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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사사기 강해'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7.08.05 사사기 18장 단 지파와 미가의 제사장
  2. 2017.07.22 사사기 17장 미가의 신앙
  3. 2017.07.15 사사기 16장 삼손
  4. 2017.07.15 사사기 9장 (요담의 비유)

 

사사기 18장 단 지파와 미가의 제사장


17장부터 사사시대의 타락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몇가지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미가라는 한 가정을 통해서 부모 자식간의 물질로 인한 탐욕의 모습, 기복신앙과 우상이 혼합된 혼합신앙, 그리고 자기 집안의 제사장을 두고 자기를 섬기게 하는 성직의 타락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미가집안의 타락이 어떻게 단 지파의 타락과 연결이 되는지, 그리고 그 신앙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 (삿 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창세기 12장 -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너는 복이 되리라. 이 때 하나님이 지시한 땅- 가나안

                  - 출애굽을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그런데 이 가나안의 의미는 육적, 물질적 의미의 땅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말씀이 전제될 때에 그 땅이 복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철저히 몰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왜 단 지파는 사시기 끝에 가서도 땅을 구하고 다니는가? 왜 17장에서 레위인 청년은 거주할 곳을 찾고자 헤메이고 다니는가? 

                  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왕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자의 특성. 영적, 육적 방황이다. 물질이 있어도, 겉보기는 부족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왕되지 못한 자는 방황한다.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쉴만한 처소를 얻지 못한다. 헤메인다. 열심히 살아도 평안이 없고, 분주해도 산만하기 그지없다. 


단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땅을 분배받은 지파다. 왜 가장 마지막에 땅을 분배받았는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의 왕들을 다 몰살하고서도 그 땅의 원주민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분배 받으러 나오는 자들이 없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제촉하여 각자 그림을 그리고 오라고 까지 한다. 비전을 품고 하나님 주신 복을 취하라고 한다. 그런데도 가장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결국 가장 마지막으로 땅을 분배받은 것이 단 지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지파는 자기들이 살기에 충분한 땅을 유업으로 받았다. 

[수 19:40-48]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그런데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단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그런데 땅을 분배받고도 단 지파는 그 안에 있는 원주민을 내쫓지 않다가 큰 봉변을 당한다. 

[삿 1:34-35]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하나님이 주신 땅을 쉽게 얻지 못하자 단 지파 사람들은 기업으로 받은 땅을 포기하고 지금 거주할 땅을 찾아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 - 약속으로, 씨앗으로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업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죄악을 몰아내야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편한 길로 가려고, 넓은 길로 가려고 하나님 주신 기업을 포기하고 길을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단 지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임의대로 다른 땅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당도한 곳이 바로 미가의 집에까지 당도한 것입니다. 


  • (삿 18: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미가의 집에서 그들은 그 집의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길을 헤메다가 만난 적이 있었나 봅니다. 한 참 방황 할 때에 같이 놀던 사이인데 지금 부유한 집에 와서 제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깜작 놀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 어떻게 이렇게 수지 맞았냐? 대박났냐 하면서 지금 호들갑을 떨면서 그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미가가 이러이러하다가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다"(4절) 고 말하지요. 

그가 잘 풀린 것을 보고 그에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하라" (5절) 하니까 그 제사장이라고 하는 자가 뭐라 말합니까? "평안히 가라 너희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영문 번역을 보니까 하나님이 너희 길을 승인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어느날 갑자기 잘 풀렸더니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내가 이렇게 잘됐어..와 그 하나님께 나도 좀 물어봐죠...너도 잘 될거야 하는 신앙적인 대화 같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은 대화입니다. 

이 제사장은 지금 미가가 자기를 고용하여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고용주가 곧 미가임을 자백하는 말이죠. 

그리고 이 정탐꾼들이 하는 말도 우리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이 형통이라는 말이 Key Point입니다. 

