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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마지막과 아비삭 (열왕기상 1:1-4절) 


오늘은 그동안 함께 나누었던 다윗의 삶의 마지막의 삶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다윗의 마지막은 복잡하고 신앙의 신비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해석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습니다. 

사무엘하에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다윗의 삶은 열왕기상 첫부분까지 길게 늘여집니다. 


다윗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왕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모든 신앙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신앙인입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한 자요, 하나님과 즐거이 교제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우시면서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합니다. 

다윗의 삶을 묵상하면서 저는 다윗은 축복 받은 후에도 타락하지 않은 영성, 가나안에 들어가도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은 신앙이라고 강조를 하면서 그의 삶의 발자취를 추적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평정하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22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무엘하 22장의 다윗의 시는 수많은 찬양의 가사로서 지금도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22장은 다 읽을 수 없지만 23장의 다윗의 마지막 말은 한번 같이 읽어 보고 싶습니다. 


[삼하 23:1-삼하 23:7]

(삼하 23: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삼하 23: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삼하 23: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삼하 23: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삼하 23: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삼하 23: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삼하 23: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그는 삶으로 시편 1편에서 말하고 있는 의인의 삶을 보여 주었고, 반대로 그를 대적하는 악인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의 삶이 끝났으면 좋겠지만 사무엘하는, 그리고 다윗의 삶도 24장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드러내며 다윗의 마지막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24장에는 대개 사람들이 말할 때 밧세바를 범한 사건과 함께 다윗의 삶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죄로 여기는 "다윗의 인구조사사건"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왜 ‘인구조사’가 그렇게 큰 죄가 될까? 사실, 모세는 아무런 문제없이 인구 조사를 2번이나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모세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지시로 이루어 진 것이지만, 다윗은 것은 스스로 한 것으로 또한 그 마음의 동기는 ‘교만과 자기 과시’였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죽음을 앞두고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 자기의 업적을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출 30: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율법에 의하면 반드시 인구 조사를 할 때, 그 속전을 성소에 놓도록 지시합니다. 이는 그 백성의 생명이 ‘하나님의 것’임을 밝히는 행위것이었지만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하면서, 이 백성이 ‘내 백성’이라는 생각으로 인구 조사를 한 것입니다. 

고대에서 ‘인구조사’는 한마디로 왕권을 강화하고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백성들을 압제하고, 공안 통치를 하는데 사용되는 매우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한 나라의 장수인 요압이 이를 모를리가 없었고, 다윗은 소위 말해서 ‘열방의 왕’ 처럼 되어가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를 거스리는 행동이라고 보고, 반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구조사를 감행해서 10개월이나 걸려 이 사업을 진행했으며 (8절), 이스라엘에 80만, 유다에 50만의 장정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다윗의 마지막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목회자의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유혹을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움을 받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수많은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자기 인생의 업적으로 생각하고 무언가 자취를 남기려고 하다가 오히려 타락하고, 뼈아픈 징계와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죽었을 때에도 다윗은 사울을 추모하며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추모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죽어갈 때, 다윗은 백성들의 애도는 고사하고 집안은 다윗의 후계자를 두고 온통 싸움판이었고, 신하들, 그의 아들 중 암논과 압살롬 바로 밑의 아도니야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다윗의 충신이었던 요압 장군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아비아달의 편에 서서 다윗을 배신합니다. 


다윗도 이렇게 엉망이 되는 상황에 한 몫 하게 되는데 인구조사와 더불어 영왕기상 2장에 보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데 하나 납득하지 못할 유언을 하게 되는데 

[왕상 2:8-9]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자신을 저주했던 스므이를 죽이라고 하면서 증오심을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압살롬에게 쫓겨 가면서 다윗은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서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그를 용서했는데, 죽음 앞에서 옹졸한 뒷끝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의 최후는 그의 평생의 신앙이나 발자취에 비해 초라하고 비극적입니다. 

시므이에 대한 복수를 끝으로 그의 죽음의 기사가 열왕기상 2장에 단 한줄로 표현됩니다. 


