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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7장, 아이성, 아간, 아골, 끝없는 싸움 

 

  • 출애굽기와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도 같은 구약의 복음을 나타내는 성경입니다. (기독교인의 복음의 핵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역사의 가장 중심-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 초대교회 공동체 - 어떻게 구약을 바라볼 것인가?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출애굽이니 가나안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가? 마르시온- 구약 폐기론자, 미완의 역사, 복음의 관점에서 구약을 재조명....구약의 말씀을 신약의 복음으로 재해석 
  • 특별히 출애굽기가 성도의 거듭남, 애굽으로부터, 죄로부터의 구원, 즉 중생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기록한 사건이라면 여호수아는 성도의 성화, 하나님과 연합하고 동거하는 가나안의 정복이라는 해석이 나타남. .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여리고성 정복을 나누었습니다. 

성화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사탄이 아닌 나 자신입니다. 

성화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내 일부분과 그 분의 일부분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 내 왕으로서 주님을 모시고 실재 그러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삶의 매 순간, 내 삶의 전부를 주님과 같이 하고자 하는 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자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재로는 내 삶의 중심으로, 내 왕으로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만,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만 신앙생활을 통하여 얻으려 합니다. 성형수술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은 내 이름을 바꾸고자 하시는데 우리는 내 잘못된 부분만 고치려 한다고 했습니다. 

내 필요를 채우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 그 분의 필요대로 쓰임받으려 사는 것이 성화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것을 못하게 합니까? 내 자아입니다. 자존심입니다. 

내 마음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담 이후로 하나님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을 대로 살았던 이 자아가 주님을 입으로는 영접했어도 내 마음, 내 중심, 내 삶 전부를 내어놓지를 않습니다


내 마음문울 굳게 닫고, 견고하게 자기의 울타리를 치어 놉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우리 영은 반응하고, 변화하게 되어 있는 것이 진리인데 여리고성처럼 견고하게 울타리를 쳐 놓은 심령 때문에 말씀의 은혜가 임하지 못합니다

돌짝 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씀이 떨어져도 열매맺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주가 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양각 나팔 불고 소리를 내지 말고 성을 돌라는 것은 불평하지 말고 온전히 예배함으로, 찬양함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 입"입니다. 나도 모르게 세상에 훈련되어 있는 입은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훈련되지 못한 감정은 논리도 없고, 규칙도 없고, 죄의 통로이자 사탄의 도구가 됩니다. 


내 말이 내 생각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입은 불처럼 분노에 불붙이고, 낙담에 불붙이고,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은혜 없는 말, 훈련되지 못한 말은 우리를 점점 여리고 성에 갇히게 합니다

그 입을 찬양의 입술로 바꾸고, 예배를 통해 마음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전투 이후에 오늘 나눌 7장의 내용은 우리 자아의 싸움이 얼마나 끊질긴 것인가를 다룹니다. 

중생은 한 번의 사건이지만 성화는 끝없는 싸움입니다. 

여리고성의 전투에 이은 아이, 아간, 아골의 내용을 중심으로 끝없는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나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나누어 봅시다. 


1. 아이성 (황폐한 산) 

  •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7:1) 

- 여리고성 점령 (예수를 그리스도로, 주님으로, 왕으로 모시는 사건) 

- 그런데 아이성은 나를 온전히 내어드리지 못해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1절에만 두번, 7장 전체를 통하여 "온전히 바친"이란 말이 6번이나 반복 

- 우리의 신앙이 주님을 중심에, 두지 못할 때 우리 삶은 다시 황폐한 산이 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이게 된다. 


  • 정탐꾼의 보고 

- 백성이 다 올라가지 말고 2, 3천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3절) 

- 정탐꾼의 보고 후에 생략된 과정이 무엇인가? 여리고성을 칠 때는 먼저 정탐하게 한 후에 객관적 사실을 파악한 후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성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 너무 쉬워 보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 것이다. 신앙생활은 동행이다. 동행은 늘,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하지 못할 때에 실패한다. 아담과 하와가 떨어져 있을 때 뱀이 하와를 꼬셨다. 