성경에서 형통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요셉이 감옥에 갇혔음에도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을 증거하며 그가 형통하였다고 전합니다. 즉 신앙적인 형통이라는 말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무 문제 없이 잘 되는 그런 형통이 아니라 어떤 환경 중에서도, 오히려 고난 중에서도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형통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정탐꾼들이 말하는 형통은 그저 일 잘풀리고 세상적으로 대박나는, 운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그 레위인 청년처럼 일 잘풀릴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정말로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대화를 했다면 레위 청년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단번에 사람을 위한 거짓 제사장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물어보라 했을 때에 그가 참 제사장이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함도 없이 네 길을 여호와께서 승인하셨다는 말을 감히 내뱉고 있는 것입니다. 


  • (삿 18: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10절에도 모면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제사장의 말을 듣고 떠나 이른 땅은 라이스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땅의 특징을 봅시다. "염려없고, 한가하고, 평안했다... 괴롭게 함이 없고, 부를 누리며.. 아무와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이것이 정말 복된 땅입니까? 어쩌면 지금의 사람들도 가장 꿈에 그리는 삶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 없이 염려없고, 한가하고, 평안한, 누구도 괴롭힘이 없고...그리고 별로 사람들과 상종함이 없는....그런 땅이 있을까? 혼자 살면 되지....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닐까요?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땅을 얻기 위해서 단 족속이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삿 18:14)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그들이 전쟁하기에 앞서 행한 것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탈취하는 것. 왜? 그런 것들을 가져야 전쟁에 승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마치 법궤를 가져야 승리해야 한다고 믿은 것 처럼... 

형식적인, 외식적인, 주술적인 신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전쟁을 치루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하나도 없고 온갖 짬뽕되고 혼합된 우싱들을 다 가지고 전쟁에 임합니다. 


  • (삿 18:19-2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미가의 제사장의 행태- 더 좋은 조건을 위해서 단번에 미가를 배반. 

이런 일들이 교회 내에서도 목회자들 내에서도 얼마나 비일비재 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까?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운 모습 아닙니까? 


  • (삿 18: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미가 입장에서는 이게 하루아침에 뭔 날벼락입니까? 자기 집에서 손님을 잘 재우고 대접해 주었더니 그 손님들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집안의 모든 것을 다 탈취하고 자기 집의 제사장은 또 얼사꾸나 그들의 편에 섭니다. 

그래서 미가와 그 이웃들이 단 족속을 쫓아가서 따지니까 그들이 오히려 위협하면서 조용히 안하면 다 죽인다 협박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미가의 반응이 더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그야말로 짐승의 세계 아닙니까? 약육강식, 적자 생존....

미가도 그러한 삶을 살았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죠...


  • (삿 18:27-28)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죽은 이유도 무엇-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그들이 행복한 이유가 그들의 사망의 원인...


  • 단 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 

[창 49:16-17]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다윗 시대에는 아직 12지파 안에 있었으나, 그 후에는 그 이름이 완전히 사라져 계시록에서 요한이 환상에 본 천사가 인친 지파에서도 빠지게 됩니다. 초대교회때는 적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출생했다고 믿어왔으며, 열두 지파 중에 가장 먼저 우상숭배로 타락한 족속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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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사사기 17장 미가의 신앙


사사기서 1장부터 16장까지는 사사들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부패했으며, 사사들을 택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가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 17장부터 끝장 까지는 사사기서의 부록과도 같은 장으로서 몇가지 에피소드를 통하여 이 시대의 신앙과 도덕이 얼마나 타락하였는가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게 이 사사기서의 에피소드들은 지금 시대에서도 여전히 살펴 볼 수 있고 우리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1. 미가 집의 우상 (17 : 1~6)

미가의 뜻 : 여호와와 같은 이가 어디있느냐? 

사사기에서의 에브라임: 전쟁이 시작되면 가만히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 튀어나와 화를 내며 자기의 이익을 탐하는 지파로서 반복되어 소개된다. 은혜의 지파가 탐욕의 지파가 된 것이다. 


그 에브라임 지파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은 천백 세겔을 잃어버렸다. 10절에 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아 해마다 은 열을 주기로 약정하는 것을 보면 은 천백은 한 제사장의 110년의 연봉과도 같은 금액이다. 그 이전의 삼손의 기사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들릴라에게 삼손을 넘겨주는 대가로 약속한 금액이다. 한 민족의 운명을 두고 거래한 금액이다. 그런데 그 돈을 취하여 간 범인이 누구였는가? 바로 여인의 아들 미가였다. 

