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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교회 훌 교회 (출애굽기 17장 9-18절)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17장- 아멜렉과의 전투 

아멜렉 과의 전투를 성경은 굉장히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담고 표현합니다.  

(출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출 17: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호와 닛시) 


그리고 이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 전반에 걸쳐서 아말렉  족속과 싸우시고 또한 싸우기를 명하십니다. 

  • [삼상 15:2-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족속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라고 정확하게 시점을 짚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하자마자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했던 아말렉 족속에 대한 진노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시점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애굽 하자 마자- 거듭나자 마자, 구원 받자 마자 

출 17장 아말렉과의 전쟁에 앞선 사건- 르비딤에서 반석을 치라 - 반석을 치라-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하는 사건

그 구원의 은혜를 맛보자 마자 들어닥친 적 - 아말렉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사울왕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삼상 15:8-9]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삼상 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왜 버림받았나? 아말렉을 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마우리 예배를 드려도 아말렉을 진멸시키지 못하면 실패다! 


  • 이 사건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과 아말렉과의 싸움이 게속되다가 이 전쟁은 바벨론 포로시기의 에스더 왕비때에 모르드게와 하만을 통해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바벨론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던 때. 이스라엘 사울왕의 후손이었던 모르드개와 아말렉왕 아각의 후손이었던 하만이 등장합니다. 왕의 모든 대신들이 하만에게 꿇어 절 하지만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자  하만은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죽이려 합니다. .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일어났던 왕후 에스더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과 모르드개는 생명을 얻게 되고, 하만과 아말렉 족속은 몰락하게 됩니다. 


이것이 출애굽시대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 이어졌던 이스라엘과 아멜렉과의 긴 악연입니다. 


아말렉은 끊질기게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하고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철저히 아말렉을 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도대체 아말렉이 무엇이기에 그럴까요? 

[창 36:9]세일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창 36:10)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창 36:11)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

(창 36:12)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이 족보에서 보면 아멜렉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첩 딤나를 통해 낳은 자녀입니다. 즉 에서의 후예요, 에돔 족속의 조상입니다. 

에서는 잘 알다시피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육신의 자녀, 정욕의 자녀를 가리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정욕의 팥죽 한 그릇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성경은 끊임없이 증거합니다. 


  • [빌 3:17-20]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이후에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보시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40일을 광야가운데서 시험당하시는 예수께 사탄의 첫 번째 시험 -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예수님의 말씀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즉 떡의 시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시험 - 아멜렉의 시험이다. 


[약 4:1-약 4:3]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약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다시 출애굽기로 돌아가서 특별히 출애굽기 10장에서부터의 내용은 이 육체적 욕망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무력화시키는 지가 잘 나옵니다.  14장에 가면 홍해를 건너는 위대한 사건이 나옵니다. 15장에 가면 모세와 미리암, 이스라엘 온 백성이 하나님이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15장의 끝에 가면 마라의 쓴 물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 사흘만에 물이 떨어지자 금방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며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나무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육신적으로 목마를 적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평이 아니라 은혜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가? 

우리가 연약할 적에 우리는 불평을 택하느냐, 하나님께 부르짖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느냐? 환경을 바라보고 불평하고 절망할 것인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똑같이 힘듭니다. 

우리 모두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할 때에 불평하고 넘어지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가 다 힘들어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분께서 살 길을 주십니다. 

치료하는 여호와가 우리의 연약함을 치료하십니다. 

마라가 변하여 엘림이라는 큰 나무가 되게 하십니다. 


16장에 들어가면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합니다.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물이 해결되니까 이젠 양식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물만 먹으면 살 것 같았는데 이젠 물이 해결되니까 양식을 달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욕심이 그렇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이젠 걱정이 없고 여한이 없다고 하다가도 한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것에 욕심을 부립니다. 


백성은 또 원망하고 모세는 또 기도합니다. 

어쩌면 출애굽기의 반복되는 주제어같기도 합니다. 

"똑같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에 백성은 불평하고 모세는 부르짖었더라."

여러분, 여러분은 문제가 생겼을 때에 원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부르짖는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만나를 내리십니다. 만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말씀이 이스라엘을 먹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육신과 말씀의 싸움, 현실과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아말렉과의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 신앙생활은 우리의 정욕과 탐욕을 없애는 전쟁입니다. 

왜 기독교가 타락했는가? 

신앙생활, 경건생활을 통해 정욕을 없애는 훈련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욕을 내세우고 정욕을 채우는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기 위해 아말렉, 육체적 정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주님을 사용하는 것이 타락입니다. 

가지려고만 하고, 빼앗으려고만 하고, 즐기려고만 하는 생활은 다름아닌 아말렉이 되는 과정입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내려놓는 자가 되어야 하고, 십자가를 지고 낮은 곳을 향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맞는 길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육신이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성령을 통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사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부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요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내 이름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이냐? 

바로 내 정욕과 탐욕, 내 쾌락, 내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 사명을 이루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그 정욕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내 삶을 통치하게 하는 것은 기도 밖엔 없습니다. 