- 그들의 피해는 삼십 육명이었다. 함께 했던 군사 3000명, 이스라엘 전체는 약 200만명이다. 그 중의 36명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작은 피해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과 전적으로 동행하지 못하자 그 피해를 보는 시선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아 된지라." (5절) 

- 36명의 사람 때문에 이백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낙망하고 낙심했다. 

-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만 작은 실패에도 내 마음 전체가, 공동체 전체가 절망의 늪으로 빠진다

- 작은 실패이지만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은 절망감이 들 때가 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병- 낙심과 절망이다.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7절) 

- 누구의 한탄인가? 백성의 원망이 아니었다. 여호수아의 원망이다. 모세 앞에서 원망하던 백성들과 똑같은 원망을 한다. 몇명 때문에? 36명 때문에....

- 게다가 무엇이라 원망하는가? 그들이 멸망당한 것처럼 과장한다. 그리고 요단 저쪽. 광야땅을 가리키며 그 땅이 더 좋게 보이는 것이다. 여리고성을 정복한 그들이 36명의 죽음 때문에 광야가 차라리 좋았다고 원망한다.  또 다른 여리고성처럼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다.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9절) 

- 지금 그들이 염려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이름이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던 자들이 그들의 이름의 상함을 두고 어찌하냐고 원망한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10절) 

- 7절의 어찌하여는 (Why me?)이다. 10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어찌하여는 (what are you doing?)이다. 

- 인간의 한탄은 왜 나한테 이러십니까? 항상 나를 내세우는데 하나님은 너 도대체 무엇하고 있느냐?말씀하신다" 

요나에게 질문하는 선원들의 질문과도 같다. 어찌하여...네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느냐? 묻는 것이다. 

- 그러면서 그들의 실패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그들의 실패의 원인을 말씀해 주신다. 

- 원망도 좋다. 그런데 누구에게 원망하는가, 원망의 대상이 중요하다. 백성은 서로 서로를 향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여호수아를 원망한다. 그런 원망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 그런데 모세는, 여호수아는 철저히 하나님께 고한다. 그 문제의 해결자에게 고한다. 

- 하나님은 묻는 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무슨 경로를 통해서건 그 실마리를 주신다. 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주시는 이이기 때문이다. 


2. 아간 (곤란) 

  • 이스라엘이 범죄하여...(11절) 

-지금 범죄한 것은 아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간의 죄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온전히 내 앞에 거룩해야 하는데 (13절) 그 중의 하나가 범죄하여 전체가 거룩을 상실한 것이다. 

  • 제비뽑기 - 요나서에 나온 방법 (유다 지파- 세라 족속- 삽디의 가정 - 아간) 

                    -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그런데 돌아오지 않는다. 끝까지 감춘다. 모두가 그 사람의 연약함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는데 정작 자신만 인정하지 않고 모른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주님이 주인되지 못해서이다. 

                    주님이 주인되시면 내 연약함을 인정케 하신다. "주님 나는 연약합니다. 오늘 하루를 힘겨워 합니다...." 그 찬양의 가사 처럼 우리 본 모습을 알게 됩니다. 

  •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22-23절) 

탐내어 가졌나이다. (21절) 결국 아간을 범죄하게 한것은 탐심이었다. 육체의 정욕, 안목의 자랑이었다. 

은은 속전으로 쓰였기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를 갖고 있다. 요셉은 은 20에(창 37:28-30), 예수님은 은 30(마 26:14-15)에 팔리셨다.

은은 그 밑에 있다는 것은 탐심으로 인해 구속의 은혜보다 자기가 훔친 외투와 금덩이가 구속의 은혜 위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 안에 주님이 온전히 주인되지 못하시면 항상 물질이, 정욕이 예수의 구원보다 위에 가 있는 것이다. 