그런데 어머니 몰래 그 돈을 훔쳐간 미가가 어머니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왜? 어머니의 저주 때문이다.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때에 당시 신에게 하는 저주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어머니가 돈을 잃어버린 다음, 얼마나 괴로와 했을까? 그런데 꿈적않던 미가가 어머니의 저주을 듣고나서 그 돈을 돌려준다. 당시의 탐욕스런 세태와 동시에 미신으로 가득했던 사회적 환경을 보여준다. 


돈을 가져온 아들을 보고 여인은 그 아들의 죄를 탓하지 않고 여호와께 복을 빌었다. 그런데 이 복을 빈 행위는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었다. 당시의 모든 저주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도 당시의 미신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그 어미는 아들의 저주를 풀어주기 위하여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께 드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 2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도 말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가의 어머니는 미가에게 한 저주를 풀기 위하여 축복한 후에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거룩히 드린다고 말한다. 말도 안되는 제사다. 죄 질 것 다 지어놓고 회개대신 헌금 얼마 내면서 축복을 비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참 회개의 예배이지 물질을 구걸하지 않는다. 


    • 에봇과 드라빔: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의복이다. 기드온은 자신이 미디안 족속에게서 탈취한 은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집안에 두었다가 그것을 음란히 섬겼다고 증거한다. 제사장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거룩하게 사용되는 성물이라 할지라도 자격이 없는 자가 마음대로 사용하면 우상이 된다. 성경책도, 십자가도, 성가대 가운도, 그것을 음란히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드라빔은 무엇인가? 라헬이 야곱과 함께 라반에게서 독립되어 나올 때에 라헬이 말 안장 가운데 숨겨나온 것이 드라빔이다. 이것은 고대에서 가정 수호신으로 섬기던 우상이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 중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운다. 


      이들이 드리는 예배를 보라. 산당에서, 에봇과 드라빔을 거룩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제사장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드리는 예배.... 


      이러한 예배를 드리는 동기와 결과가 무엇인지 성경은 증거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창 3:22-2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자에게 금하신 것- 생명, 영생. 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기 때문에... 

      지금도 신앙생활 하면서 자기 멋대로 하는 자에게 생명을 금하신다. 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 실질적인 것이다. 예수의 종이 되겠다는 것이고 순종하겠다는 선언이자 계약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으면 천국 가니까 무조건 믿는다고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예수 내 구주를 마치 주문처럼 외게 만든다. 

      주님, 주님 기도하면서도 절대로 순종하지 않는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불순종 하고 죄를 지면서 "주님, 다 아시지요?"하고 오히려 주님을 겁박한다. 합리화와 변명으로 일관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하신 것-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선악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변하고 불완전하다. 우유부단하다. 

      주님은 막혀있던 생명의 길을 여셨다. 잃어버렸던 선과 악의 기준을 다시 세워 주셨다. 


      7-13절)  레위인 제사장 

      유다에서 살다가 거류할 곳을 찾아 에브라임까지 방황하는 제사장. 왜? 있을 곳이 없으므로...


      당시의 레위인은 여섯 개의 도피성과 40여 개의 성읍을 각 지파에서 주도록 되어 있었다(민 35:6 ; 수 21:1). 그러나 영적으로 타락했던 사사 시대에; 이러한 율법이 잘 시행되지 않아 레위인이 처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생계의 방도를 찾기에만 급급했던 레위인은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하던 중 우연히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아들을 제사장에 앉히고 꺼림직했던 미가에게 이 레위인은 좀 더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로서 여겨졌을 것이다. 

      미가는 그 레위인과 계약을 한다.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누구를 위하여 : 미가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그런데 그것을 물질을 가지고 계약한다. 

      그 결과 :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11절 (아버지가 아닌 아들이 되고)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라 미가의 제사장,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미가의 집) 

                    

      그러면서 하는 미가의 고백: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17장 2절: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 

      13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과연 복이 왔을까?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

      복은 내 중심에서 떠나 하나님이 가라 하신 곳에 가는 것이 바로 그 자체가 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 자체가 복이다. 


