시간 

그 후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나안 정복을 끝내었을 때의 나이가 90세, 임종시 110세 

약 20여년이 흐른 것이다. 

늙었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았다. 끝까지 자기 사명을 완수한다. 


지난주 엘리제사장, "나이가 많아 늙은지라."

자식이 범죄해도 훈계하지 못하는 엘리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 야곱, 모세, 사도 요한, 바울, 그리고 여호수아...

최후의 순간까지 영적으로 깨어 있다. 사명을 감당한다. 

 

마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도 요한이 

(요일 1: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하듯이 그의 설교는 

(수 23: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 남아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 이미 멸한 나라에 남아있는 나라까지가 기업이다. 남아 있는 나라, 정복해야 할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복해야 할 나라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싸우셔야 한다. 하나님이 싸우시지 않으시면 승리할 수 없다. 

->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지켜 행하는 것. 순종하는 것. 

구원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는 자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영향력과 유혹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에, 또 넘어지고 낙심하고, 실패한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하루 하루의 삶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상숭배 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멀리 할 때 나타나는 현상, 우상 숭배하는 것. 스스로 홀로 설 수 없다. 

이미 이루신 구원을 매일 매일 이뤄가는 것, 하루 하루 주 안에서 살아가며 그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곧 가나안 백성의 삶이다. 


안식은 계속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안식은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주어진다. 

하나님의 관계를 떠난 안식에는 타락이 온다.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주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고 다윗이 전쟁터에서 홀로 쉬다 밧세바를 범한다. 

안식은 일을 멈추고 쉬는 것이 아니라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자

(수 23:10)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11절) 


12절) 돌아서서 가끼이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면 우상과 혼인하게 된다. 중독되고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채찍이 되며 가시가 되어..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그런 세력들을 쫓아내신다. 우리 인생에 해가 되는 것들을 피하게 하시고 쫓으시고 영향 받지 않게 하신다. 


  •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이 아는바라 

- 이것을 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 반드시 그의 말씀은 이루어진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때로 더디고 지루하다.  


  • 선한 말씀도 이루실 뿐만 아니라 불길한 말씀도 임한다. 왜냐하면 결국은 우리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땅이라는 말이 반복- 하나님이 주신 땅. 하나님과 함께 하는 땅

처음 에덴 동산은 오직 선악과 하나만 주의 하면 되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은 그들이 주위에 편재해 있다. 물리치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집어 삼킨다. 


아름다운 땅은 신혼집과도 같다. 신혼 집이 아름다운 이유는 신랑과 함께 거하기 때문이다 .

집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함께 거하니까 좋은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여호수아 21장 - 레위지파에게 주신 땅 


레위지파, 아론의 후에 제사장 지파가 되어 하나님의 제사를 담당한 지파.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제사장 자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시작은 참담하였다. 

(창 49: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 49: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 그들의 분노는 잘못된 분노였는가? 어찌보면 의로운 분노였고, 당연한 분노였다. 자기의 누이동생 딤나를 강간한 세겜 족속을 멸절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의 분노대로 행하였다. 그리고 그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다. 거룩한 할례를 원수를 갚기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다윗은 원수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모세도 자기의 분노를 표현하여 바위를 두번 침으로 온유한 자가 분노로 인해 결국 가나안 땅 앞에서 주저 앉았다. 분노는 결국 죄를 일으킨다. 가인이 아벨에 분노하여 죽이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그것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들의 회복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자신의 감정대로 분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본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분노로 바뀌었을 때에 그들은 의로운 자가 되었다. 제사장 지파가 되었다. 

  • 황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출 32:26)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출 32: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 발람의 꾀에 빠져 모암여인들과 혼음할 때에 

(민 25:11)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 25:12)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민 25:13)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어쩌면 똑같은 노의 행위이고 소멸하는 행위였지만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내 자존심, 내 자격지심이 상했을 때에 분노하지 않은가? 

자기를 향한 분노는 결국 죄를 낳는다. 갈등을 낳고 폭력을 낳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을 위한 분노는 자기를 깨끗이 하고 주위를 깨끗이 하고 거룩하게 한다. 결국 평화를 가져다 준다.


  • 레위인들의 분깃 

- 1-3절 :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에게 자기들의 땅을 요구- 말씀에 근거하여

(민 35:2-3)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 이들은 한 곳에 모여 정착한 것이 아니라 각 지파들을 제비 뽑아 각각의 지파에서 나누어준 땅 48개 고을에 흩어져서 살게 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땅을 분배하기 위해서 8번의 제비를 뽑는다. 하나님의 뜻을 거듭 거듭 물은 것이다. 
  • 이들의 흩어짐은 각 지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심이요, 또한 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기 위하심이다. 
  • 이들의 거하는 땅- 각각의 도피성이 모두 레위지파에게 할당되었다. 
  • 도피성, 살인자들의 땅. 그들을 위한 피난처.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그들의 안전은 보장되었다. 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 목초지: 양을 치는 땅. 목회, 목양. 기르고 양육하고 먹이고 쉬게하고.... 오직 레위지파에게만 각 지파의 땅을 명한 후에 목초지를 주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지파가 목초지를 받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지파에게는 반드시 목초지를 덧붙여 주었음을 강조한다. 왜? 레위지파에게는 목양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파는 각자 자기의 삶만 보살피면 되었지만 레위지파는 타인을 위한 목양의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 우리는 다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요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필수적으로 목양의 의무, 선교를 향한 소명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43절: 여호와께서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그들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The Lord gave them rest on every side...)  