3. 아골 골짜기 (근심) 

결국 여리고성 다음의 가장 쉬운 성으로 여겨졌던 아이성은 온전히 바쳐지지 않은 신앙으로 황폐한 산이 되었고, 탐심은 일시적 쾌락 뒤에 더 큰 곤란으로 다가왔고,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는 근심을 당하게 되었다. 


성도의 성화는 자아와의 싸움이다. 

그것은 끝없이 계속적으로, 날마다 십자가 앞에 서는 은혜없이는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다. 

무엇이 이 싸움에 실패하게 하는가? 

내 전부가 아닌, 온전치 못한 삶과 예배와 생각이 우리의 삶은 은혜가 아닌 황폐로 이끈다. 탐심이 하늘의 풍요가 아닌 곤란을 당하게 한다. 결국 주님으로 인해 충만치 못한 삶의 결과가 근심이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한 번 은혜 받고 내 자아가 깨졌다고 해서 우리의 자아는 그냥 무너지지 않습니다. 끊질기게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도록 순간마다 우리를 걸고 넘어지며, 우리를 자꾸만 과거에 얽매이게 합니다. 


  • 아이성의 의미는 황폐한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산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장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을 받고, 열두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소입니다. 

아이성의 패배는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에 일어난 패배였습니다. 

신앙인의 실패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일을 벌이다가 일어납니다. 

여호수아는 다른 때와 달리 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로 움직입니다. 저 곳은 쉬운 곳이니 군사 이삼천만 데리고 가면 된다는 말에 묻지 않고 가다가 혼비백산합니다. 


상황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해야 할 우리의 신앙이 황폐해 질때에 실패가 임하고 고통이 임합니다 .


  • 아간은  곤란이라는 뜻입니다. 왜 곤란해졌습니까? 정욕과 탐심때문입니다. 

승리했던 신앙은 결국 탐심으로 인해 곤란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가로채다가 아간은 심판을 당합니다. 

외투 한 벌과 금덩이로 구원의 은혜를 맞바꿉니다. 성령충만했던 초대교회가 아나니아와 삽바라의 정욕과 탐심으로 말미암아 흩어지게 됩니다. 탐심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신앙인의 실패 두번째는 정욕입니다. 우리는 떡으로 사는 삶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삶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시 떡으로 인해 말씀을 버리면 결국 우리의 삶이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탐심은 무엇입니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은 탐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외면하지 않고 공급해 주십니다. 

탐심은 필요치 않은 것을 욕심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탐심과 욕망에 진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36명으로 인해 마음이 녹아집니다. 

작은 손해가, 작은 고통이 자기를 지배합니다. 무너집니다. <->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 <-> 별 거 아닌 것에도 무너지는 것  

 

과거에 집착합니다. 애굽이 더 좋았더라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 광야가 더 좋았더라고 불평합니다. 

탐심의 결과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은 언제나 가장 크고 과거는 언제나 살기 좋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신앙은 현실을 이기라는데 불신앙은 현실이 항상 가장 최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골 골짜기 곤경과 고통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우리의 잘못을 가리워주시는 분 

그런데 때론 무서우리만큼 우리의 연약함을 찌르실 때가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 네가 사모하냐? 

사마리아 여인- 가서 남편을 데려오라... 숨기지 말고 오픈해라. 


왜? 아픈 데를 찌르실까? 고치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사한테 가면 진찰을 한다. 어디 아프세요? 

나 안아파요.... 그런 환자 없다. 왜? 고치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에는 그런 사람 천지이다. 

요즘 기도 제목이 뭐세요? 

특별한 거 없어요.. 

그러면서 아프다고, 연약하다고 드러내면 오히려 이상하게 본다. 

주님은 난 병자들을 위해 왔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병자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우리의 연약함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늘 내가 주인되어 살고, 물질에 한없이 약하고, 작은 실패에도 인생이 흔들리는 소심쟁이들이다.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고치시기 원하신다. 이제 그렇게 살지 말고 내 안에서 함께 살자고 한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