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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히 11:17-19) 


히브리서 -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주는 말씀. 

당시의 상황- 그들이 당한 처지- 로마의 극심한 핍박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의 조롱과 핍박, 회유로 인해 모이기를 폐하는 무리가 생겨나는 등 기독교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가 생겨난 때에. 

히브리 기자의 요지- 지금 공동체 위기의 원인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다. 상황 때문에 신앙의 어려움이 생긴 것이 아니라 결국 믿음이 없어서다. 


그리고 그 믿음의 정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벨의 믿음에서 부터 시작해서 에녹의 믿음, 노아의 믿음을 거쳐 아브라함에게로 이어집니다. 


금요일날 살펴 보았듯이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제사, 삶의 제사를 드립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그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증거합니다. 에녹의 믿음을 나누면서 우리는 므두셀라의 이름의 의미가 "그가 죽는 날에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나누고 에녹은 그 이름의 게시를 통해 그 이전의 삶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은 정확히 므두셀라가 죽은 그 해에 세상을 심판하셨음을 창세기의 족보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 때에는 아직 이스라엘 공동체가 세워지기 이 전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타락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 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에 순종했고, 그 열매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히 11:6)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 하면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가 아닌 아브라함을 떠올리며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대인들조차도 그들 이스라엘 공동체의 조상으로 노아도 아니고 실질적인 민족의 조상 야곱도 아니고 아브라함을 그 민족의 시조로 삼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에녹보다, 노아보다 훌륭하기때문에 그러한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해서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 쪽의 확신이나 신념,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때론 연약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온전한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는가 하는 믿음의 대 전환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굳센 마음, 확신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의가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도저히 믿지 못했던 자가,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분을 믿지 않을 수 없도록 그를 만들어가실 때에 믿음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이지요.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믿음은 어떤 자가 믿음을 가져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택하시고 지으셔서 그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아브라함의 형제,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 어디서 거주하던 자인가- 갈데아 땅의 우르지방- 바벨론 땅.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우르 지방에 있을 때에 주신 말씀- 그래서 데라와 조카 롯과 사래와 아브라함이 같이 출발. 

그런데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가지 하란에 머물다가 데라가 죽자 그제서야 비로서 가나안 땅으로 출발. 


오히려 아브라함을 택하사 그가 가나안에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믿음과 인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기 까지 모든 상황을 정리하신 분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데라를 먼저 데려가심으로 아비집을 떠나게 하셨고, 롯의 종과 다툼을 일으켜 그와 헤어지게 하셨다. 


  • (히 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약속의 땅에 갔지만 그들의 신분은 외국인, 나그네, 땅을 소유할 수 없다. 그저 빌려서 살 뿐이다. 

아브라함이 소유한 땅은 오직 막벨라 굴- 굉장히 비싼 값을 치루고 그 무덤을 소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그런데 그가, 이삭이, 야곱이 믿음을 갖고 그 땅을 떠나지 않고 거했는가? 

무슨 사정만 생기면 그들은 언제든지 떠나려고 했다. 도착하자 마자 기근이 생기자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은 아식과 형 에서를 피해 라반이 거하고 있는 땅으로.... 


그런데 그것을 돌이켜 다시금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이- 하나님- 출애굽을 통해 그것을 완성하신 하나님 . 

누구의 믿음인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이 아니라 그곳에 거하도록 참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인내와 경륜. 

어떻게 아브라함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가? 그들이 의지하는 애굽보다,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 (히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믿음으로 사래는 이삭을 낳았는가? 


[창 17:15-19]

(창 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창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창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 18:10-15]

(창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창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이 온전히 믿었는? 사라가 온전히 믿었는가? 

그들은 웃엇다. 그런데 그 비웃음을 참 웃음으로 바꾸신 이는 하나님 이시다. 

이것을 통해서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능치 못한 것이 없으신 분- 전능하신 하나님, 내 이성으로, 과학으로, 상식으로, 도저히 안 될 것을 이루신 분. 