      마음대로 우상숭배하며 거짓에 찌든 예물을 드리고 말씀과 상관없는 예배를 드리며 복받기를 원하는 신앙. 

      그것이 왕을 잃어버린, 각자가 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사사기 시대의 신앙이었다. 

      지금의 신앙과 다른가? 같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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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소리벼리

       

      이상한 사사, 삼손 (본문: 사사기 16장 23-31절) 


      삼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고 영화나 연극으로는 많이 소개되었지만 희한하게도 설교를 통해서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 사사입니다. 영웅이야기처럼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본받을 만한 것들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십년이나 다스린 사사였습니다. 그는 탄생 때부터 범상치 않게 태어났습니다. 사사기 13장에는 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블레셋의 통치를 받고 있을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지파 사람 마노아에게 직접 나타나 ‘네가 아이를 가질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터이니 너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처럼 나기 전부터 구별된 자였습니다. 태어나서도 삼손은 이스라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자연적인 힘, 훌륭한 외모 등 여러가지 장점을 지닌 유력한 사사였습니다. 그의 활동 기간 중 감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침범치 못할 정도로 그는 능력이 뛰어난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장점들 중에서도 그의 가장 흉악한 대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허비했고, 방탕하여 스스로 온갖 고난을 자처했습니다. 우리는 삼손이 저지른 실수를 통해 우리 신앙인이 저지르기 쉬운 전형적인 방식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신앙적인 실패들을 진단할 수 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된 신앙습관으로 인해 다가올 문제들도 피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살펴볼 삼손의 약점은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고 빈번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는 복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를 꾀어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푼 블레셋 사람 30여명을 불같이 화를 내며 죽여 그들의 옷을 취하기도 했고 그렇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들판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15장 7절을 보면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11절에 보면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그러면서 또 다시 1000명을 죽여 버립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나 명령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감정대로 움직였고, 자기 맘에 안들면 다 쓸어버리는 자였습니다. 

      또 다른 그의 약점은 그는 정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강한 자였지만 도덕적으로는 자기를 통제할 수 없는, 아니 주위의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는 육체의 정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인 통찰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이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원칙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당시 블레셋이 다스리고 있던 딤나로 가서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습니다. 딤나가 어디입니까? 에돔의 후손이며 아멜렉의 본거지가 딤나이고 야곱의 아들 유다가 창녀로 둔갑한 다말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은 곳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죄악의 본산지가 이 곳 딤나인데 하필이면 삼손은 그곳으로 내려가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지요. 그는 아내가 죽은 후에도 또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여 결국은 그녀를 통해 그의 힘의 근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쫓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은 눈이 빠져서 맷돌이나 돌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을 끊질기게 묻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 지혜, 능력, 사랑을 끊질기게 물어 못쓰게 해버리지요. 들릴라와 함께 삼손은 어떻게 불에 데지 않은 채 불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까?하는 놀이를 하며 놉니다. 