=> 동서남북에 각각 땅을 주고 그 땅에 안식이 임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맞선자가 없었더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라.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들의 관심: 언제 안식 얻지? 언제 땅을 차지하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애굽에서부터 가나안 까지의 여정. 

계속 불평하고, 조급해하고, 안달하고, 낙망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은 어느 날, 사방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그 땅에 안식이 임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라." 


로마서 6장 16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23절) 


이제 원수들의 종이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신다. 

요셉- 감옥에 갇혔으나 감옥을 치리하는 자로, 애굽의 노예였으나 애굽의 총리로서, 다니엘, 느혜미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종으로 부르지 않으신다. 

우리를 자녀로, 친구로 부르신다. 그의 명령은 강압적이지 않다. 무조건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판단하고 생각하라 하신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삶이 가장 자유한 삶을 주기 때문에...

나 스스로 내어드리는 않는 분량만큼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Posted by 소리벼리

여호수아 20장 - 도피성 


  • 2절: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 

(출 21:12)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출 21:13)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 십계명을 주실 때에 주신 말씀. 

출애굽기 21장에 처음 언급하며 이후, 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 그리고 여호수아 20장에 각각 언급 


  • 대상: 부지 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

(신 19:5)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 목적: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3절)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가 율법의 원칙 (동해 보복벅) 

친족이 자기 친족의 권리를 물을 수 있다. (고엘제도) . 

율법은 동해 보복법과 고엘제도를 통해 피살자의 친족은 그 죽은 자를 대신하여 합법적으로 피의 복수를 할 수 있다. 도피성은 합법적인 재판이 공개적으로 열려서 정확한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보복하려는 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읍이다. 

일단 도피성으로 도피하면 도피성은 그를 내어주지 않고 보복자는 따라 들어올 수 없었다. 


  • 위치: 7-8절- 어느 지파든지 반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도록 각각의 가장 가까운 처소. 

(신 19: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가장 가까운 장소에 길을 닦아 누구든지 쉽게 올 수 있도록 도피성을 마련 (누구든지 하루 길 안에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어진 말씀에 보면 도로의 각 교차로마다 이정표를 세워 도피성의 위치를 정확히 알리도록 하였다. 


  • 운영방법 (4-6절) 

문 어귀에서 자기의 사건을 말하고 그들은 성읍에 받아들여 그 곳에 거주하게 한다. (고백, 회개) 

누가 와도 내어주지 않는다. 

재판으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가 확정되면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에 거주하여야 한다. 그 이전에 나오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예표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자유케 되었다. 


  • 도피성과 그리스도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도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모두를 위한 곳 

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리 가까와도 도달하여 들어와야 한다. 


차이점: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자만? 누구든지가 예수 그리스도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 

            대 제사장이 살아 있을 동안만? 그 대제사장은 영원히 죽지 않는 구세주. 

            

우리는 여기서 율법과 은혜의 원칙을 본다. 복음을 순종하고 믿는 자는 결과적으로 그의 죄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행한 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사탄에게 속아서 범죄한 것이 되며 모르고 사탄에게 종 노릇 한 것이 된다.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자, 고의로 죄를 짓지 않은 자  

예)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긍휼은 입은 것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였다(딤전 1:13).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도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 그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 같은 사람을 도피성으로 피하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 그러나 우리는 믿으면서도 고의로 죄를 지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신앙 안에서 우리가 짓는 죄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영이 고의로 짓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의해서 영이 영향력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 탕자 -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 그러나 그가 깨달았을 때에 멈추지 않고 돌이켜 회개했다.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은 고의로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다. 이들은 사탄의 고의적인 죄에 동참한 자들이므로 그들의 죄가 고의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에는 죄를 용서하는 은총이 있을 뿐 아니라 범한 죄를 의도성 없는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녀가 아버지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 하자. 그런 경우 나중에 아버지께 돌아와서 회개하며 잘못했다고 할 때 아버지는 그의 죄를 용서한다. 용서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그 자녀의 죄는 당시 철이 없고 너무 어려서 잘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10년이고 20년이고 그가 회개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그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의 과거의 죄는 고의적인 것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도피성이 어떤 죄인이라도 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된다.


게데스는 성소 혹은 거룩을 의미하고, 세겜은 어깨, 헤브론은 교통, 베셀은 요새, 라못은 높은 곳, 고지(高地), 골란은 기쁨 또는 환희를 뜻하는데,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 또는 성소이시며(요 2:19), 정사를 멘 어깨와 같으시고(사 9:6), 아버지와 사귐을 갖게 해주시는 분이며(고후 5:18-19), 신자들의 피할 요새시며(시 91:2), 높은 하늘에 앉게 해주시는 높은 곳이며(엡 2:6), 기쁨(롬 5:11)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도피성이시라는 말이다.


죄인이 살기 위해서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이는 그가 도피할 곳의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 자신의 사고를 고백하는 것이다. 


  왜 땅의 분배를 마치고 이 도피성을 세우는가? 

            진정한 안식은 땅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땅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사망의 골짜기가 된다. 

            아무리 험한 땅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으면 안전하다. 

            참된 피난처는 우리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