(왕상 2:10)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


어떤 백성들의 애도도, 식구들의 슬픔도 없이 그저 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럼 다윗의 삶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고 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죄인임을 드러내보고 죽는 것일까? 


우리는 사무엘하 24장 가장 끝 부분에 나오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의 다윗의 제사와 오늘 우리가 읽은 아비삭을 통해서 다윗의 죽음으로 가려진 두가지 신비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1. 오르난의 타작마당 


인구조사를 마치자 마자 다윗은 자기의 범죄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삼하 24:10)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보내어 세가지 선택권을 줍니다. 

 ‘갓’은 누구인가? 바로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다윗에게 유다 광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 준 사람입니다. (삼상 22 : 1 - 5) 

13절에 보니까 "7년간의 기근"이나 "석달 동안의 도망"이나 "사흘 동안의 전염병"..


당신 같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어떤 학자는 평소의 다윗이었으면 당연히 2번을 선택했을 것이라 말하고 하나님이 원하신 것도 그것이라 대답합니다. 

왜 그럴까요? 

1, 3번은 그 피해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는 것이고, 2번은 다윗 혼자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년간의 기근은 물질적인 기근도 되지만 영적 기근도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없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에게 그러한 기근보다 더 고통스러운 때는 없습니다. 그러나 도망의 때에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을 맛보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도망하면 다윗은 사울을 떠올리고, 가장 최근에는 압살롬의 죽음을 떠올리며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다윗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고 여호와의 손에 빠지길 원합니다."하면서 하나님의 손에 의탁합니다 . 정확한 기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 전염병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이 죽게 됩니다.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진심으로 뉘우치며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하면서 회개합니다. 


이 때 회개함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드린 제사가 바로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서의 제사입니다. 

그는 자기의 값을 치루어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그 예배가 왜 중요한 의미를 같습니까?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를 잇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하 3: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다윗이 교만하여져서 죄를 짓고 심판을 받았으나 그 죄를 용서받은 곳은 바로 모리아산 위에서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과 죄성을 너무나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교제를 회복시켜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타락과 회복을 경험한 다윗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리아산 위에서 다윗은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한 동시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셨다. 


그리고 모리아산,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던 그곳은 예수의 십자가가 달리신 골고다의 언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들 독생자를 바치고 온전한 헌신을 드린 그 장소가 다윗에게는 죽음 앞에 모든 교만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린 성전이 되고 예수는 그곳에서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2. 아비삭 

(왕상 1: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고등학교 때에 쓴 시 - 행복 "공중전화 카드, 지하철표, 지갑에 만원" 

그 때에 행복은 친구....지갑에 만원 짜리 한 장 가지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어디든 가면 가장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

그런데 지금, 공중전화가 아니라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크레딧 카드를 가지고 다녀도 젊었을 때에 꿈꾸던 행복을 느낄 수가 없다. 


이불- 나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나를 가리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의지처, 돈, 명예, 권력.....

그런데 나이가 드니 그런 것들을 가져도 행복이 없다. 

젊었을 때는 바깥을 덮으면 따뜻했는데, 내 외적인 조건들을 갖추면 행복했는데, 나이가 드니 안이 시리니까 바깥이 아무리 포장되어도 따뜻함을 느낄수 없다. 돈이 있어도 사고 싶은 것이 없고, 음식을 먹어도 맛난 것이 없다. 안이 공허하니까...


세상적인 해결책 - 어린 여자를 품어라. 

왕의 기력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세상적 방법... 

그런데 다윗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 


왕이 늙어가자 신하도 떠나고 왕도 떠나고, 사랑하던 밧세바도, 영적으로 의지하던 나단 선지자도  함께 거하지 않고 솔로몬을 왕세워 줄 것 만을 요구하는데.... 그 자리에 함께 거하던 자- 아비삭... 


아비삭의 의미는 세상의 힘을 잃은 다윗에게 진정한 사귐의 의미를 주는, 진정한 교제를 알게 하는 다윗의 인생에 다 떠나가도 단 하나 남은 진정한 사람과의 교제였다.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 것- 아비삭에게도 아무런 이익이 없는 만남이다. 