[창 21:1-7]

(창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 그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 

(창 21: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 21: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창 21: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비로서 순종하는 아브라함) - 아브라함의 순종을 의로 여길 수 있을까?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 

(창 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창 21: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 21: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누가 믿곗냐만은 그것이 내게 일어났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 경험했다. 하나님은 애굽보다 크고 강하고,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그 분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러면 끝인가? 


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신다. 

왜 시험하실까? 시험은 왜 치나? (그냥 공부하면 좋지 시험은 왜 치나? 공부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약 1:2-4]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가 없어서 생긴 결과 - 이스마엘, 사울- 불순종의 예배)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완성시킨다. 끝마치신다. 

무엇을 통해서? 시험을 통해서 


시험이 없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또 기근이 오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법대로 이루려 하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으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매 번복되는 실패... 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기에... 


  • [히 11:17-19]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 11: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 말씀을 읽다보면 아브라함은 아삭이 안 죽을 줄 알고 드렸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다? 

이 시험의 중심은 두가지

 - 외아들을 드리는 것 (가장 귀한 것, 보물 같은...) -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는 자였고, 이스라엘의 힌놈의 골짜기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치루어졌던 제사를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시험) 

 -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갈등, 충돌.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창 22장 1-2절 :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 지금까지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그 분의 음성을 들음.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3일길을 가고 

5절 - 종들에게 이르되 여기서 기다리라. 


3절에서 먼저 이삭을 누구에게서 분리 - 사라에게서, 이것을 상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솔로몬의 재판 - 너의 믿음을 위해 네 아들을 죽일 수 있는가? 

                      - 엄마는 못한다. 절대 못 가게 하지... 

                      

 그리고 종들에게서 이삭을 분리 - 왜 데리고 가는가? 제사 할 때 필요한 나무 및 제사 기구들을 위해서 

 그런데 이삭을 바칠 때 그들과 분리 - 갈등을 미연에 방지 

-> 외아들을 바치는 시험 


두 번째 -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 사이의 갈등 - 이삭이 죽기까지 풀 수 없는 문제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절)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절)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왜? 이삭을 통하여 자손을, 민족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건 죽이는 척 한 것일까, 정말 죽이려 한 것일까? 


이 납득이 안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99세 때 나타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막혔을 때에 그 분의 전능하심으로 이삭을 주셨던 하나님. 

그 분의 방법을 믿지 못하고 조롱헀던 나를 이삭을 통해 믿게 하시고 진짜 웃음을 주셨던 하나님.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내 모든 이성과 생각과 방법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비로서, 마침내 믿은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십자가의 신앙을 넘어 부활의 신앙을 본 것이다. 


지금까지 우상숭배하며, 늘 머뭇거리고, 비겁하고, 하나님을 비웃으며, 인간적이 방법을 앞세웠던 아브라함이 온전히, 부족함 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그 결과가 여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창 22:12) ...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곳이 모리아산 - 다윗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 그리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곳 


모든 우상의 제사가 사람으로서, 자식을 바침으로서 드려졌던 그 시대에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믿음은 이제 하나님을 믿는 어떤 예배에서도 사람의 제사가 아닌 반대로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일어나게 되는 

오직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 이성과 믿음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믿음 - 임마누엘 칸트, 

스피노자 - 성경 안에서의 모든 이적과 신비를 제거

내 한계에서 못 벗어나는 것 

그런데 신앙은 끊임없이 나를 벗어나는 것 


  • 맹신과 신앙 

맹신은 말씀이 기초가 아니고, 자기의 신념에 근거한 맹목적 믿음- 시작이 나에서 시작하고 말씀이 아닌 다른 권위에의 복종 

신앙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시작 - 영적 분별이 반드시 필요. 


그는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인내와 믿음과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분량에까지 자란 우리 모두의 신앙의 여정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