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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반전 (사무엘하 7장) 


  • 다윗의 영성 - 축복 받은 이후에도 변질 되지 않는 신앙, 넘어지지 않는 신앙, 타락하지 않은 믿음


1) 여부스 족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탈환하라! 

-> 내 삶의 중심을 하나님이 왕되시게 하라!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전- 절뚝발이 신앙, 맹인 신앙...신앙의 불균형과 불완전함

                                  -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심을 받았지만 실재적으로 왕 역할을 하지 못함.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예배하지만 실재로는 내가 주인 되는 삶. 왜? 중심을 여부스족이 다스리고 있기 떄문에 ... 


2) 법궤를 중앙에...

앗사의 죽음 -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궤를 운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대로 법궤를 운반. 

레위인들이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어깨 위에 짊어지고 옮기도록...(나의 멍에를 지고 내게 배우라!)  

함께 걸어가며 춤을 추는 다윗

cf) 웃사나 홉니와 비느하스- 법궤를 신령한 사물, 부적 취급...

수레에 실어 나르거나... 전쟁에 패하니까 가져가면 이길까.... 


법궤- 하나님의 현존-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앞에 성결하지 못하면 두려워 떪. 

춤- 함께 거니는 것. 


왜 그리스도인이 타락하는가? 하나님의 현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을까? 

어떻게 죄를 가리울 수 있을까? 

어떻게 불순종할 수 있을까? 


믿음의 실패- 하나님의 현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되었음에도 타락하지 않았던 이유-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의 현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는 항상 하나님의 현존성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가? 

내가 기도할 때만, 예배할 때만, 찬양할 때만....의식하지 않는가? 


우리를 성결하게 하고, 믿음 안에 거하게 하고, 항상 믿음의 시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 함께 거하기 위해... 

임마누엘 하나님-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7장의 시작 - 

(삼하 7: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

- 샬롬- 평강의 상태 -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복의 상태 

골리앗도 죽고, 사울도 죽고, 블레셋도 무찔르고....왕으로- 궁에서- 평안이 살 때...

the king was settled in his place and Lord had given him rest from all his enemies around him 


그의 자리에 안착되자- 어떻게? 그 중심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현존하심 가운데 그가 확고하게 거했을 때에임하는 것- 샬롬- 평안. 


1. 첫번째 반전 - 다윗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함정 - 영적 게으름. 향략의 유혹, 쉬고 싶은 안도감... 이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안이 임했을 때에 다윗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 - 

하나님의 집을 짓자! 

예루살렘을 봉헌한 그가, 성전의 중심에 언약궤를 가지고 온 그가... 그의 때가 평안했을 때에 또 생각한 것 - 하나님의 집을 짓자. 

(삼하 7: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늘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신앙의 하나님이 아니라 부모에게 효도하듯 (왜? 연예인들이 성공해서 가장 먼저 하는 것- 부모님 집 사드리는 것..) 하나님을 구체적인 인격적인 존재로서 관계하고 있다. 

그에게 하나님은 멀리 있는 신이 아니다. 기도의 대상, 예배의 대상만이 아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그에게 사랑을 주고, 그의 사랑을 기뻐하시는 실재다. 목자요 부모요 친구다. 


2. 두 번째 반전 - 나단.. 

다윗은 그의 결심을 나단을 불러 이야기 한다. 

이 말을 들은 나단은 얼마나 기뻤을까? 


대부분의 목회자나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고자 하여 도움을 구하며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생애 대부분을 보낸다. 

"나를 위해, 병을 위해, 자녀를 위해, 직장을 위해,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 

그런 수많은 기도 부탁 가운데 그 결과를 가지고 와서 상담하는 자는 거의 없다. 예수님께도 10명의 문등병자가 고침을 받았지만 1명의 문등병자 외에는 찾아온 자가 없었다. 그냥 잘잘못을 떠나 세상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하나님은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그 분은 주는데에 전문가이다. 복의 근원이요 원천이다. 그에게는 고갈됨이 없다. 그는 공급자이다. 


나단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때 함께 청하고 그들이 하나님으로 부터 도움을 받을 때에 함께 기뻐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다고 찾아오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더 무엇을 가지고 오든지 무조건 긍정해준다. 설사 교회에, 성전에 필요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무엇을 가지고 오면 기쁨으로 받는다. 


그런데 그 나라 왕인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며 자신을 찾아왔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거할, 자신이 제사할 보금자리요 일터를 새롭게 꾸미는 일이었다.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삼하 7: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나단은 다윗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단에게 찾아가셨다. 다윗이 아닌 나단에게 먼저 찾아가셨다. 

 나단에게 하신 말씀이 5절에서부터 16절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은 해석의 신중함이 요구되는 본문이다. 