      이게 무슨 놀이입니까? 잘못된 쾌락을 허락받기 위해 이번 한 번만 했다가 괜찮으면 조금 더 심한 죄의 깊이로 빠져 들어갑니다. 딱 한번만 더하자. 지난 번에도 괜찮았으니까 이번도 괜찮겠지…” 하며 점점 더 사망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지요.  어느 누구도 실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의 삶의 습관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지요. 마치 불구덩이에 가까이 가는 놀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실패도 우리를 점점 사망의 실패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실수를 통해 회개하지 않고 고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을 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점 죄에 무딘 자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가 신앙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완전히 소진시키고서야 비로서 자신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해구나 후회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는 이건 내 삶 속에서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야. 난 그 부분엔 항상 넘어질 수 밖에 없어. 이건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부분이야. 이게 바로 내 모습이야하고 포기하거나 합리화시킬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두운 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내어놓기를 바라십니다. 삼손이 잘못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지도 않고 단지 습관적으로 죄를 반복했던 그의 무감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의 악순환을 끊을 능력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솔직하게 그 분에게 내어 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실수, 허물을 내어놓고 정면으로 부딪치고자 할 때에 우리에게 그것을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세 번째 그의 실수는 그가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두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특별한 임무를 위해 그를 선택하셨지만 그는 건전하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잘못된 길로만 인도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누구와 어울리는가? 그것은 우리의 전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에 방해가 되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를 살펴보아 신앙에 유익이 되는 사람을 즐겨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인간관계의 중심, 내가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고, 만족을 얻으며, 즐거음과 행복을 느끼는가? 그 사람들이 내 신앙의 유익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 신앙을 소진시키는 사람인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교제는 우리의 사고를 방해하고 삶을 망가뜨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삼손의 실수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영적인 일에 진지하고 하나님을 진지하게, 성실하게 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이면서도 항상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기 일에 매달렸습니다. 자기 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은 욕망에 이끌리며 행동했습니다. 해서 기분 좋으면 했고, 기분 나쁘면 죽이거나 불을 지르는 것이 삼손의 행동양식이었습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삼손은 늘 하나님의 계획엔 무관심했고, 자기 육신의 욕구대로만 살았으며 그 결과 그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무가치한 사람으로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20년 동안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지 못하다가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것은 단 두 번 나오는데 한 번 죽기 전 자신이 묶여있던 집을 무너뜨릴 때를 제외하면 그가 목이 말라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육신적인 목마름이라 할지라도 그가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물을 내리셨고 그래서 그는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이름붙이기도 했지요. 인생의 대부분을 그는 충동적으로 성급하게 자기 능력대로 행동했지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 분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도움을 주십니다. 삼손은 자신이 목마를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목마름이 지나자 또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신앙이라는 것, 하나님을 진지하게 예배한다는 것은 날마다, 매 순간 마다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분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기름부으심의 상징인 머리를 자르고 볼 수 있는 눈을 빼어버리고 오직 그들 만을 위해 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세상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빼어버리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잘라 버립니다. 오직 그들이 시키는대로, 그들을 위해서만 일을 시킵니다. 여기서 삼손의 생이 마감했으면 그는 정말 비참한 삶으로 끝을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였지만 그는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렇게 마음먹자 하나님은 잃어버린 그의 힘을 회복케 하셨고 그가 영웅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수많은 적들이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세운 다곤 신전에서 삼손은 가운데의두 기둥 사이에서 그 기둥을 밀어내어 모든 이방신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 3000명을 죽게 합니다. 애초에 삼손을 보내신 목적을 완성하고 죽게 합니다. 

      저는 이상한 사사, 삼손이라는 제목으로 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파했던 다른 일반적인 사사와는 달리 삼손은 영웅으로 태어납니다. 날 때부터 천사가 그의 탄생을 예비했고 그는 블레셋 사람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삼손과 같은 능력을 모두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세상에서 눈멀고 머리 잘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있음을 알고 교만하여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 합니다. 내 뜻, 내 정욕, 내 욕심, 내 성질대로만 살아가다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엉망이 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이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날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삼손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꿇고 부르짖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택하신 어떤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누구에게나 창조의 목적이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뜻의 중심을 발견할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고 발휘활 수 있습니다. 

      큰 격려가 되는 부분은 실패의 연속을 살다 간 삼손이지만 하나님의 명예의 전당, 믿음의 선진들을 기록한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 해 줍니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들어 쓰시고 그를 사용하여 선하고 위대한 일, 그가 맡기신 사명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삼손과 같은 능력,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이상 허비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여생. 하나님께 진지하게 우리의 삶의 목적과 사명을 물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너를 넘어지게 하고, 네게 장애가 되며, 내가 네 삶 가운데 역사하게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을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잘못된 성질, 정욕대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주님을 찾을 때에 주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가치를 아시고 우리 안에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아십니다. 우리 혼자 사용하면 그것은 사라지고 결국 눈먼 삼손처럼 맷돌만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만이 그 분의 능력대로 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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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소리벼리

       

      사사기 9장 (삿 9:7-21) 


      사사기 9장은 형제를 죽이고 왕이된 아비멜렉의 몰락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비멜렉의 몰락을 예언한 형제들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담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기드온- 하나님께서 그를 큰 용사로 부르시고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십삼만 오천명과 삼백명이라는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도 승리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큰 승리를 거두자 백성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삼고자 하지만 

      (삿 8: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나님만이 왕되심을 선포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기드온의 약점 - 물질욕, 탐욕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8:21)  물욕, 탐심 

      "23절 - 정치적, 권력욕은 없는 대신에 물질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24절 -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두고 예배함. 