모세가 말합니다.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나는 하나님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싸운 것은 여호수아이지만 모세이 팔이 내려가면 밀리고 후퇴하다가 모세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할 때마다 진격하고 승리했습니다. 신앙인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여호수아처럼 열성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성공의 열쇠는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는 정말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산꼭대기는 어디 입니까? 

하나님과 대면하는 내 은밀한 공간, 기도의 처소입니다. 

여러분이 삶 속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자녀가, 남편이, 아내가 삶에서 온전한 열매를 맺히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가정의 모세가 되어서 잊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집니다.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불평하면 넘어지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런데 기도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노동입니다. 육체적으로도 노동이고 정신적으로도 노동입니다. 급한데 앉아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훈련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도 손을 들고 기도하니까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목사가 피곤해지면 성도들이 고생합니다 .

가정에서 기도의 사람이 피곤해지면 식구들이 고생합니다. 


그 때 모세의 손을 붙잡아 준 것이 아론과 훌이었습니다. 

아론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의 형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실 때에 함께 가게 하신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


교회에도, 가정에도 이런 동역자가 있으면 피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론은 동역자이고 형이라고 쳐도 은 누구입니까? 


[대상 2:18-20]헤스론의 아들 갈렙이 그 아내 아수바와 여리옷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그 낳은 아들은 예셀과 소밥과 아르돈이며 아수바가 죽은 후에 갈렙이 또 에브랏에게 장가 들었더니 에브랏이 그로 말미암아 훌을 낳았고 훌은 우리를 낳았고 우리는 브살렐을 낳았더라

이 족보를 보면 홀을 중심으로 두 명의 눈에 띄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홀의 아버지는 갈렙이요, 홀의 손자는 광야에서 성막짓는 책임자였던 브살렐입니다. 

 

세 명의 공통점은 이들이 성령에 충만한 자요 섬기는 일에 특출난 자였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보다 연장자요 여호수아와 똑같은 공로자였지만 여호수아가 모세 이후의 지도자가 되자 철저히 궂은 일을 도맡아 어려운 일에 자원하는 돕는 자가 됩니다. 

브살렐은 하나님이 주신 영으로 광야에서 성막 짓는 책임자가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이 명한 대로 성막을 짓습니다. 

홀과 그 가족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가장 잘 섬기는 가족들이었습니다.  


이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아까 초두에 아말렉은 누구의 자손이라고 했습니까? 맞습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아들입니다. 그 본문을 다시 보면 엘리바스의 아들 중에 

[창 36:9]세일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창 36:10)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창 36:11)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

(창 36:12)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대상 1:36)엘리바스의 아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비와 가담과 그나스와 딤나와 아말렉이요

(민 32:12) 다만 그나스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여러 학자들은 갈렙이 바로 에서의 후손이었지만 그는 모세와 함께 산에 올라 기도하면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장자지파가 되는 유다지파에 소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적에 유다지파보다도 먼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가장 먼저 땅을 차지하는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잃어버린 에서의 장자권을, 그 뒤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시기하고 괴롭히면서 믿음에서 넘어뜨리고자 하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또 다른 에서의 후손이었던 갈렙의 아들 훌은 모세와 함께 산에 올라가 함께 기도하고 중보함으로서 육신을 이기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 에서가 잃어버린 장자권을 회복하고 유다 지파 중에서도 가장 먼저된 자가 된 것입니다. 

 

  •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승리합니까? 

물론 매일 매일의 삶을 열심히, 성실히 살아야겠지만 그 성패가 기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이미 승리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가 함께 한 것입니다. 

아무리 규모가 크고 재정이 풍부해도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아말렉이 되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목회하면서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은 매일 같이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제 목회의 가장 큰 사명 역시 성도들의 이름을 빼어 놓지 않고 그들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목사로서 다른 교회보다 더 잘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것. 성도를 위해 빼놓지 빼놓지 않고 기도하는 목사로 훈련받은 자고 소망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고아와 같이 내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돌봄을 받는 것,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는 그 중보를 통해 삶의 터전에서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니까 알아달라고 생색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능력을 인정하건 안하건 제가 받은 목회적 소명은 성도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기도가 성도들 각자의 가정에서 여러분들이 드리는 기도의 본보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로 부름 받은 저는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기도를 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의 영적인 가장으로 부름받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산 꼭대기에 올라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그 기도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제가 기도를 쉬지 않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영적인 리더는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많아지고 구제 문제니 행정적 문제들이 많아지니 사도들이 기도하지 못합니다.  사도들이 기도하지 못하니까 더욱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합심해서 세운 것이 일곱집사입니다. 사도들이 행정처리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다른 일 하느라 기도못하니까 기도하도록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우리 로고스 교회 14주년 - 나이로 치면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것 -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청년의 믿음으로 


요한일서에서 보면 청년의 믿음은 악한 자를 이기는 믿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믿음 

그런데 동시에 청년이 가장 약한 것 - 세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무엇으로 그것을 이기는가? 기도로.. 오직 기도로... 


정욕으로 신앙을 무너뜨리는 에서의 후손 아말렉이 될 것인가? 

기도함으로 그 장자권을 되찾은 갈렙과 같은, 훌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