 대부분의 설교가들이, 특별히 한국교회에서는 이 구절을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니 다윗을 더욱 축복하셔서 그의 왕권을 더욱 확고히 하고 영원하게 하셨다"는 축복의 말씀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대부분 그 결론으로 성전건축합시다. 감사헌금 드립시다로 끝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진 피터슨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짓겠다고? 도대체 누가 너에게 나에게 집이 필요하고 내가 집을 원한다고 하더냐?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너를 통해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가는 중이다. 집을 세우는 것은 나이지 네가 아니다. 이 왕궁의 왕은 나이지 네가 아니다. 너의 목동 시절부터 나는 너와 함께 일하며, 구원과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내 왕국을 건설해 왔다. 사람들로 하여금 네가 하는 일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네가 생각하는 그 집은 적당한 때, 네가 아니라 네 아들 때에 가서 그 일을 할 것이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5절부터 16절까지의 문장을 살펴보면 I will do, I do, I want..23번의 "I"를 내세워서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한다. 


이 말씀은 나단에게도, 다윗에게도 큰 시험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나단은 자신의 좋은 환경을 포기하고, 그 보다 더 힘든 일은 왕 앞에 서서 "안됩니다"라고 이야기 해야 한다.  왕의 선의를 거절해야 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또 한번 제어 당해야 했다.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며 죽자 분노했던 다윗은 이번에도 자신의 선의를 거절당하여 분노할 만 했다. 


그런데 나단은 이 말씀을 듣자 바로 다음날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전한다. 


ex) 백만 달러 헌금을 거절한 목사님 예화


3. 세번째 반전 

나단의 전함을 들은 다윗은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분노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이 말은 다윗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은 것"이다.

자칫 교만할 수 있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가서 앉았다. 

당시 한 나라의 왕은 신으로 받들여졌다. 애굽이 그랬고 블레셋이 그랬고 후에 로마가 그랬듯이 한 나라의 왕은 신과 동일시되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다윗도 그것에 취해 자칫하면 하나님과 동등되고자 하거나 하나님보다 높아질 수 있었다. 하나님의 집을 봉헌하면서 자신이 이젠 성공했다고 출세했다고 이젠 내가 당신을 돕겠다고 허무맹랑한 생각을, 행동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은 다윗은 다시 하나님 앞에 앉았다. 

삭개오가 한껏 주님을 보러 올라갔다가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 다시 나무 아래로 내려 오듯이 자기 위치를 찾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누구임을, 한낮 목동이던 자신을 여기까지 높이신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이며, 내 집이 무엇이기에, 하나님 여기까지 나를 이르게 하셨나이까..."엎드렸다. 

그러고 하나님의 역사가 여기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이스라엘에 대해 더 큰 계획이 있음을, 자신은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이 너무도 많은 존재임을 고백하게 된다. 

Sovereign Lord, Is it for your servant, a mere human! 

왕이시여, 이것이 정작 주의 종, 미천한 인간에게 행하실 일이옵니까? 


다윗이 자칫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할 때 하나님은 웃사를 통해, 나단을 통해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에, 계획에 어긋날 때에는 그를 붙잡으셨다. 

우리는 선한 의도가 매도 당할 때 시험에 든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뛰쳐 나가버린다. 


거기엔 교만함이 있고, 내가 주도하고 싶은, 내 의를 나타내고 싶고, 주장하고 싶고, 높이고 싶은 은밀한 죄가 스며들어 있다. 

다윗에게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아니다. 

우리가 자칫 교만해질 때, 내가 하나님 보다 앞서려고 할 때, 내 선한 의도가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때, 주님은 똑같이 우리를 제어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현존을 놓치는 우리는 언제나 우리 생각에 앞어 멈춤이 없이 질주한다. 


ex)사랑의 교회 성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이젠 사회의 골치덩이가 되었다. 교계의 골치덩이가 되었다. 


사무엘상의 다윗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신앙의 여정이라면 사무엘하의 다윗의 여정은 가나안 정복 이후의 성도의 삶을 보여준다. 

축복의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잃어버린다. 부모 덕에 공부하여 성공한 자식이 성공한 후에 부모를 엎신여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듯 하나님 앞에 우리 의를 앞세우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봉양하듯, 우쭐해지다가 넘어진다.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다윗을 제어하신다. 왜 그토록 친밀히 교제했던 다윗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나단을 통해 말씀하시나? 


나단을 위한 훈련도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자기 생각에 빠지면 하나님의 음성을 잃어버린다. 더군다나 그 생각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멋지고 좋은 것이라 여겨지면 하나님보다 앞서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그 귀를 열게 하셨다. 또한 네가 아무리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더라도 넌 제사장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영적인 질서를 세우신 것이다. 한 나라에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의 교회에선 그는 한 사람의 성도일 뿐이다. 그것은 왕과 제사장에게  똑같이 주시는 영적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 말씀 들을 때가 아닌데, 우리는 아직도 갈길이 먼데....

그런데 큰 비의 은혜를 약속하신 주님은 먼저 은혜 받은 후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들을 말씀하신다. 

가나안 이후의 우리의 삶에 넘어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말씀하신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