      -에봇: 대제사장들이 걸친 의복 - 금실과 청색, 홍색, 자색실과 가늘께 꼰 베실 - 그리스도의 사역과 속성을 나타내는 상징.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들이 떨어지지 않게 견대로 묶여져 있다.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하나님께 붙어 있는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것이다. 

      27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30)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 


      아비멜렉 - 세겜 땅에서 낳은 자녀. 신약시대의 사마리아 땅, 수가성. 성적으로 문란한 지역, 우상숭배지역 

      -세겜지역에 가서 그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명이 다 너희를 다스리리를 원하냐? 한사람이 너희를 다스리기를 원하냐?" 


      누구를 왕으로 삼을 것이냐? 

      기드온의 말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선동하는 말 (삿 8:23) 

      나도 내 아들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사사기- 사무엘에 계속적으로 흐르는 주제- 누가 왕이냐? 누구를 왕으로 삼을 것이냐? 

      참 왕의 표 - 다윗 -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사기-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던 시기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것을 잊어버리면 곧 나타나는 현상 - 곧 우상을 섬기고 죄에 빠짐

      사람은 스스로 왕되어 살 수 없다. 결국 무언엔가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람은 자유를 감당할 수 없다. 정작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야 할 때, 사람은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어떠한 권위에 의지할 것을 찾는다.


      그리스도-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메를 지고 내게서 배우라. 

      오직 주만이 나를 자유케 하고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 


      아비멜렉-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부왕이 죽은 다음 아비멜렉은 세겜에 있는 외가 친척들을 사주(使嗾)하여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70 형제중에서 자기를 왕에 세우도록 꾸미고, 은 70개로 불량배를 사서 그들의 지지를 받았고, 자기 형제 70명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막내 동생 요담은 피신) 불의하게 왕이 되었다. 


      이 때 살아남은 요담 - 하나님은 온전하시다. 신실하시다. 완전하시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 비유

      감람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하나님을 왕으로 삼은 자들 열매맺는 삶을 사는 사람들


      왕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에 대한 그들의 고백- 나의 기름은 하나님가ㅗ 사람을 영화롭게 하니 내가 그것을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자기의 본분- 사명, 자리를 깨닫는 자


      아름다운 열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버리고...

      자기 삶의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다. 

      그것은 스스로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이 삶의 열매..


      가시나무- 내 그늘에 피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불로서 레바논의 백향목(가장 좋은 나무들)을 다 사를 것이다. 

      자기보다 더 나은 자들을 다 없앨 것이다. 


      왕이 되면 숙청-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다 죽이는 전통....


      [삿 9:19-삿 9:20]만일 너희가 오늘날 여룹바알과 그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을 인하여 즐길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를 인하여 즐기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가알 - 갚다. 완수하다. 


      세겜 족속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여 가알이 그 일에 앞장 

      결국 아비멜렉이 가알을 비롯하여 천여명의 마을 사람들을 다 죽여 없앰. 

      자기가 왕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죽여야 하는 자. 


      그러다가 데베스에 가서 그곳에서도 점령하여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한 여인이 맷돌을 위에서 던져 아비멜렉의 두개골이 깨지게 됨. 


      (삿 9:54) 아비멜렉이 자기의 병기 잡은 소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 하노라 소년이 찌르매 그가 곧 죽은지라


      사울의 죽음 - 

      (삼상 31:4)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자기 스스로 왕이 된 자 - 그 자리에서 내려올까 죽을 때까지 염려하는 삶, 편한 날이 없는 삶. 매일 죽고 죽이는 삶, 그러다가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삶. 왕이지만 그 왕에서 내려올까 두려워하며 죽이는 삶을 계속한 삶. 


      (삿 9:20)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결국 기드온의 70명의 아들을 죽이는 데 동참했던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이 서로 죽고 죽일 것이라는 요담의 예언이 완성. 


      제자들- 누가 더 크냐에 관심. 그러다가 정작 가장 큰 자의 죽음에 외면하고 스스로 도망하여 살고자 한 사람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삶. 그것이 삶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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