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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왕 (사무엘하 5장 1-10절) 


여러분, 이스라엘의 수도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입입니다. 

몇 주 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 아니었어?"하고 말하곤 합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팔레스타인 지역의 이슬람 국가들까지도 성지로 삼는 종교적 분쟁지역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성지를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종교적 중립지역이었습니다. 

원래 다윗왕때 수도로 지정되어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면서 통일국가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은 솔로몬 왕 이후 왕국이 분열되고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남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면서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의 국가가 인정되기까지 유랑민으로 살게 되면서 그 지역 전체가 이슬람권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예루살렘은 그 후 이슬람의 성지 역할을 했습니다.  

중세 때 강력한 교황권을 바탕으로 이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십자군입니다. 유럽의 모든 나라를 통치하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십자군을 보냈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성지 순례를 인정한다는 조건하에 예루살렘은 여전히 이슬람의 소유가 됩니다. 그 후부터 끊임없이 이 예루살렘을 두고 분쟁이 일어났는데 다시금 트럼프가 이 분쟁지역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발표하면서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후에 칠년 반 뒤에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서 핵심이 되는 사건이 바로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베들레헴 언덕에서 양을 치다가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왕의 곁에서 악기를 연주하던 자에서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믿음으로 승리한 자 

군대장관에서 하루 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광야를 전전하던 자 

광야에서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억울한 자들이 함께 모인 곳의 지도자가 되어 가장 연약한 자들의 리더

이제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자. 

유다의 왕이 될 때의 백성들의 고백 

(삼하 5: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 하나님께로 양들의 목자에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선포된 자. 



-> 한 사람의 인생의 여정- 신앙의 여정 중에서 가장 복잡하면서 자세히 신앙의 단계와 여정을 표현하고 있는 자 - 

가장 위대한 돵이면서 특별한 기적이 없이 순수한 신앙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였던 자. 우리의 인생과 너무도 닮아 있는 자

출애굽 사건- 광야-가나안 - 그 끝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타락하는 비극적인 앤딩이라면 

다윗의 여정- 택하심- 광야생활- 왕이 되 나가는 과정- 왕이 된 이후에 유혹에도 불구하고 넘어지지 않는 사건- 해피앤딩의 결말

다윗의 일대기- 왕이 되기 위한 과정- 왕이 되고 난 후의 통치의 과정- 그 중심에 하나님과의 한결같은 관계

그 변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 이제 광야에서 가나안의 입구- 여리고성에 해당하는 사건이 바로 예루살렘 정복 사건이다.  


원래 이 예루살렘 땅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하면서 유다지파에게 할당 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유다지파가 유독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은 쫓아내지 못합니다. 


(수 15:63)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왜 쫓아내지 못했을까?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불신앙과 불순종... (너무 강해서,,,,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가나안 7민족 중에서 가장 안전하게 오랫동안 거주하였던 족속- 여부스 족속.. 노아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 (창 10:15-16...) 

그들의 터전 - 예루살렘, 그 이름의 뜻은 "평화의 도시" - 그들은 그 말 그대로 평화롭게 예루살렘 지역에 살면서 거하고 있었다. 


왜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하는가? 

헤브론은 너무 남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북쪽을 다스리는데 어려움. 

남쪽을 남겨두고 북쪽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사정.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의 경계지역에 위치하면서 가장 안전한 천하의 요새. 


여호수아의 가나안 땅 분배이후 수백년 동안 건드리지 못한 여부스가 지배하는 예루살렘 땅을 정복하는 내용이 사무엘하 5장 6-9절의 짧은 절 안에 농축되어 있다.


이 절에서 이상한 부분이 읽혀지지 않습니까? 

6절: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 다윗의 군대를 조롱하는 말, 너의 군대 쯤이야...식은 죽 먹기지... 


그런데 7절에 그곳 시온성을 빼앗음. 예루살렘 성의 다른 말 - 시온성 


(삼하 5: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두 번째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 이것은 다윗의 군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여부스 족속을 가리키는 말. 

세 번째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도대체 누구냐? 


  • 해석상의 난제


유진 피터슨이 소개한 중세시대의 유대인 해석자들에 따르면 여부스 족속이 말한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은 유대인들의 신앙의 모체가 되었던 야곱(다리 저는 자) 이삭(눈이 어두어 아내와 아들로부터 속임을 당한 자)를 조롱하면서 이들을 모독하며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였던 여부스 족속의 유대인들의 신앙을 비하하는 우상이었다. 


이렇게 하면 이제 이 세 구절이 해석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6절의 내용은 우리가 섬기는 너희의 그 모자란 조상의 우스꽝스런 우상으로도 너희를 물리칠 수 있다. 

7절은 다윗의 입장에서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가서 그들이 우리를 조롱하면서 만들었던 그 우상을 제거하라. 

마지막 부분- 그들이 조롱하는 맹인과 다리 저는 그런 자들은 이스라엘의 집에 들어올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의 중점 - 베데스다 연못에서의 38년 된 병자, 실로암 연못 사건, 맹인과 절뚝발이를 치유하시는 사건. 

왜? 그들의 중심에 있는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지 못하므로... 


적용- 우리 신앙을 비아냥 거리는 세상에 나도 모르게 영향받고 주눅 들어서 그들의 용어에 휩쓸려 버리는 신앙. 

철기로 무장하여 너무도 강해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라면 능히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의 전쟁터... 

그들이 우리의 중심-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다.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길이요,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길이다. 


이 여부스의 땅 예루살렘을 정복하니까 사무엘하 24장의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다윗이 예배하매 그 곳이 솔로몬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터가 되고 다윗이 정복한 여부스 족속이 열왕기상 9장에 보면 거꾸로 노예가 되어 솔로몬의 성전을 짓는 역군으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왕상 9:20-21)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여부스의 기에 눌려 조롱을 당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가나안을 정복하여 그것을 부리면서 살 것인가? 

광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 것인가? 

광야의 시대를 마치고 주님이 왕되신 왕의 시대를 살 것인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음 이 사건을 끝맺는 말씀 

(삼하 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히브리어 "할로크 브가돌" -다윗이 그 때부터 '더 큰 걸음과 더 넓은 포용으로 전진하여 가니라


왕이 된 것이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된다. 

가나안이 타락의 시작이 아니라 더 큰 은혜의 시작이 되었다. 


어릴적 목동에서 부름받은 다윗은 왕으로 부름을 받을 때도 왕이 아닌 목자로서 부름을 받았다. 

왕은 사울이었으나 우리의 목자는 항상 당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우리의 목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목자로 여겼던 다윗은 똑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삼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 인생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는 나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는 내 영혼을 다시금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는 나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인생이 험하고 어려워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는 나를 상주시는 분이고 내 잔을 넘치게 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주님의 집에서 영원히 살겠습니다." 


기복신앙과 복의 신앙

기복 신앙은 복을 구하지만 나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말씀의 순종은 오직 복을 위함이지 내 성숙과 변화와는 관계가 없다. 

복의 신앙의 초점은 내가 복이 되는 것이다. 그 초점은 내가 변하는 것이고 내가 복이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삶을 복의 삶이 되게 하셨다. 

이새의 막내아들 목동 다윗은 이스라엘의 목동이 되었고 하나님을 목자 삼는 하나님의 양이 되었다. 

그 중심에 여부스 족속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사건이 나온다. 

예루살렘은 트럼프가 수도 삼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힘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정복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여부스를 몰아내고 우리 안에 장남되고 절뚝발이 된 신앙을 걷어내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