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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리더십 (요한복음 15:10-16) 


저는 이른바 할아버지 때부터 비록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통해 이어졌지만 3대째 목사집안에서 태어났고 알다시피 3형제가 다 목사입니다. 저의 장인어른도 목사요 그리고 형수도, 제 아내도 모두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예전같으면 이것이 자랑이요 자부심이겠지만 현재의 사정을 보면 이것은 자랑이기 이전에 큰 책임감이요, 때론 짐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누가 모래도 한국 교회의 쇠퇴기이며 위기입니다. 그래서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도 정직하고 바른 목회자가 되는 것이 소박하지만 절실한 저의 꿈이자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훈- 정심 - 바른 마음.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큰 붓으로 써서 식구들에게 나누어 준 말.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매년 새학기가 시작되면 이런 저런 것을 조사하면서 집안의 가훈이 무엇인가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제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가훈이 있는 집이 한 둘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습니다. 


공동체의 정체성, 규율, 공통 가치관... -> 사라져 버렸다. 왜? 개인주의, 물질주의, 가족의 가훈도, 교회의 비전도 명확치가 않다. 

바른 목사, 바른 교회, 바른 목회....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늘 꿈꾸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었을 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울신대 이정효 교수님이 하시는 목회자 성경학교에 들어가 1년정도 함께 성경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저희 어머니의 스승이기도 하시면서 성결교에서 어머니와 같이 가장 먼저 목사 안수를 받으신 분입니다. 고대 경제학과를 나와서 잘 나가던 여성학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신학을 해서 교수까지 되었는데 목사안수를 못받고 평생 전도사로 있다가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곧 은퇴를 하셨습니다. 은퇴하고 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목회자 성경공부를 시켰는데 평생 자신을 구박하던 남자 목사님들을 은퇴하고 돌아가실때까지 바로 세우는 것이 자기 사명이라 하셨습니다. 


그 분이 요한복음 10장11-14절, 목자와 삯꾼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요 10:11-1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나는 여러분들이 선한 목자가 되었으면 하고 날마다 기도한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을 보아 오면서 그것이 너무 큰 기대구나 하는 실망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여전히 기도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분들에게 그나마 바라보 싶은 것이 있다면 삯꾼이 되더라도 정직한 삯꾼이 되기를 바란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삯꾼이지만 그 삯을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게으른 자는 그 삯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사회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도들의 헌금으로 살아가는 목회자들이 그 받는 삯의 가치보다도 못하면서 목회를 한다면 그건 정말 나쁜 목사다. 삯꾼이 되려면 그 삯의 값이라도 제대로 하는 목사가되어라...


로고스교회 담임이 되고 나서 이 말을 다시 한번 새기면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정직한 목사가 되게 해주세요. 제가 받는 삯의 값이라도 제대로 일하는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 

물론 저는 그 삯이 교회에서 받는 페이를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너 지금 얼마받냐?" 

그 때 제가 받던 페이가 2000불이었습니다. 그래서 "2000불 받아요..." 

그런데 그렇게 대답했는데 하나님께서 "또?" 하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또요? 가끔 성도님들이 선물도 주시고, 밥도 사 주시고....

그러는데 하나님께서 또?하고 묻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기도 중의 음성이 내가 죽어 너를 샀다...너의 삯은 내 피다...


그러면서 정직한 삯꾼이 되라는 말씀은 결국 예수의 피값에 걸맞는 가치를 지닌 목사가 되어라는 말로서 다가왔습니다. 


  •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목사이고 바른 목회인가? 지금까지도 늘 저를 기도하게 만드는 질문..


그러면서 2015년 교회의 표어를 위해 기도하는 중 오병이어 사건 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지신 한 말씀, "너희가 주어라"는 말씀을 통해 저는 구약의 리더들과는 다른 예수님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리더들은 철저히 구별된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들은 따로 기름부음을 통해 세워진 리더들이었고 백성들은 오직 그 리더에 의존했습니다. 리더가 바로 서면 그 공동체는 건강했고 리더가 타락하면 그 공동체 전체가 타락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러 왕들이 황금송아지에 절하며 자기 방법, 자기 만족을 위한 예배를 드리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멸망때가지 계속적인 타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공동체에서 리더의 영성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리더만 좋다고 그 공동체 모두가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리더십의 문제는 모세가, 엘리야가, 기드온이, 다윗이 아무리 훌륭한 영성과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도 그들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변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서 얼굴의 빛에 광체가 났어도 백성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모세에게만 하나님과 관계하라고 합니다 

제사장만 거룩하면 이스라엘은 오케이였습니다. 

단지 그 제사장이 이렇게 하라면 따랐지만 그렇다고 백성들의 삶이 모두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다수의 교회의 모습이 여전히 그런 구약의 모델을 따르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의 영성이 교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목사만 쳐다보고 신앙생활 합니다. 