왜? 아이를 낳아야 왕의 자리를 기대할 수 있기에... 

지금 다윗을 떠난 사람들 

아도니야- 왜? 다윗이 죽어야 자기가 왕이 되니까.....기다리다 기다리다 먼저 스스로 왕이라고 선포

요압과 아비나달- 새로운 왕을 위해 다윗을 떠남...


다윗의 측근 - 밧세바와 나단의 기대-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라....


다윗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그는 초라한 늙은이일 뿐이다. 그와 함께 하는 것은 오직 수넴 여인 아비삭....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 

왕이기 때문에 모여든 사람들.....

왕이 아니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들.... 

왕 앞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려는 제자들,.... 왕이 아니기 때문에 배반하고 저주하는 제자들.... 


그 때에 함께 있었던 자 -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무덤에 안치할 때도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다른 여인들과 함께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무덤에 갈 때도...

제자들이 다 떠난 자리를 주님을 바라보며 함께 있었던 자...

부활의 첫 증인... 


사람들이 다 떠난 자리를 홀로 지키고 있었던 아비삭- 진정한 다윗의 사람 


아바아달이 솔로몬에게 쫓겨날 때에 유일하게 원했던 것 - 아비삭 


솔로몬의 아가서-신랑과 신부의 사랑스런 연애의 글 

기독교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었던 책- 왜?

어떻게 성경에 이런 음탕한 표현들을 넣을 수 있을까? 


아가서의 주인공- 왕과 술람미 여인

술람미의 지명이 바로 수넴여인... 학자들은 이 술람미 여인이 바로 다윗의 마지막 사랑 아비삭이라 주장... 


솔로몬은 이 아가서를 이름 붙이기를 'Song of songs', 즉 노래 중의 노래, 최고의 노래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왕과 술람미 여인이 누굴까? 하면서 많은 역사가들이나 성서 학자들은 다윗이 말년에 얻은 마지막 부인인 아비삭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수넴여인으로서 아비삭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되며 밧세바가 다윗을 찾아가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하는 장면에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즉 다윗과 솔로몬의 왕위 계승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 목격한 여인으로 열왕기상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술람미 여인은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왕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오른 솔로몬 자신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잘 알다시피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통해서 얻은 자녀입니다. 그로 인해 첫번째 얻은 아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고, 또한 이전에 이미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계략에 의해 죽게 했습니다. 즉, 솔로몬의 탄생엔 이미 다윗의 욕정으로 말미암은 죄없는 두 명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거의 흠없는 삶을 살았던 다윗에게 어쩌면 솔로몬 이라는 자식은 자신의 죄악을 떠올리게 하는 아킬레스 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끝까지 지극히 사랑했고,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는 아름다운 영예를 얻게 됩니다. 


마치 예루살렘에 거하는 많은 여인들 중에서 끼이지 못하고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가지며 포도원을 돌보는 술람미 여인의 모습은 왕실 내에서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죄악의 그림자 아래에서 열등의식을 가지며 자라왔던 솔로몬의 자화상이기도 한 듯 합니다. 


그런데도 왕은 술람미 여인을 사랑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솔로몬을 사랑하듯, 하나님께서 많은 다윗의 자녀 중에서 하필이면 죄악의 흔적이 가득한 솔로몬을 택하듯 그 분이 술람미 여인과 입맞추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허물많은 나에게 입맞추며 연합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말년은 그의 일생의 업적과 신앙의 내력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왕권이 흐려지는 그에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집안은 갈라지고 평생의 동료요 충신들은 흩어집니다. 십자가 앞에서 홀로 남으신 그리스도의 마지막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홀로된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비로서 아브라함과 예수의 다리를 잇는, 솔로몬의 성전의 터전이 되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홀로남은 그에게 아비삭과의 진정한 사랑의 여정을 나눕니다.

그는 모든 그의 업적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참 인간으로, 참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