목사가 기도많이 하면 성도의 삶에도 활력이 넘치고 말씀 잘 증거하면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목사를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물론 지금은 엣날보다 못하지만 권사님들이나 많은 성도님들도 여전히 목사의 말을 하나님처럼 여겼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말씀을 전해주는 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듣는 것은 좋은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운동경기에 비유하면 선수는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만 교회라는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고 성도들은 관중이 되는, 그래서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보는 중에 목회자만 북 치고 장구치고 재주를 넘는 경기를 합니다. 관중들은 다만 선수가 잘하면 박수치고 못하면 얼굴을 찌푸립니다. 성도들은 그 경기에 참여조차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전투, 기도의 훈련, 말씀의 훈련, 참여하라면 바쁘고, 무관심하고, 그건 목사가 잘 해서 우리를 보호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목자는 양을 훈련시키는 자입니다. 선수는 성도이지 목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구약의 기름부음을 받는 리더들과 달랐던 것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뽑으시고 처음부터 그들로 하여금 짝지어 나가 복음을 전하게 하고, 귀신을 쫓게 하고, 세례를 주고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 때는 장정만 오천 명 모인 그 무리를 바라보며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주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빈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빈말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재로 그들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부활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것도 "내 양을 먹이라"입니다. 


구약의 리더들...구별된 자들, 세습된 자들, 레위인, 제사장... 다 세습되고 구별된 자들..사회의 엘리트들.... 

그런데 예수님 이후 초대교회- 어부들, 세리, 창기, 이방인... 갈릴리 어부들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됨... 

무엇으로? 예수로, 성령으로... 


자, 교인 수가 많아지면서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 위해서 일곱집사를 세워 행정을 담당하게 합니다. 이것이 원래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죽은 장면을 보면, 빌립이 에티오피아 사람을 전도하는 것을 보면 집사들은 행정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합니다. 사도와 집사가 결국 같은 일을 합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정신과도 부합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만인 제사장입니다. 성도와 성직자의 구분이 없어졌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로 받은 성직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 

어느 때 부턴가 가톨릭 못지 않은 성직자의 권위, 목사의 권위를 강조하기 시작. 

물론 목사는 영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영권은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대언하는가에서 나오는 것이다. 영권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부여 받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람이 세워줄 수도 없고 억지로 세워서도 안된다. 많은 교회의 목사님들이 넘치는 권위에 치여서 망가지고 정신을 잃고 타락합니다. 그리고 믿었던 목사가 타락하는 것을 보는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떠납니다. 


  •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바로 "친구"라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예수 내 친구, 친구되기 원합니다. 찬양을 부르기도 합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의 권위를 넘보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권위에 제동을 걸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문등병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내 친구라 명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친구라 부르십니다. 

물론 이 친구라는 표현은 존재론적 동등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을 친구로 부르신 것은 비밀이 없게 하리라. 비밀을 공유한다는 말입니다. 

종은 하나님의 생각을 모르지만 친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은 아무에게나 그냥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은 14절 -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우리는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명령대로 행하는 자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명령대로 행하는 자는 종이요, 부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명령대로 행하는 자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말씀을 지킬 때에, 살아갈 때에 비로서 체험되기 때문입니다. 

서구- 앎: Understanding 

히브리 - Living, Experience.


그래서 예수님도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했다. 거했다는 것은 그의 사랑 가운데 살았다. 그의 사랑과 함께 했다,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너희도 내 사랑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내 계명을 지켜라....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랑 안에 살아가는 것이고, 세상에 요동하지 않는 자유함을 얻는 것이고 주님의 친구인 것입니다. 

사탄은,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내 마음대로 살아서 하나님과 같아지라고 유혹하지만 주님은 그 말씀 안에 거하면서 주님의 친구가 되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친구되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위해 죽었다. 너희도 내 친구가 되면 복음을 위해,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가 된다. 사랑의 화신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로고스 교회의 목사로서 여러분들이 내게 주신 삯, 주님이 날 사신 피의 삯의 값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적, 삶의 모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것이고, 바르고 정직한 목사가 되고자 할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주님의 친구가 되고자 힘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동시에 저는 여러분들이 주님의 친구가 되도록 돕는 좋은 코치가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배우고 경험하고 터득한 모든 신앙의, 신학적인 것들을 숨김없이 나누고, 가르치고, 토론할 것입니다. 제가 그것에 익숙해지기를 애쓰듯 여러분들도 저를통해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경험하고, 살아있는 말씀과 함께하는 그래서 예수의 사랑을 Understanding이 아닌 Living with Love, Experience Jesus every moment할 수 있는 주님의 친구가 되기를 기도하고 실천할 것입니다. 


요한- 구약의 인물 중에 다윗을 제일 좋아한다면 신약의 인물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사도요한입니다. 

 - 베드로와 늘 경쟁 관계에 있던 수제자. 가장 어리지만 예수와 가장 가까웠던...부요하고, 

그런데 예수꼐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 내 어머니라... 아들이라.. 육신의 어머니를 맡기심.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큰 리더가 되고 선교하고, 순교하는데... 자신은 열두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가장 오래까지 살아남아 밧모섬에서 자연사한 제자... 

그러나 그가 요한 복음에서 자신을 가리켜 늘 지칭하는 말- 예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 

가장 많은 비밀을 공유... 계시록.. 가장 깊은 신앙의 성숙- 요한서신...

가장 깊은 예수와의 관계- 요한 복음


저에게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제게 맡기신 마리아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의지하고 믿고, 이제 제 설교 지긋지긋하다 재심임 묻자 하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꿈꾸며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는 것입니다. 

어떤 누구보다 믿음의 비밀을 깨달아가며,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 그런 성도를 꿈꾸시며 날마다 주님과, 저와 성도들과 함께 거하시며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